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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

 



                                                      유시민 지음






 


 







나에게 있어 이 책은 경제학을 주제로 한 ‘100분토론’ 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저자인 유시민이 과거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100분토론의 진행자였음을

가만해서인지 모르지만, 풍기는 유형과 배경이 제법 농후(濃厚)한 편이다.

그 유형과 배경에는 (다소무리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분법적인 포괄적 편 가르기(?)로

‘토마스 로버트 멜서스(Thomas Robert Malthus) 를 필두로 한,

고전파(신고전파) 경제학의 수구(守舊)적 보수주의 진영’과,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극좌 또는 극우(편향적 민족주의)의 급진(急進)적 혁명주의 진영’ 으로

상호 패널(panel)을 구분지어 놓고, 유시민 자신이 사회자가 되어 열띤 토론을

이끌어 간다.

 

거기에 덧붙여 토론회의 고문(顧問)의 지위에는 ‘보이지 않는 손’ 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란, 그럴듯한 토론 참가자격을 갖춘

아담 스미스(Adam Smith) 를,

또, 방청논객 대표로는 중도주의를 선택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는 시청자...!
어떤가?
제법 그럴듯한 구성 아닌가?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독서내내 상호 패널들의 살벌한(?) 토론이 계속되지만 승자는 없다.

다만, 유시민 자신이 ‘삐딱이’ 답게 마르크스(Marx)의 진영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한 흔적은 있다.

(삐딱이란 말의 유래에 관해서는 지난 ‘체게바라 평전 005’ 독후감에서 명시를

했기에 혹시, 본인의 글을 처음 읽는 분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회원께서는

참조를 바란다.) 

나는 전형적인 플로레타리아트(Proletariat)에 속하는 사람이어서인지

저자의 그런 세심한 배려에 많은 공감을 했다.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해서 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래서 '삐딱이' 끼리 동병상련(同病相憐)하는 모양이다.

 

 


이 책에는 대략 30~40여명의 경제학자들이 거론된다.

모두들 당대에 걸출한 인물로서  존경과, 선망 그리고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다.
책에 소개된 당대의 기라성 같은 경제학이론 중에는

내가 경제학에 그리 깊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님을 감안하여 가급적

너그러운 상식적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봐도,  도무지 납득이 되질않는 이론을

주창(主唱)한 경제학자들이 제법 있다.


(물론, 당시의 시대적상황과 사회구조, 정보의 격차 등의 변수적  시간 차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전.후로한  2세기 동안,  정보전달에 어두운 당대를

살아가면서 별다른 단초(端初) 와 시금석(試金石)없는 상태에서

한시적인 분석과 미래예측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고,

이점에 대해서는 현대사를 살아가는 역사의 후배인 내가 이해를 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쉬우면서 어렵다.
경제학하면 수많은 도표와 통계,  미.적분과 같은 금융공학의 산술공식을

연상하지만,

이 책은 산업혁명 전,후부터 근대사까지 이르는 경제학의 역사를

비교적 쉽게 엮어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고’  중간 중간 경제이론을 구체적으로 접근한 부분에서는 책장을 쉽게 넘기기가 어려웠다.

평소 경제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조금 진지한 자세의 선택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하게 인식한) 

‘한 가지 사실’ 과,

‘한 가지의 미련’

‘한가지의 해결방안 모색’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한 가지 사실’ 이란,

‘우리의 경제학,  우리들의 자본주의’ 이다.

현대의 경제학은,  그 근간을 유럽의 산업혁명에 둔 자본주의 체제의 틀을

이어가고 있으며,

달갑지는 않지만, 그런 경제학의 개념과는 별 상관없이 살아온 우리나라의

경제관념도  20세기 중반부터 국가의 문화와 지리적 특성과는 상관없이 

서구 경제학 이론을 있는 그대로  답습(踏襲)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게,

해방과 6.26의 혼돈을 거치면서 미로에서 헤매던 당시의 암담한 시대적

상황에 우리만의 독창적인 경제제도를 만들 수도 없었고,

별 뾰족한 대안마저 없었기에,  국제화, 세계화란 미명(美名)아래

서양 경제학 체계를  아무런 거름없이 도입(導入)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라의 근간인 헌법이나 기타 제반의 부속법령 또한 이와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과연,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받아들인 세계화란 허울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도움만을 주고 있는가?

혹시라도, 그 세계화란 체제 속에 보이지 않는 덫이 존재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세계화를 표방하는 문화우월주의의 자기매너리즘에 빠져든

서방 선진국들의  '보이지 않는 종속관계의 지배' 를 받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젊은 세대들이 꼭 짚어봐야 할 문제점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한가지의 미련’ 이란,

이루지 못한 미완의 꿈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 이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심각한 모순이 점점 그 영향력을 팽배(澎湃)할 즈음,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아웃사이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가난과 기아의 고통에 시달리던 민중들은 그들의 등장에 열광했으나,

속칭, 풍요로운 세계의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 유토피아에 저주와 비난을

퍼부었다.

바로, 그 지지와 열광,  저주와 비난의 중심에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가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본래,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마르크스주의 역시 존재할 수 없는

마치, 이란성 쌍생아와 같은 운명적인 이질적(異質的) 카테고리(category)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체제이다.
사회주의는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  이래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 복지와 번영을 갈망하는 이상주의자들이 발전시켜 온

사상이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낳은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불가피한 자연법칙의 산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으며, 인간은 물질적 탐욕과 이기심을 넘어서

더 높고, 고매한 동기에 의해 살고, 행동하는 존재라 믿었다.


