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신부 023 (2-2편)

by 한창희 posted May 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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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편에 이어...)


 


 


지난 13일 “TV책을 말하다” 방청 녹화 중에,


진행자인 장정일, 김미화씨는 방청객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80년 5월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와
“시민군의 일원으로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사수의 현장에서


 떠남과 남음 사이에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솔직히,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해 전하고픈 말이 있었으나,


사전에 질문자가 정해진 관계로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이나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답변자 네 명 중, 두 명이 우리모임의 회원이었기에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한(?) 을 풀고자, 


오늘 이 공간에 당시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남기고자 한다.
(어쩌겠는가?   맺힌 것은  풀어내야지..! )  ^^;



 


첫번째 질문인,
“80년 5월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  ^^;
물론 농담이다.
실없이 보이겠지만, 광주라는 주제가 하도 엄숙하기에 조금이라도 


 경직을 풀고자하는 의미이니 애교로 생각해 주시길..  



나의 80년 5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의 시절로 애늙은이 라는 유년시절의


별명답게 또래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민에 빠져있었겠지만,


나의 그 고민 속에 광주는 없었다.


 


당시,  80년대 5공 정부의 3S 정책 <섹스(Sex) 영화(Screen) 스포츠(Sports)>로


점점 광주의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


그 중 하나인 스포츠에 얼이 빠져 비싼 회비를 내가며,


프로야구팀 OB베어즈 원년 소년부 회원으로 군사정권이 의도하는대로 


아홉 살 인생의 대부분을 빼앗기고,


나와 다른 팀의 소년부 회원으로 가입한 또래들과 유치한  입 씨름을 해가며,


'아홉수' 라는  인생의 첫 고비를 넘겼다.


 


 


다만, 80년대의 어느 날 무엇을 잘못했는지 경찰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동네 형아를 바라보면서 동네사람들의 수근거림과


끌~끌 혀 차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과,


강제적 집단 유희(遊戱)이었던 국민체조와 마스게임, 그리고


간혹, 반공교육이라 해서 틈만 나면 시민회관 같은 드넓은 강당으로


단체 활동이다 뭐다 끌려 다니며,  의무사항으로 들어야만했던


‘빨갱이를 때려잡자’ 는 목청 갈라진 어느 이름모를 귀순용사의


왠지모게 처량했던 웅변에 시큰둥한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그 당시 아홉 살짜리의 정치적 참여와 활동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리곤 87년 여름 즈음인가!


온 나라가 술렁이던 어느날,


카톨릭 연합회관이라는 곳엘 친구와 우연히 갔다가  당시,


'위르겐 힌즈페터' 라는 이방인 (당시 서독일 출신) 기자가 찍었다는


'광주비디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두번째 질문인,
“시민군의 일원으로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사수의 현장에


 떠남과 남음 사이에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내가 그 시간,  그 공간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떠남과  남음을 선택해야 한다면...”

결론을 먼저 말하면,
‘나는 남을 것이다.’
아직 젊은 객기가 남아서,  그저 감성에 치우친 오판도 아니요!
무분별한 사상의 회오리에 휘말려  타성에 젖은 선택도 아니다.
다만, 살아온 삶에 대한 흐릿한 기억과  남겨질 사랑하는 이들의 애틋한 얼굴이


아른거리겠지만...

물론,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는 있을지라도,  


그나마 보편 타당한 삶을 살고자 나름 노력해왔기에 위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요!
내가 아는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께서도 나의 이런 선택을 존중해 주심과 더불어,


그 선택이 옳다는 믿음으로 오랜 세월 나를 기억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것이 조국과 민족에 대한 나의 몫이요!
그 몫을 잊지 않는 것이,  '나' 다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80년 5월 17일 새벽 남아야 했던 그들은 이런 간절함이 더 컸었겠지..!
그들이라고 왜, 죽음이라는 또다른 여정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자국의 정부와 군인들에 의한,  그것도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총, 칼을


앞세워 자행하는  강제적 죽음을 앞두고서...
나는 그저 상상만으로도 그 위압감에 가위 눌리는데,
그들은 오죽 했을까..!


떠나는 자와  남는 자...
그 둘 중,  누구의 아픔이 더 클까..?

죽음..
인간이면 누구나 꼭 가야만 하는 길..

