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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09:00

풀하우스

조회 수 2229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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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스티븐제이굴드, 이영희 역, 사이언스북스, 2002



이 책에서 굴드가 가장 주장하고 있는 것은,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시스템전체의 변이 정도가 변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주장을, 정량적 증거들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을 파악하는 중심범주를 ‘본질’이 아니라 ‘변이’로 대체할 때 다윈혁명이 비로소 완성될 거라고 얘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은 ‘기울어진 분포곡선’과 ‘벽’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해서 굴드는 두 가지, 야구에서 4할타자가 점점 없어지는 이유와 생물의 진화라는게 과연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①우선, 야구에서 4할타자가 점점 없어지는 이유는 천재선수가 점점 희귀해져서가 아니고 전체적인 야구경기의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 다시 말해 그래프의 가장 우뚝 솟은 부분이 오른쪽 벽(이 경우는 인간의 한계)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야구의 평균타율이라는 개념은 상대평가(상대팀이 있어야만 나오는 결과)이기 때문에, 공격과 수비팀 모두의 절대적인 경기수준은 향상되지만 평균타율은 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선수들간의 편차가 좁혀지기 때문에, 다시 말해 오른쪽 꼬리부분이 극히 짧아지기 때문에 4할타자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1970년 최고선수 5명의 평균수비율이 0.9968, 그리고 모든 선수의 평균수비율이 0.980에 수렴하고 있다 말은,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의 편차가 극히 작아졌음을 나타낸다.

②그럼 이 그래프를 생물의 진화에 적용시켜보면 어떻게 될까? 그래프의 세로축을 출현빈도, 가로축을 복잡성이라고 놓자. 여기엔 ‘생명의 최소한의 복잡성’이라는 왼쪽벽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생명체가 점점 다양해질수록, 그래프는 당연히도 오른쪽으로 뻗어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래프의 평균을 가지고 이야길 하면, 마치 ‘생물은 점점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와 같은,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굴드는 복잡성에 대한 몇 가지 정량적 연구들을 몇 가지 소개하며, 생물의 복잡성 증가가 능동적 경향이 아니라 다양성에 따라오는 부수적 결과라고 말한다.



작년 여름 몇 권의 책을 읽으며 막연히 느끼고 있었고 이 책을 읽으며 확실해진 또 하나의 사실은, 지구의 주인은 인간보다는 박테리아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굴드는 박테리아의 우월성을 수, 다양한 서식장소, 다양한 물질대사방식, 지구에서 살아온 역사, 그리고 생물량(이건 아마도)에서 들고 있는데, 나도 동감이다. 특히 물질대사의 다양성이란 면에서, 이 박테리아들의 존재는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준다. 우리가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더라도 박테리아들은 여전히 잘 살아나가리란 희망(이라기보다는 바램)이 있는 반면, 인간이 멸종시키는 속도가 워낙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생태계의 중요한 고리들을 끊어버리고 있을거라는 불안이 생긴다.



그는 본질에 집착하는 플라톤주의의 오랜 영향력에서 벗어나 변이와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는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아니, 관심의 중심을 변이로 바꿔야만 자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우수성은 특정한 점이 아니라 넓게 퍼져있는 차이들인데 사회가 획일적인 평범함을 강요함으로써 이전의 빼어난 것들이 가졌던 풍요로움을 대체하려 한다고 한다. 다양한 학생들을 획일적인 틀에 집어넣는게 주임무인 교사인 나에게 뼈아픈 말이다. ‘진화’의 자신이 쓴 서문에서, 다윈이 우리에게 준 두 번째로 고마운 것이 ‘자연법칙을 인간사회에 대입시킬 필요없이 마음껏 탐구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한 말에 난 무척 즐겁게 동감하며 웃었지만, 자연의 다양성을 못따라가는 사회의 획일성을 지적하는 데에, 역시 또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고) 동감하며 반성하게된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는게 무척 힘든 사회인데(경제적 이유+소위 공동체의 배척), 공교육기관인 학교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자연진화와 문화적변화의 차이점을 들면서, 우리가 과연 오른쪽 벽에 대해 걱정해야할까? 하고 묻는 부분이었다. 굴드는, 과학은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오른쪽 벽에서 한참 멀어서) 걱정할게 없고, 공연예술은 최고의 연주가 반복되어도 우리는 늘 찬사를 보내니 역시 걱정할 게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동감이다. 하지만 창작예술은? 굴드는, 이건 거의 오른쪽 벽에 도달하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 같다. 혁신에 대한 집착과 이해 못하는 관객들에 대한 실망 대신, 차라리 그 사실을 인정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데, 난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건 재밌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자기 책 중 가장 아끼는 이 풀하우스에, 자기의 전공 밖의 글을 아무런 논거도 없이 덧붙이는 건 용기인지, 아니면 대가의 여유인지-.



※앞으로 공부할 것-진화에 대한 적응주의적 시각(리처드 도킨슨 등)과 그에 반대되는(?) 시각들(굴드 등), 카오스이론에 대한 자연과학적, 사회과학적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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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정원 2005.10.27 09:00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http://ntiskang.blog.me/14011856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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