그러나 그 세계는 순수와 열정만으로는 완성시킬 수 없었다.
그 순수와 열정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바래져갔고,

결국, 인간 본성의 욕구인 소유욕을 바탕으로 한,

1당 독재의 또 다른 아류(亞流)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일어난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몰락에 가까운

경제, 사회적 변화들은,  개혁과 혁명을 꿈꾸는 후손들에게 있어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한 세기를 뛰어넘어서까지 인류 문명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추구한 가치’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자기 수정과  그간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이유로

그가 추구한 이념적 가치를 부정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결국,

수구(守舊)적 자기방어의 일환이 되었다.

 

"경제적 평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자유,  소외되지 않는 노동, 

 정당한 근로에 의한 소득,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불합리한 관습과

 이데올로기(deology)로 부터의 해방,  개인의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 등

그가 옹호(擁護)한  “근본적 진리” 는 아무리 먼 미래라 할지라도

인류문명이 지향(志向)해야 할 목표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한가지의 해결방안 모색' 이란,

"과연, 자본주의의  다른 대안은 없는가?"  라는 화두(話頭)이다.

자본주의는 결코, 신성하고 영원한 체제일 수는 없게 되었으며,

동시에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당장은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계륵(鷄肋)과 같은 사회제도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 발로(發露)로,

보다 나은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에 힘입어 점점 복잡하고 불확실해지는 시대의

대안으로 사회주의 계열에서는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중국의 개방적 사회주의’ 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공인된 경제학을 주도하는 것은

공리주의(公理主義, axiomatism)적 쾌락주의 라는 공통된 철학적 토대위에 

신고전파와 케인즈의 이론을 합성한 소위, ‘현대 신 고전파 종합’ 이라는

온건한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거시(巨視), 미시(微視)적인 양면성에 대해 관찰하는 자본주의유형으로의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이 틀 안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의 맥락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껏 추진해온 1960년대 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모습은

개방형 경제구조로의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에서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 로의 선회(旋回)를 한 것이고,

결국, 수출형 드라이브로 우리의 생존방식을 규정 지은 것이다.

(한가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만약,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박현채 선생이 주창한 "내포적 공업화"로

 선택했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는 것이다.)

 

 

 

이에 관한 수많은 사람들의 분분한 의견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향후의 세계 경제학 역시, 이전세대가 번민하고 실패해왔던 시행착오들과

유사한 오류를 범하면서 수정을 거듭해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진행형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것에 대하여,

무엇을 예언한다는 것이 점점 모호해진다.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나,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과,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와 같은

미래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예언한 석학들은 이미 제3의 물결과 정보화 사회,

지식화 사회의 도래에 대하여 오래전에 예견한 바 있다.
그러나, 선 순환적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향후, 또 다른 어떤 변화의 후폭풍이 불어닥칠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 변화를 궁금해하고,  두려워한다.

 

 


예전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신문기자와 '미래에 대한 예측'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미래의 무기가 무엇일지 나는 모른다.
 (아마 핵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무기들 일 것이다.)
 다만, 인류 최후의 무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 줄 수 있다.
 인류최후의 무기는 바로 돌도끼 일 것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위의 문장이 이에 해당 될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준비해가는 과정에 있어 중요한 것은,

보다나은 세상을 갈망하는 인간의 의지들이 모아져서,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至論)이다.

 

 


** 개인적평점 : ★★★★

 

 

 

 

** 표현의 언어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 **

 

여러 대목들이 있으나,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선진국들의 정치공작을 경계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의 사상과  유시민,  그리고 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대목이 있기에 남기도록 하겠다.

 

“자유무역론자들의 말대로 전세계가 완전한 자유무역을 실시하고,

 각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만을 생산한다면,

 세계 전체의 생산을 최대화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팡내 나는 경제학 이론서가 간단히 설명하는

 ‘비교우위 상품으로의 특화’는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을 끔찍스러운

 고통의 나락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하나의 국민국가의 독립과 주권을 위협한다. 


 만약, 미국과 한국이 지금 시점에서 완전한 자유무역(상품거래와

 자본거래의 완전한 자율화 - 문화사업까지 포함된)을 실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저렴한 미국의 곡물과 육류는 우리의 농업을 절멸시킬 것이다.
 이것은 가뜩이나 침체된 한국 농민들에게 앉아서 굶어 죽거나,

 맨손을 쥐고 도시의 달동네로 옮겨 가거나,

 가장 나은 경우에조차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한 직업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방대한 자본을 가진 미국의 금융자본이 자유롭게 돈 장사를

 시작하면 금융업계의 한국인 사무 노동자들은 실업의 공포에 직면할

 것이다.
 신소재, 반도체, 정보통신,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
 미국 정부인가?
 그럴 리가 없다.
 수입개방의 대가로 미국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얻게 될

 한국의 자본가들, 

 예컨대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이른바 ‘비교우위 산업’의 자본가들 인가?
 그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 군대가 한국화약이나 풍산금속 등 군수산업체의 탱크와

 소총 대신 미국산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무장하게 될 것도 분명하다.
 이럴 경우 유사시에 미국 정부가 식량과 무기를 ‘무기화’하여 한국에 대한

 수출을 금지시킨다면 한국의 국토방위와, 국민생존의 경제적 기초는

 순식간에 붕괴해 버릴 것이다.

 

 어떤 시점에서 전세계가 완전한 자유무역을 실시한 경우 그 시점에서

 공업력이 약한 나라는 영원한 2등 국가로서 공업강국에 예속될 것이라는

 리스트의 우국충정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리스트의 사상은,

 그것이 파시스트와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악용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은 경제적 약소국가가 의지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난 쌀을 먹는 우리의 ‘존경받는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들’

 가운데,  ‘비교우위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전파하는 이가 많은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리스트의 말대로 ‘세계연합’과 공정한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한

 자유무역은 극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먼 이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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