그러나 중요한 것은,


80년 5월 광주학살을 이야기 하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장신부와 같은


기득권자와 지식자들은 결국 떠났고,


현식과 민정, 인호와 같은 가진 것 없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소박한 희망을


꿈꾸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무지한 민초들은 남아야만 했던


아이러니한 그 죽음들이,
스스로의 수명(壽命)과 사명(使命)이 다한, 순차(循次)의 평화로운


죽음이었는가? 와, 


외부에 의한 무력과 타의에 의한 폭정과 억압에 의한,


원치 않는 강제적 죽음인가? 의 차이는 엄연한 괴리(乖離)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무고한 죽음들이 이율배반적 개념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죽음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반면,  떠난 자는 떠난 자의 아픔이 있고,


남은 자는 남은 자의 아픔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남은 자에게는 떠난 자에 대한 몫까지 덤으로 짊어져야 할


현실의 의무와 책임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진실인가? 를 세상에 알리고,  그 진실을 기억하는 일..."
그래서  


"다시는 그런 아픔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가르치는 일..!"
이것이 남은 자의 몫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 이 공간에 이 부족한 글을 남기는 모양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고,
진실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기에..!


"이 통곡의 땅에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비나이다." 


 



                        * 에필로그(Epilogue) *

그 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한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나는 남은 것이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일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이 무정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으므로...

- '여명의 눈동자'  마지막 장면에서 -


"나는 '오월의 신부' 를 읽으면서,  80년 광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문득, 베트남이 떠오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에게 국익이라는 이기적이고 지극히 자위적(自慰的)인


 명분으로 저질러진 야만적인 침략과 학살의 또 다른 단면이기 때문이어서


 그런가..?
 '그 무거운 마음의 빚을 어찌 갚아야 할지...'
 광주민주화 항쟁 25주년을 맞으며 나에게 묻는다..?" 


추신 : 얼치기 회원이라 일면식을 가진 회원이 거의 없었는데,
         지난 13일 “TV책을 말하다” 프로를 방청하면서 만난 다섯 분의 회원님


         (고광빈님, 이정환님, 문경수님, 송윤호님, 남기원님) 정말 반가웠습니다. 
         여러분을 기억하겠습니다.


** 개인적평점 : ★★★★


** 표현의 언어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 **

“김현식 : 아, 민정아, 지금너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잘 가라, 우리들 짧은 봄날이여!
             오월 흰 꽃 아래서 하얀 이로 웃던 내 사랑이여!
             내, 비록 죽음은 기꺼이 웃을 수 있지만 나는 지금 운다. 
             내 속절없는 사랑을 보내며.
             나, 어떤 이유 하나 때문에 기꺼이 죽지만, 
             아, 죽으면 그 불멸의 장막 뒤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너를 놓아버리고, 너를 잃고, 너를 잃어버린다면...”


“허인호 : 음마, 김현식 열사, 하지 말아요.


             사람한테 열사, 열사, 하는 거 아네요.
             그냥 사람 김현식, 사람 강혁, 해야하는 것이여요오.
장신부 : 그러니까. 인호 형제! (떨리는 목소리) 그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것을,


            이젠 받아들이세요!
            (갑자기 오열을 터뜨리며) 벌써 이십 년이나 되었단 말입니다!!
허인호 : (신부가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동안 화가 나서


             소리지른다)
             사람은 안 죽어요오!! 
             죽지 않는다. 다만 잠잔다 하라. 
             아 이렇게 요한 계시록에도 나와 있는디,


             아, 세상에 신부가 되가꼬 맨날 죽었다.
             죽었다 하시요오. 보시오. 나 보란 말이요.
             여기, 머리잉, 여기, 심장. 영어로 HEAD잉,


             HEART. 여기에 영생 영락하는 영혼과 마음이 다 들어 있당께요!
             그랑께 현식이랑 민정이랑 나한테 면회도 오고 그라지라우. 
             신부님보다 훨씬 자주 오라우. 
             (다소 사정조로) 긍께에 빨리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오.

이때 그레고리오 성가풍의 코러스, 희미하게 들려오고.

장신부 :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들어올리면 그 위에 조명)
            그렇습니다.
            때로 진실은 미치지 않고서는 다가갈 수 없는, 필사적인 어떤 것이지요.
            나는 이제 고백합니다.
            내 반평생 내 곁에서 칭얼대었던 저 널널한 인간이 바로 성자 였다는 걸
            오. 주여, 참으로 비정한 은총이시옵니다!
            이것이 스스로 구원된 자의 모습이라는 걸 보여주시려고,
            미쳐버린 저 사람을 저에게 보내주시고
            저의 영혼은 이 낡은 사제복처럼 폭삭 삭게 하셨군요
            그러나 정작 미친 자의 음성으로 불멸을 알게 하셨으니
            이 늙은 것은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멘!



전원 코러스 : (속삭이듯 빠르게) 사랑은 그렇게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빛나는 것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