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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유림 1부1권-조광조편 (최인호)

by 서윤경 posted Aug 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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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씨의 신간이자 장편 소설 유림은 세권씩 2부에 이르는 총 6권을 계획중인데 현재는 1부 세권이 나온 셈이다. 1부 세권은 각기 다른 인물을 중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각 권이 구분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1부 1권의 제목은 "왕도...하늘에 이르는 길"이고 조선조 중종시대 개혁 정치가 조광조에 대한 내용이다.



조광조...

성종 13년(1482년)에 태어나 중종 14년(1519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약을 받고 죽은 정치개혁자..썩어빠진 정치를 바로잡으려다 실패한 이상주의자 또는 아마추어 정치가...



'반드시 명분을 바로 잡겠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정명주의, 직역으로는 사물의 명칭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지만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자기의 주어진 직분이나 명분에 맞는 원칙을 구하는, 즉 질서의 극치를 구하고 이를 반드시 실행하여 하였던 개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조광조였던 것이다. (57쪽)



연산군의 이복 동생인 중종은 훈구 세력에 의해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르게 되고 공자의 정치 이념인 "왕도정치"를 펼치고자 조광조를 등용한다. 그러나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림세력들의 개혁정치는 훈구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중종 자신도 지나친 도덕주의에 염증을 느껴 조광조를 귀양보내고 그로부터 한달이 채 안되어 다시 사약을 받게 한다. 이를 기묘사화라 한다.



조광조에 대한 후세의 판단은 5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확실치가 않다. 송시열로부터 '성현의 도'와 '제왕의 법'을 갖추었던 하늘이 내린 인물로 찬양받기도 하였지만, 다른 이로부터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괴수'라고 단정되기도 한다. 그가 정치가로서 가지고 있던 치명적 약점 중 하나는 말을 즐겨하는 다변과 자기의 뜻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적인 교만이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가 한번 말을 꺼내면 하루종일 계속되어 차츰 조광조의 집요함에 실증을 느껴 중종도 싫어하는 기색이 완연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변은 정치가에겐 치명적인 듯...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중 흥미로우며 신비로운 인물이 하나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피색장..갖바치...

한 나라의 고위 대신과 갖바치와의 만남과 관계...

조광조는 도성안에 남다른 인격을 지닌 피장이 한 사람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의 남다름을 알아보고는 학문에 대해 묻거나 같이 자면서 시국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음...어찌보면 조광조의 신분 철폐사상과도 맞아떨어지는 일화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갖바치가 귀양가는 길의 조광조를 찾아와 그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 흰색과 검은색 짝짝이 신발(태사혜) 한켤레와 알듯 말듯한 이상한 글귀 하나...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219쪽)



첫 문장은 참수형에서 유배형으로 낮추어져 간신히 목숨을 건져낸 것을 의미할 것이라 해석되었지만 조광조 본인도 생전에 두번째 문장에 대해선 해석하질 못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바가 있었는지 조광조는 최후의 유언으로 그 갖바치가 준 태사혜를 신은채 매장해 달라고 한다. 아마도 그 갖바치의 예언이 맞다는 의미에서 일 것이다. 작가 최인호씨는 2번째 문장을 등소평의 '흑묘백묘론'과 연결지어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개혁가 조광조는 여전히 죽은지 5백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 짝은 검은 신을, 한짝은 흰 신을 신고 있지 아니한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자신의 이념에 의해 조광조가 검은 신을 신을 검은 사람이라고 단정짓는가 하면 조광조가 흰 신을 신은 흰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히 말해서 흰 빛깔과 검은 빛깔은 쥐를 잘 잡는 고양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흰 가죽신과 검은 가죽신은 조광조와 젼혀 상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조광조의 짝짝이 신발, 그 빛깔만을 문제 삼고 있지 않은가. (298쪽)



즉 그 갖바치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떤 색깔의 신발이든 몸에 잘 맞아 편안한 신발이면 좋은 신발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나...요즘 우리 사회에의 색깔론의 무의함과도 통하는 생각일 듯...



조광조가 신진사림파이든 대역죄인이든 과격주의자이든 실패한 정치가든 그것은 모두 신발의 색깔에 불과한 것이다. 조광조는 안내문에 나와 있던 대로 유교의 정신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던 개혁자였던 것이다. (300쪽)



한마디로 잼있다. 붙들자마자 뚝딱 읽어낼 정도의 내용이고 군데군데 머리속에 담아두고 싶은 한문장들을 익히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나이를 먹긴 했나보다...이런 고문장들이 머리속에 박히고 '아..참 맞는 말이다.' 싶은 공감을 얻는걸 보니...


<기억에 남길 구절들...>

○ 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 - 한 번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담을 수 없고, 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 破鏡再不照(파경재부조) – 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칠 수가 없다. 비슷한 말로써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돌아갈 수 없다란 말도 있음.

○ 逆鱗(역린) – 용의 목 근처에 난 비늘로 용은 순한 짐승이라 길을 들이면 사람이 올라탈 수 있으나 목 근처에는 길이가 한자나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어서 이것을 건드리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버림.

○ 皮裏陽秋(피리양추), 皮裏春秋(피리춘추) – 가죽의 속에는 춘추, 즉 역사가 있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은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마음속에는 속셈과 분별력이 있다는 뜻임.

○ 興一利不若除一害(흥일이불약제일해) –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다.

○ 古文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고문학자위기금지학자위인) – 옛날의 학자는 자기를 위해서 공부했지만 요즘의 학자는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기 위해서 공부한다.

○ 過猶不及(과유불급) –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다는 뜻

○ 人無遠廬 必有近憂(인무원여 필유근우) – 사람이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 중에 人無遠慮 難成大業(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도 있음.

○ 惡紫之奪朱也 惡利口之覆邦家者(악자지탈주야 악리구지복방가자) – 자주색이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며, 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사이비에 대한 경계를 가르침…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의 행위이며, 말 잘하는 입으로 나라를 전복시키는 행위 역시 도적의 행위인 것임.

○ 선부론(先富論) – 부유할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져라. 등소평의 경제이념

○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 흰 고양이이든 검은 고양이이든 어느 고양이든 상관없다. 쥐를 잘 잡는 고양이야말로 좋은 고양이인 것이다. 역시 등소평이 한 말로써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간에 돈을 잘 벌 수 있는 체제가 좋은 체제인 것이다.

○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를 간디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나누고 있음 ->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