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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편에 이어서..)


** 표현의 언어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 **


책에 등장하는 좋은 글귀는 서윤경회원님의 독후감에 여러 대목이 발췌되어

열거되어 있기에 본인이 소장한 자료 중,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대해

문답형식으로 잘 정리된 자료가 있어 그 내용을 4-4편에 부록(附錄)으로

첨부하도록 하겠다. 


              “사단칠정(情) 문답"


* ‘정(情)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파동이다.
마음의 물결이다.
마음의 발(發)동이다.
마음이 발(發)동하기 전의 마음이 체(體)라면,  정(情)은 마음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정(情)은 일용에서 느끼고 말하는 마음 전체를 포함하는 말이다.
마음치고 정(情)에 속하지 않은 마음은 없다.



* ‘칠정(七情)이란,  무엇인가?’

정(情)이 단지 마음의 파동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칠정은 구체적으로 파동의 모양, 즉 파형에 따라 정을 분류한 명칭이다.
희 로 애 락(구) 애 오 욕. 이렇게 일곱 파형으로 분류하였다.
『예기』「예운(禮運)」에 인정(人情)으로서 칠정을 말하고 있다.


* ‘사단(四端)이란,  무엇인가?’

사단의 四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성(性)이며,

단(端)이라는 것은,  이 성(性)의 인식 가능한 문(文),  단서,  실마리라는 뜻이다.


* ‘성(性)이란 무엇인가?’

우주만물을 싸잡아 개연히 그것의 제일 원인자를 표현하면 리(理)라고 한다.
반면 구체적인 물(物)을 논하는 경우,  그 물(物)에 그 리(理)를 표현한다면

성(性)이다.
그 물(物)이 사람이면,  

그 리(理)는  인성(人性)이라 하고,  

만약, 그 대상이 소라면 우성(牛性)이라고 한다.
성(性)은 곧,  리(理)이다.


* ‘성명(性命)이란,  무엇인가?’

성(性)의 유래를 밝혀 표현한 명칭이니,

성(性)의 유래가 명(命)이라는 뜻을 지닌다.


* ‘명(命)이란,  무엇인가?’

명(命)은 명령의 명(命)이니,  천(天)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이 명(命)의 이해는 그리스도교식의 이해와 같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빛이라는 구체적인 문(物)의 원인자가 하느님의 명(命)령의 말씀(로고스) 이다.
이 명(命)으로 인하여 빛이 빛이라는 물(物)이 된 것이다.
성(性) 즉, 명(命)이며,  성(性)의 근원은 천명이다.
이것이 『중용』의 천명지성(天命之性)이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 ‘칠정과 사단은 다른가?’

다르지 않다.
다 같은 하나의 정(情)이다.
다만, 정(情)을 분류하는 기준이 다른 데서 서로 다른 명칭이 유래한 것일 뿐이니,

칠정은 파형에 따라 분류한 명칭이고,

사단은 인의예지라는 성(性)에 짝을 맞추어 분류한 명칭이다.
마음에 칠정이 있는 것은  빛이 일곱 가지 색이 있는 것과 같다.


* ‘정(情)을 인의예지에 짝을 맞추어 사단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性)의 선(善)을 가장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상식의 견지에서 누구나 보아도 선(善)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는데,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이다.
이 마음의 선함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원인자가 선이기 때문이라고

추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측은은 인(仁)이라는 성(性)의 선(善)을 원인자로 하여 발(發)한 마음,
수오는 의(義)라는 성의 선을 원인자로 하여 발한 마음,
사양은 예(禮)라는 성의 선을 원인자로 하여 발한 마음,
시비는 지(知)라는 성의 선을 원인자로 하여 발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으니,

측은, 수오, 사양, 시비는  인의예지라는 성(性)의 선(善)을 인식할 수 있는

단서가 되며,

동시에 성(性)이 선(善)임을 인식하게 하는 최적의 분류가 되는 것이다.


* ‘효(孝), 제(弟), 자(慈)는 어떤 정(情)인가?’

사단과 칠정의 분류 외에 정(情)을 분류하는 기준이 더 있다.
그 가운데 감응처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 있는데,

효제자(孝弟慈)가 바로 그것이다.
효(孝)라는 것은 부모라는 물(物)에 감응하여 발(發)하는 정(情)의 명칭이고,
제(弟)라는 것은 형제, 이웃이라는 물에 감응하여 발하는 정의 명칭이고,
자(慈)라는 것은 자식에게 감응하여 발하는 정의 명칭이다.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라는 명칭도 역시 감응처에 따른 구분인데,
물(物)의 본(本)에 감응한 마음을 도심(道心)이라 하고,
물(物)의 말(末)에 감응한 마음은 인심(人心)이라고 한다.
또, 마음의 속성에 따라 정(情)의 명칭이 달라진다.
명덕(광명한 것),  준덕(위대한 것),  충서(진실하고 향물적인 것),

의(意, 주재하는 것) 등이 이것이다.
이런 마음들은 다 선일변으로 쓰는 명칭이다.


