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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림 - 조광조 편"


                                                      저자 : 최인호








“조선 사상사..!”


나에게 있어 이 말이 주는 심적 중압감은 이 글을 읽는 회원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크다.
유림1권(조광조편)에 대한 독후감을 먼저 쓴 서윤경 회원님의 글을 읽고,

“책에 관한 내용은 이미 윤경님이 언급을 했으니, 이와는 별개로 본인은

조선 사상사에 대해 글을 쓰겠노라!” 덧 글을 달고 나서 내심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 방대한 조선사상사를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찌 정리할 수 있을까?
그러나, 후회하기에 앞서 이미 의도된 중압감의 화살은 시위를 벗어났다.


고려 말부터 시작된 혁명의 기류를 시작으로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의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을 왕조의 헌법(憲法)으로 기준하여

계승, 발전한 조선 500년 동안의 사상사를 짧은 글 속에 녹아 낸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난공불락(難攻不落)이요, 불가항력(不可抗力) 이다.
그 까닭은,

이는 왕조의 바뀜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 종교, 문화 전반의 전체적

변형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각기 하나의 파편(破片)만으로도 책 몇 권은 족히 쓸 분량들이다.
이런 불가항력의 광범위한 사유로 나는 조선사상사의 언급에 있어,

그 기준점을 이 책의 주인공인 조광조(趙光祖)로 삼고,

그 이후 훈구(勳舊)와 사림(士林),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에 대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대해 그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사상사의 흐름(계보)은 조광조로부터 조선 중, 후기, 근, 현대까지,

그 큰 줄기들만을 포진(布陳)시켰다.


혹시라도,

사전 고지한 본인의 예고를 보고, 보다 자세한 설명을 기대한 회원이 계시다면,

자못 실망을 전하는 글이 될지도 모를 것이다.
만약, 그렇게 느끼셨다 하더라도 개인능력의 한계라 여기시고,

이점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여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
다만, 개인욕심으로는 기회가 될 때,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조선 사상사를

연구해 보려 하니 본인과의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다보면 언젠가는 보다

구체적인 사료(史料)와 자료(資料)를 보실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감히 생각한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의 전반적 내용에 관해서는 먼저 독후감을 작성하신 서윤경 회원님의

  독후감을 참조하실 것을 권유 드린다.



조선시대의 사상은 선비사상으로 대표 할 수 있다.
맹자(孟子)는 선비(士)에 대해 일컫기를,

“그 사회가 지향하는 도덕성을 구현하는 것으로만 당당히 살아가는 자” 라

하였다.
그러기에 이 선비정신을 제외하고는 조선사상사를 말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조선왕조 500년 존립의 가장 큰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선비정신이라 나는 생각한다.


범부(凡夫)들은  '전통유학은 현실적 사회감각과 철학 빈곤하다' 는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에 내재하는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본원적인

해결책이라고 당시의 유학자들은 믿었고, 이것이 오히려 유학의 생명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왕조의 정치적 역사는 신권(臣權)과 왕권(王權)의 시소(seesaw) 게임이었다.
주로 왕권이 그 근간을 이루어왔으나,

어떤 때는 신권이 왕권을 초월하기도 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왕권은 이를 되찾으려 그 때마다 신권을 핍박해왔다.
일정 주기마다 썩은 왕조와 사회부패를 척결하고자 하는 혁신적 개혁가들이

등장해왔지만, 결국, 그들의 손에 권력이 주어지자,

변절(變節)이란 나락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개혁세력들도 기득권자가 되면 보수세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권력의 생리이자, 수순인 모양이다.


어쩌면, 이런 선순환이자 악순환이 있음으로 해서 사회의 통기성(通氣性)이

유지되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이리라!
역사는 계속 존재하고 기록되나, 그 중심인 사람은 매번 바뀌었기에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현상의 일부분인 것이다.


사림(士林)이란, 현실적 권력의 자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의 전통을 지키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선의 선비를 말한다.
이들은 주자의 성리학(性理學)을 기본 바탕으로 조선 중기에 사회와 정치세력을

주도했는데, 그러기까지 사상과 정치적으로 훈구파(勳舊派)와의 피비릿내가

진동한 지리한 라이벌 관계를 이어갔다.
그 살벌한 사림의 피의 광풍에는 훈구파의 주도로 발생한 사화(士禍)를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데,  ‘사화 란, 말 그대로 사림이 화를 입는다’ 는 뜻이다.


본래 훈구파(勳舊派)는 조선 세조의 찬위(簒位)를 도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관료학자들인데,  조선중기 신진사류(新進士類)인 사림파(士林派)의 등장으로

그 세력이 위협을 받던 중,

사림파는 훈구파에 대해 토지제도의 개혁을 요구함으로써 두 세력 사이에

충돌을 야기하였고,  이에 대한 복수의 기회만을 엿보던 중,

1498년(연산군 4년) 훈구파 이극돈(李克墩), 유자광(柳子光) 등의 계략으로

발생한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사림은 큰 화를 입게 된다.

