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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09:00

오늘의 행복레시피

조회 수 2039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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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본다면 요리법이 들어있는 요리책이라 생각될것 같다. 하지만 요리책이 아니라, '요리'를 모티브로 하여 아침부터 저녁때까지의 하루를 여유롭게 서술해놓은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한 책이다.



난 사실 레시피가 있는 요리책도 무척 좋아한다. 실제로 집에도 상당수의 책이 있고 말이다. 물론 거기에 올려진 모든 요리를 다해본 것은 아니지만, 책에 있는 요리 사진들만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요리보단 사진이나 요리를 담고 있는 그릇들에 혹해서 구입한 책들도 있다.



그렇지만 군데군데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먹는 일상식들의 짤막한 레시피와 함께 요리의 나라답게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간식까지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건성으로 넘어감 없이 느긋하고 여유롭게, 그리고 정성을 다해 즐기는 삶에서 얻어지는 소박한 행복에 관해 담백한 문체로 담고있는 이 책은 자기의 일을 가지고 있는 사회인이라 해도, 결혼한 이상 '주부'라는 타이틀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갖게되버린 내게, 단순히 프랑스 인들의 음식과 일상생활만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아니라 그들의 음식과 삶을 우리의 일상과 일상음식과 대조해보는 기회를 주어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프랑스식 아침식사는 가장 보편적으로 갓 뽑아내린 진한 원두커피-아메리칸 스타일이란 진한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취향에 맞게 물의 비율을 높여 연하게 만든 미국인들만의 커피다-와 타르틴(바게트빵을 자른 조각)이다. 거기에 홈메이드 잼이나 버터를 발라 커피에 찍어먹으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아침식사다. 물론 바쁘게 빠른 속도로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여유롭게. 아침을 여유롭게, 그리고 공들여 준비하고 먹어야 한다는 개념은 그들과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점점 아침을 밥으로 먹는 인구가 줄고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침을 꼭 먹는다는 것을 캠페인으로 벌일 정도로 아침을 중요시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이니, 그런 면에서는 프랑스인들의 아침식사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침 밥 저녁 죽'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메뉴상으로 놓고본다면 거의 극과 극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제대로된 아침식사라면, 밥과 국, 그리고 김치 외에 한두가지 반찬이 올라와 있는 반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하루를 시작하기에 별다른 무리가 없는 비중이 약한 음식, 그리고 맛과 향이 가벼운 국과 반찬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일것이다. 기름진 베이컨과 버터를 섞어 만든 에그 스크램블과 소세지 등을 먹는 부담스런 미국식보다 오히려 프랑스의 식사와 닮아있는 것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허브를 가지고 음식 특유의 맛을 돋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우리나라 음식과 비교할 만 하다. 일본음식은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거의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중국 음식은 재료에 어울리는 '소스'가 음식 맛의 원천이 되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쑥갓, 미나리, 깻잎, 그리고 가장 흔하게는 파 등으로 음식의 풍미와 향을 돋운다.