* ‘정(情)은 리기(理氣)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기발리승(氣發理乘)의 결과물이다.


* ‘기발리승(氣發理乘)이란 무엇인가?’

정(情)이 발동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직역하면 기가 발하고,  리는 그 기에 올라타고,

그렇게 하여 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말 위에 사람이 올라타 있는 모습을 그리면 된다.
말은 기(氣)를,  사람은 리(理)를 가리킨다.
말의 출발은 사람의 명령에 의한다.
출발하는 것 즉, 소발자(所發者)는 말이며,

출발하게 하는 것 즉, 소이발자(所以發者)는 사람이다.
이렇게 발(發)한 물(物)이 정(情)이라는 것이다.
기(氣)는 발동하는 물(物)이다.
이를 소발자(所發者)라고 한다.
리(理)는 발동의 원인자이다.
이를 소이발자(所以發者) 라고 한다.
기와 기는 소발자와 소이발자의 관계로 정(情)을 낳는다.
소발자와 소이발자는 서로 떨어진 두 개의 다른 물(物)이 아니다.
이를 불리(不離)라는 말로 설명한다.
또한 아무런 구분도 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반죽 같은 하나가 아니다.
눈을 감고 잘 생각하고 살피면 구분되는 게 있다.
이를 불이(不雜)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리와 기는 불리와 불이의 관계에 있다.
리기(理氣)는 하나다.
그러나 하나는 아닌 것이다.
둘이다.
그러나 둘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리(理)와 기(氣)이다.


부리(不離) 부잡(不雜)이라는 말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리(理)는 형체가 없다.
기(氣)는 형체가 꼭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체 있는 모든 것은 기(氣)에서 온다.
리(理)에는 운동이 없다.
따라서 발(發) 동(動)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무(無) 기(氣)인데,  발(發)할 무엇이 있겠는가?
성선(性善)이므로 리(理) 역시 선(善)이다.
기(氣)는 운동 변화한다.
선(善) 할 수도 있고,  불선(不善) 할 수도 있다.
본시, 불선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모든 불선은 기에 관계한다.
반면 기(氣)없이는  선(善)도 없다.


* ‘호발(互發)은 어떤 설인가?’

기발리승(氣發理乘)이 기발(氣發) 하나만을 인정하는 설인데 반해,

리(理)가 발(發)하는 경우도 있고,

기(氣)가 발(發)하는 경우도 있는 등 서로 발(發)하는 경우가 있다는 주장이다.


* ‘어떤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사단과 칠정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사단은 리(理)의 발(發)이고,  칠정은 기(氣)의 발(發)이라는 주장이다.


* ‘왜, 그러하다는 것인가?’

호발(互發)설을 주장하는 처지에서는 사단은 순선한 것으로 보고,

말로는 칠정은 선(善)도 있고, 불선(不善)도 있을 수 있는 정(情)으로 보면서도

실제에서는 순선하다는 사단과 상대, 대립시켜 불선(不善)한 쪽으로 몰고 간다.
순선한 사단에 사탄의 끼가 있는 기(氣)가 끼어들면 안 된다는 종교적 결벽증

때문에 사단을 리(理)의 발동으로 보는 것이다.
기(氣)에 대한 어떤 혐오감정 기피감이 작용하고 있다.
선약(善惡) 이분이라는 서양적이기도 하고, 종교적 이기도 한 쉬운 방식에

항복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종교에서 많이 쓰고 있다.


* ‘그럴듯하지 않는가?’

옳지는 않다.
호발(互發)을 주장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지만,  논리는 틀리다.
발동하려면 기(氣)운이 있어야 한다.
기운 없이 운동이란 불가하다.
이는 상식이다.
리(理)가 발(發)한다면,  리(理)에 기(氣)운이 있다는 말인데, 그러하다면 그것은

이미 리(理)가 아니고,  기(氣)이다.
따라서 주장하기는 리발(理發)이지만,  따져보면 기발(氣發)이다.
리기(理氣)론의 원칙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내가 보기에 리기호발(理氣互發)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이기(二氣) 호발(互發)을 주장하는 게 낫다.
순선한 기(氣)가 있고 그러하지 못한 기(氣)가 있는데,

