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조회 수 180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북인도 바라나시의 한 여인숙에서 묵고 있을 때였다.
낮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늙은 여인숙 주인이 내게 묻곤 했다.

'오늘은 뭘 배웠소?'

그는 여행을 하러 온 내게 '오늘은 뭘 구경했소?'라고 묻지 않고 항상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못 들은 척할 수도 없어서 나는 아무
거나 둘러대곤 했다.

'오늘은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내 대답에 무척 신기해 하며, 심부름하는 아이까지 불러서 이렇게 말하
는 것이었다.

'이 손님이 오늘,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다는구나.'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그래요? 그런 걸 배웠대요?'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
이었다.

다음날 주인은 또 물었다.

'오늘은 뭘 배웠소?'

나는 또 아무거나 둘러댔다.

'오늘은 인도에 거지가 무척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그래요? 그럴 걸 배웠어요?'

하면서 또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자랑하듯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가 아이와 짜고서 나를 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작정
하고 다음날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은 인도에 쓸데없는 걸 묻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러자 여인숙 주인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누가 어떤 쓸데없는 걸 묻던가요?'

나는 그가 내 말뜻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알아듣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런 희한한 사람이 있습디다. 안녕히 주무시오.'

그런데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여인숙 주인은 똑같은 걸 묻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대꾸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주인은 심부
름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저 손님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는구나.'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괴상한 여인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다른 곳으
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곧 떠나야 했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
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
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그것은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딜 가든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그것을 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알
고 보니 그 여인숙 주인은 좋은 스승이었다.

- 류시화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76 공지 탈무드 file 정희정 2006.08.27 1790
975 [독서일기 17] 우주만화/ 이탈로 칼비노/ 이현경 옮김/ 민음사 정광모 2011.08.16 1790
974 공지 수난이대 심유정 2004.02.10 1791
973 공지 우리 시대의 상식론 file 정희정 2007.01.21 1791
972 공지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 채종국 2003.09.18 1792
971 공지 "하 늘 이 여 땅 이 여" 박종두 2004.02.08 1793
970 공지 카인의 후예 file 권정선 2004.04.03 1793
969 방문객_정현종 시집 '광휘의 속삭임"중에서 김동일 2013.12.17 1794
968 공지 열외제1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이경아 2003.10.02 1795
967 공지 "상 실 시 대" 박종두 2004.02.08 1796
966 공지 생각의 속도를 읽고 (16th) 1 file 송근호 2005.04.06 1797
965 공지 파페포포 투게더 심유정 2006.01.16 1797
964 미쳐야 미친다. 011 2 한창희 2004.08.26 1799
963 공지 [45] 행복한 이기주의자 (웨인다이어) 서윤경 2006.05.31 1799
962 공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 이재철 2006.12.13 1799
961 공지 [18]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서윤경 2005.05.25 1800
960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 김동일 2014.09.07 1801
959 공지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신지선 2006.11.13 1802
» 공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 (★★★★) file 송윤종 2003.11.19 1803
957 공지 11. 맥베스-세익스피어 정청미 2006.04.30 180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72 Next
/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