그들의 '장보기'풍경은 우리의 전통장, 5일장, 7일장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는데, 그들의 그런 장터가 흔하게 눈에 띄는 반면, 우리의 전통장은 이제 조금씩 소멸되어 극히 일부분에서만 그 재미와 넉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내 '알뜰장터'에서나마 단편적인 시골장터의 모습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부엌'의 풍경이었다. 과연 세계적인 요리사의 부엌에는 뭐가 있을까, 마치 작가의 방에는 무슨 책들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책이 있을까 궁금한 것과 같은 호기심이 생겼다. 작가의 방에서는 '많은' 책들이 있는 반면, 요리사의 부엌에는 그릇과 남비, 조리기구의 갯수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꼭 필요한 도구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하긴, 레스토랑의 주방에서야 한꺼번에,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요리를 해내야만 하니 많은 도구들과 많은 인력이 필요하겠지만, 요리사도 또한 자기 집에선 가족들과 오붓하게 앉아 즐길 수 있는 몇가지 요리만 그때그때 천천히 '즐기며' 만들면 되는데, 무슨 도구가 그리 많이 필요할까 싶다. 오히려 비싼 조리기구들을 그때그때 자꾸 사들이기 보다는 자신의 손에 익은 오래된, 그리고 여태껏 해내었던 요리들의 향내가 전부 스며들어있는 정겨운 냄비하나를 사용하는 명장의 소박함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한가로움과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요리기구에 관심이 참 많은 편인데 말이다. 뭐 그렇다고 기구가 굉장히 많은 것은 아니고, 나 또한 시간 절약을 위한 기구인 채칼이나 마늘다지기 등의 기구는 갖고 있지 않다. 솔직히 느림의 미학보다는 채칼이 위험해서 무섭고, 어차피 그것들을 사용하고 나면 그만큼의 설겆이 분량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서지만 말이다. 하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마늘을 칼의 뒤쪽손잡이로 두드려 다지셨고, 사용하는 도구들도 냄비한개와 사골곰국을 끓이기 위한 들통 한 개, 그리고 후라이팬 한두개가 전부였다. 우리 친정 어머니도 여태껏 결혼하면서 가져오신 스뎅(스테인레스라고 하는게 어째 더 어색하다) 냄비 2개에, 십 몇년전 작정하고 사신 테팔 후라이펜 두개가 전부지, 채칼 한 번 사용하신 적이 없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요리 하나를 완성해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많이 가진 나보다도 훨씬 빠르지 않은가.



프랑스 음식에는 전문 용어들이 꽤나 많은 편인데, 줄리엔느(가늘고 길게 채치는것), 브루누아즈(작게 주사위 모양으로 써는 것) 등의 썰기 용어들을 책에서 몇 가지 소개하고 있다.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썰기 용어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프랑스의 썰기는 같은 채썰기라도 길이와 두께가 몇 센티냐에 따라 용어가 달라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늘게' 혹은 '두껍게' 정도의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게 써도 오랜동안 요리를 하신 어머니들은 척척 알아서 다 하시니 뭐가 문제될 게 있겠는가. 오히려 우리나라 썰기 용어들을 보면 정겹고도 참으로 예쁜 용어들이 많다. '나박나박', '송송' '어슷어슷', '깍둑썰기'... 참 예쁘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현대 식생활을 보면 실상은 미국에 가깝고, 기본적인 사상과 철학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와 닮아있어, 혼재되어있는 느낌을 준다. 생활 방식이 서구화-요즘 서구화라면 거의 미국식과 통용되는 것 같다-되어 정신없이 바삐 사느라 음식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못하고 즐기기보단 먹어치우는 쪽에 가깝게 되어버렸지만, 함께 밥을 먹어야 정이 든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음식에 대한 철학과 생각은 이 책에서 풀어놓고있는 지은이의 생각과 일치하고 있다. 사실 요즘 유행세를 타고있는 '브런치'의 개념도 하루를 지나치게 바쁘게 살기에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들이 점심 겸으로 먹는 식사이기에, 비싼 가격으로 고급으로 포장시켜 팔고있는 왜곡된 형태로 변질되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지만, 기실 아침 식사를 중요시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이나 기본 사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나라 또한 프랑스 못지 않게 밥을 소중히 하고, 매 끼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밥을 아주 조금 먹는 내가 이런 설을 풀어놓는 다는게 좀 우습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요리하는 것을 사랑하는 내 시각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매 끼니를 소중히하는 프랑스인들의 소박하고도 여유로운 식사, 요리습관을 꾸밈없이 묘사한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사소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담백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한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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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6.09.30 09:00
    오늘 저녁, 저의 행복레시피는 고명한 회원님의 독후감을 재밌게 읽는 것이 되었네요 ~ ^^ 음식문화에 대한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 내용에 있는 한국에 들어온 서구 음식 문화의 왜곡과 변질에 대한 일침 또한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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