훈구파는 이 사화에서 영남유생과 싸워 승리했으나,

폐비 윤씨(장희빈)로 인한 연산군의 이성 잃은 폭정으로 인해 자신들의

존립기반에 위험을 느끼자,

중종반정(中宗反正)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즉위케 하였고,

이후 발생한 1519년(중종 14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사림을 또다시

피의 숙청으로 몰아넣은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중종반정 이후로부터 기묘사화의 중간지점에 바로 조광조가

등장하게 된다.
중종(中宗)은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드라마 ‘대장금(大長今)’에서

(극중의 허구이기는 하지만)  서장금과 로맨스를 펼친 주인공이다.


본래 사림은 지방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는 중.소 지주 출신의 지식인으로,

중앙의 정계에 진출하기보다는 지방에서 유향소(留鄕所)를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세력이었다.
학문적으로는 사장(詞章)보다는 경학(經學)을 중시하였고,

경학의 기본 정신을 송대 신유학 가운데서도 성리학(性理學)으로 귀결시켰다.
길재(吉再)의 학통을 이은 김종직(金宗直)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김일손(金馹孫) 등의 제자를 배출하면서 그 세력이 점점 커졌고,

이후 조광조(趙光祖)와 송시열(宋時烈)로 그 계보를 이룬다.


훈구세력들의 지나친 견제와 핍박 속에 오랜 세월동안 고전해오다

16세기 후반 선조(宣祖)의 즉위를 계기로 척신정치(治)가 일단 종식되면서

중앙에 활발하게 진출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 후에는 척신정치의 척결문제를 둘러싸고, 선배관인과 후배관인이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으로 대립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붕당(朋黨)으로의 분기가 거듭되고, 일부세력의 도태를 겪었으나,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을 계기로 17세기 후반까지 학연을 기반으로 한

서인(西人), 남인(南人)을 중심으로 붕당정치의 질서를 수립하였다.


권력가들의 탄압을 뚫고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면서 자기들의 이념을 정치에

구현하려 한 전통은 그 후 조선 후기의 지배층이 사회와 국정을 이끄는

기본정신이 되었다.
 참고로 부연하면, 최근까지 방영한 ‘불멸의 이순신’ 에 등장하는

 유성룡(柳成龍)이 동인(東人)의 인물이고,

 이에 반한 윤두수(尹斗壽)가 서인(西人)의 인물이다.


이제 이 책의 주인공인 조광조(趙光祖)에 대해 논(論)해 보도록 하겠다.
조광조는 성리학의 대가인 김굉필의 제자로 젊은 나이에 사림파 영수(領袖)로

발탁되었다.
34세 때 등용되어 대사헌(憲)에 이르고,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다

훈구(훈신·척신)의 강력한 반발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38세에 사사(賜死)된다.


조광조는 이상주의 정치를 꿈꾸었기에 우리나라를 요.순(堯.舜)삼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사상을 일컬어 흥지치(興至治)라 표현했다.
‘지극히 이상적 나라’ 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후대에 전해오는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다분히 상반되는데, 특히,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평가가 이체롭다.
퇴계는 그를 극히 높이 받들어 숭배하는 반면,
율곡은 공부가 덜된 상태에서 융통성 없는 도덕적 이상만 높고,

현실에 어두운 자로 평가했다.
바로, 이 양측 간의 관점이 주기론(主氣論)과 주리론(主理論)의

사상적 이념논쟁의 핵심구절이자 요소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1518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광조가 소격서(昭格署)를 혁파(革罷)할 당시, 지나친 읍소(泣訴)로

아침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중종을 쪼아댔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중종반정 당시 공신들의 위훈삭제(偉勳削蹄)를 실시하여

당시 76명이 공훈박탈을 계기로 조광조에 대한 기존 훈구 기득권세력의 원망이

드높았다.
그러나, 조광조의 사사는 많은 조정대신들의 중상, 모략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를 아꼈던 중종마저 조광조의 강직함과 절제된 도덕성에 기가 질려버려

결국, 중종이 조광조를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광조가 투옥 되었을 당시 성균관 유생 일 천여명이 광화문에 모여

그의 무죄를 호소하기도 했으나,

결국, 조광조는 전라남도 화순 근처의 능주로 유배당했다가 곧이어

사사(賜死)된다.
사사될 당시, 그가 읊었던 절명시(絶命詩)는 아직도 남아 그의 고결한 선배정신을

전해오고 있다.

 

 


"애군여애부(愛君如愛父) 
 우국여우가(憂國如憂家)
 
백일임하토(白日臨下土)
 
소소조단충(昭昭照丹衷)



 임금 섬기기를 어버지 섬기듯 하였고,   
 

 나라 근심하기를 집안 근심하듯 하였노라!   
 밝은 해가 아래 세상을 밝혀주니,    
 거짓 없는 이내 정성을 환하게 비추리라! 


사약(死藥)을 앞에 두고도 자신의 마지막 회한을 한 편의 시로 표현하는

이 깊은 선비의 멋!!!
캬~ 이래서 나는 옛 선비들의 기개(氣槪)와 풍류(風流)좋다.


(4-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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