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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아무튼 당시의 자식 된 도리란-확실히 뭔가를 외우는 일에서 시작해 뭔가를 외우는 일로 끝을 맺곤 했다.



평범한 야구 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팀이 프로야구라는-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새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마찬가지고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3위와 4위가 그럭저럭 평범한 삶처럼 보이고 6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하위 삶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다.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꽤 노력을 해도 부끄럽긴 마찬가지고, 무진장,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해봐야 할 만큼 한 거고, 지랄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좀 하는데’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의 노력을 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꽤 이상한 일이긴 해도 원래 프로의 세계는 이런 것이라고 하니까.



이 땅에서, 보편적인 결혼의 대부분은 <가정을 버려야 직장에서 살아남는다>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결합이다. 보편적인 인간이라면, 그래서 누구나 사는 게 고달프다.



이제 세상을 박해하는 것은 총과 칼이 아니야. 바로 프로지!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쫒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

책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회사 다니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편안해졌다.

인식하진 않았지만 나는 내가 프로가 아니라는 것은 느꼈던 것 같다. 책장에는 그 유명한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이 꽂혀 있다. 2년 전인가.. 프로가 되보겠다고 야심차게 샀던 책.

프로-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의 자격 조건은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문장 하나 하나가 나의 어리숙한 행동거지를 들춰내어 이런 식으로는 프로의 근처에도 못 간다고, 나중에는 살아남지 못할거라고 질책하고 고쳐야 한다고 다그치는 듯 했다. 회사에서 받는 압박만으로도 지치는 걸. 결국 포기.

행동하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마저 포기할 지경이면 난 영원히 프로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열등감에, 책장에 꽂힌 이 책을 감히 다시 꺼내보지 못했다.



그래서, 별볼일 없는 인간의 자기 위안일지는 모르나, '프로가 아님 어떠냐. 아마추어로 살면 되지'. '삼천포로 빠지면 진짜 생이 있다'는 박민규의 말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다시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빼들었다. 피터 드러커는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팔장을 낀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분명 그는, 프로일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슈퍼스타가 없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일원으로서, 매일같이 프로와 같이 경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프로가 어떤 사람들인지 그저 궁금해서이다(진짜??? ...거짓말!).

혹시, 언젠가는, 어느 분야에 있어서는, 나도 프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프로를 부러워만 하는 아마추어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조금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

화장실에서 이 책에 대해 생각하다, 이런 책을 쓴 박민규는 정말 프로라는 생각을 했다. 배신자...

  • ?
    정영옥 2006.09.12 09:00
    예전부터 사두고 읽지못한 책중 하나입니다.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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