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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09:00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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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칼 짐머, 세종서적, 2004



스티븐 제이 굴드가 서문을 썼다는 사실이 눈에 단박에 띄어 산 책이다. 이 책은 WGBH/NOVA사의 사이언스부문과 클리어 블루스카이 프로덕션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진화>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다. 그 프로젝트에는 TV시리즈 7부작, 웹사이트, 멀티미디어 라이브러리, 교육 프로그램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다. 지은이 칼 짐머는 과학저널리스트로 ‘Natural History'를 비롯 여러 잡지에 꾸준한 기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많은 상을 받고 과학강의 및 저술활동, 라디오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굴드는 서문에서 “왜 우리가 진화를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두 가지 대답을 하고 있다. 하나는 실용적인 목적인데, 질병치료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진화의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를 빙그레 웃음짓게 만들었는데-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알아내야하는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시 말해 도덕과 의미는 과학과는 전혀 별개라는 말인데, 그 말이야말로 지금 다시 다윈이 살아난다면 우리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이 책에는 다윈이 어떻게 자신의 이론을 세우게 되었는지, 그 진화론을 둘러싼 찬반논쟁 및 관련 이론들의 발전, 진화론의 의의, 진화의 관점에서 본 생물의 역사 및 사회생물학, 그리고 질병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46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와 압축된 문장, 정곡을 찌르는 유머 등으로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또 적절한 곳에 배치된 칼라사진들은 내용의 이해를 도움은 물론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맛이 있다. <진화>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나온 후 2년간을, 남아프리카의 사막, 이집트, 멕시코, 하와이의 구릉지대, 결핵환자가 있는 러시아의 감옥, 터키와 남프랑스의 동굴, 히말라야 산기슭, 에콰도르의 열대우림 등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며 준비하였다고 하더니, 과연 그 성과가 책에 그대로 녹아있다. 이 책은 그 동안 내가 읽은 몇 권의 진화관련 책들의 훌륭한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진화공부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기쁨은, 내(‘나’)가 단지 지금의 내 한 몸뚱아리가 아니라. 장구한 지구역사 속의 한 부분, 전 생태계 속의 한 부분임을 항상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글쎄, 그건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운 친구를 1000명 쯤 새로 사귄 기쁨과 비슷한걸까? 또 다른 말로는 ‘인간’이라는, 또 특별한 ‘임성빈’이라는 교만을 버리게 되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마치 ‘아내’나 ‘결혼’이라는 엄청 왜곡된 이데올로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상처받고 헤어지듯이,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무익한 싸움과 소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청소를 깨끗이 해도 그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 실제로 생물들이 다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단지 크기가 큰 생물들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애쓰는가?(병원에서도) 도대체 ‘깨끗함’이니 ‘질서’같은 것들은 언제부터, 왜 우리에게 중요한 것으로 되었을까? 학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고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가? (그러면서 지저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위안한다)



비단 이 책 뿐이 아니라, 과학책을 읽다보면 자연계에서 통하는 유일한 진리(?)는 오직 다양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얘기하는 약육강식이라는 말도 틀렸다. 생물계에서 가장 큰 지위(시간적, 공간적으로)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박테리아를 ‘강자’라고 인정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든 생물은 자기가 처한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해진다. 굴드는 그 다양성의 증가, 적응방법의 진보(가치를 함축한 진보가 아니다)를 진화라고 이야기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 ‘미’의 기준이 흐려지며 오히려 감상할 수 있는 세계의 부분이 무한대로 확대된다. 더럽고 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까지도, 이젠 여유를 가지고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남편과 싸울 때도, 학생들이 미워질때도, “왜 그럴까?”라는 생각에,(성의 분화와 암수의 사회생물학, 인간의 유태성숙을 생각하며) 감정에 한 박자 여유가 생긴다.



진화는, 고등학교 이후로(난 고등학교 공부도 꽤 재밌었다) 내가 아주 푹 빠져서 재밌게 공부한 부분이다. 아마 대학 가기 전에, 혹은 대학에서라도 진화를 접했다면, 아마 과감히 전공을 바꿨으리라. 아니, 대학교 입학 이후로 워낙 공부란 것과 담쌓고 살아온 내가, 모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며 (주제와 상관없이) 공부의 기쁨을 깨닫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환경운동을 해야겠다고 막연히 마음먹고 있던 내게, 참 선택을 잘했다는 확신을 주었다. 좋아하는 생태학 공부와, 이론을 넘은 실천까지 담보할 수 있는 활동, 그리고 교사로서 지금 이 시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게 바로 환경운동, 그 중에서도 특히 환경교육이었다. 그리고 그 환경교육이, 지금처럼 도덕적 덕목이나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구의 역사, 생태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 그리고 여러 가치관을 인정하고 타협할 줄 아는 태도 등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내가 지구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이 기쁨을 학생들도 느낄 때, 그 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환경교육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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