순선한 기(氣),  즉,  淸粹(청수)한 기가 발하면 사단이 되고,

濯駁(탁박)의 기가 발하면 칠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자면 흑백 쌍두마차에 사람이 타고 있는 모습이다.
사단은 백마가 주도하여 발한 것이고,

칠정은 흑마가 주도하여 발한 것. 이렇게 보는 게 낫다.
이기호발(二氣互發)은, 사단은 순선하기만하고,

칠정은 선(善)하기도 하고, 불선(不善)하기도 하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고,

더 좋게는 칠정은 악(惡)이라는 신념 하에서 더 빛이 난다.
그러하기에 말로는 칠정이 선(善)도 있고 불선(不善)도 있다고 하지만

순선하다고 하는 사단에 걸맞지 않으므로 칠정의 불선(不善)함을 강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氣)를 악의 무리에 배당하게 된다.


* ‘사단은 순선한 것이 아닌가?’

사단이 순선하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옳지 않다.
사단도 불선(不善)의 탈이 있다.
왜냐하면 사단도 칠정과 마찬가지로 선(善) 할 수도 있고,

불선(不善) 할 수도 있는 기(氣)의 발(發)이기 때문이다.

맹자  곡속장(穀屬章)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흔종(釁鍾, 짐승의 피로 새로 만든 종의 틈을 메우는 것)의 예에 쓸 '소' 가

벌벌 떨며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본, 

 제(齊)나라 선왕(宣王) 마음에 측은한 마음이 인다.
소를 살려주라고 명령한다.
그럼 흔종은 어찌하느냐는 물음에,  염소로 바꾸어서 하라고 한다.
소에게는 제선왕의 마음이 측은지심이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염소에게는 난데없는 죽음이 되었다.
소와 염소 같은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염소로 바꾸어라'가 아니고 '아무게들 중에 하나로 바꾸어라'하게 되면,

그 누구에게는 측은지심이지만, 상대적으로 아무게 에게는 무엇이 될까?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발(發)한 측은한 마음이

안면 없는 무고한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다.
사단도 불선(不善)의 탈이 있는 것이다.
불선이라고 하는 것은 과(過)와 불급(不及)의 탈이다.
과하거나 부족하면 다 불선(不善)이 된다.
그 누구에게는 측은지심이 과(過)한  탈이고,

아무게에게는 측은지심이 불급(不及)한  탈이다.
이는, 도심유미(道心惟微)에서 처럼,  

도심(道心)에도 미(微)의 탈(病)이 있는 것과 같다.
『태학』전 8장에 이르기를,

'사람이 애긍(哀矜)하는 사람에 대하여 정(情)이 치우치고'  라고 하였다.
애긍하는 마음이 측은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마음을 주는 상대에 빠져 중심을 잃게 되면(치우치게 되면),

불선(不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칠정도 기(氣)의 발(發)이므로,  선(善) 할 수도 있고, 불선(不善) 할 수도 있다.
그것이 사단의 경우와 다른 것은 칠정은 선불선(善不善)이란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의 정(情)을 분류한 것이며,

사단은 성선(性善)과 관련하여 선(善)하다고 인정하는 명칭을 골라

성선(性善)을 인식하는 단서로 삼은 것이다.
이 때문에 칠정은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사단은 칠정 중, 선(善)한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보지 않는다.


측은의 경우를 보자.  측은 하나에 칠정이 줄줄이 걸려 있다.
맹자가 설정한,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 의 경우를 보자.
이런 장면을 보았을 때 측은 출척지심(怵愓之心) 발(發)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따져보면, 측은지심이란 것이 칠정의 총체적인 발로임을 알 수 있다.
어린애의 불행을 예견하여 슬퍼하는 애(哀),

자신과 동류의 생명을 아끼는 애(愛),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구(懼),

싫어함 오(惡),

'빨리 구하자!' 하는 욕(欲),

선(善)을 행하거나 어린애를 구출한 것을 가정한 기쁨 희(喜),

'저런 저런! 어미는 어디 가고!'  라는 책임자에 대한 분노 노(怒),

이것들의 종합적 발로인 것이다.
이러하기에 사단이 칠정의 선(善)한 부분이라고 하기보다는

단지 인의예지라는 성(性)에 짝을 맞추어 성(性)의 선(善)을 인식하기 위한

방편상의 분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단 - 순선,  칠정 - 유선유불선(有善有不善)의 구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칠정과 사단을 위와 같은 구도로 차별하여 취급하면 안 된다.
칠정 외에 사단이 따로 없고,  사단 외에 칠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출처 : 태학경연 왕양명대학문(王陽明大學問) 중에서 발췌. 


          ***** 힘든 글 읽으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


        ***** 회원님의 의지와 인내에 감동의 박수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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