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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7 09:00

미쳐야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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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천재 물리학자 뉴튼의 생애를 그린 [프린키피아의 천재]에서 뉴튼은 보통사람에게는 미친사람 처럼 보였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친구가 방문했을 때 포도주를 가지러 서재에 갔다가 좋은 착상이 떠오르면 책상에 앉아 밤이 새도록 노트를 끄적이면서 친구가 기다림에 지쳐 가버려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몰입의 대가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가지만 인류역사에 뭔가 남긴 사람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아니 없던 길을 새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다.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의 노력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려면 그것에 미쳐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 가운데 한 분야에 광기를 발휘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았다.



일년 내내 꽃밭 아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술의 모양, 잎새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백화보>>를 남긴 김덕형, 표구에 평생을 바친 방효량, 벼루에 빠진 정철조, 칼 수집광 김억, 매화 수집광 김석손, 수석에 미쳤던 이유신, 신위 등 수많은 광기의 소유자들이 등장한다.



1700년대 말에 수학, 천문, 역법, 주역, 악률, 그리고 서구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섭렵했던 김영의 처절한 탐구욕은 그 당시 보통사람의 눈에는 미친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이해력도 낮았던 김득신의 바보스럽기까지 한 독서편력은 기가 찰 정도이다. 그의 독서록에는 천 번 이상 읽지 않은 것은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한 번은 말을 타고 가다가 어떤 집에서 책읽는 소리가 들리자 김득신은 어디서 많이 듣던 문귀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말고삐를 끌던 하인이 먼저 기억을 해낼 정도로 김득신은 우둔했다고 한다. 그런 우둔한 머리로도 평생을 미친듯이 독서를 하여 말년에 큰 시인이 되었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싫은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어하고 칭찬만 원한다. 그 뜻은 물러터져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킴은 확고하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이루려 하지 않고 일확천금만 꿈꾼다. 여기에서 무슨 성취를 기약하겠는가?"



찢어지게 가난하여 입에 풀칠조차도 힘들게 살면서도 오로지 책만 읽다가 어머니 마저 영양실조로 돌아가게 했던 독서광 이덕무의 이야기는 화가 날 지경이다.



정조시대 노긍이라는 학자는 과거를 보는 도중에 동향의 늙고 곤궁한 선비가 빈 답안지를 안고 비척대는 것을 보고는 선뜻 제 원고를 그에게 주고 자신은 낙방은 물론 글을 팔아먹어 선비의 위신을 손상시켰다는 죄목으로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여기에 비하면 일전에 검사 아들의 시험답안을 대리 작성해주었다가 망신을 당한 모교사의 파렴치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가 점차 상업적 계약관계로 퇴락하고 있는 요즘의 세태는 송희갑과 황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되뇌이게 한다. 송희갑은 허균과 친구였던 대시인 권필의 제자였다. 권필은 임진왜란 후 세상에 뜻을 접고 강화도 송해면 바닷가에 초당을 짓고 살면서 자연과 책을 벗삼아 소일하고 있었다. 이 때 대전 송씨 가문의 서생 송희갑이 스스로 찾아와 권필을 곤궁한 가운데 지극정성으로 스승으로 모시면서 시문을 배우다 병을 얻어 고향에 돌아가 병상에서도 스승에게 편지를 올려 궁핍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제몸을 돌보지 않다가 세상을 떴다. 교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평생 이런 제자 한 명만 얻어도 족할 것이다.



열다섯살배기 어린 소년 시절에 처음 정약용을 만난 황상은 머리도 나쁘고 주변머리도 없으며 분별력도 없는 자기를 제자로 거두어 준 다산을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에 정진하여 대학자가 되었다. 자신이 부족함을 깨달았으면 항상 부지런해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황상은 예순이 넘은 늙은 나이에도 스승을 그리워 하다 잠이들어 꿈에서 돌아가신 스승의 늙고 쇠하신 모습을 뵙고 잠에서 깨어 통곡하며 <<몽곡>>이라는 시를 남겼다. 귀양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간 스승이 그리워 불원천리 다산을 방문하여 회혼례를 축하하러 갔다가 위중한 병중에 있던 스승께 절을 올리고 눈물로 작별을 고하는 장면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선생은 있으나 스승이 없고 학생은 있으나 제자가 없다는 말이 교수가 된지 15년이 되는 나에게는 뼈저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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