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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서태후/ 펄 S. 벅 지음

by 김은주 posted Sep 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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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칼날의 여인" 서태후



'예흐나라'라는 아름다운 아명처럼 뛰어난 통찰력과 총명함, 반면 비견할 데 없는 악독함으로도 칭송 받았던 서태후.

그녀의 정치적, 개인적 일생을 서술한다는 것은 필히 많은 고증과 수고를 필요로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펄벅은 그간 중국 역사에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악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던 서태후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여성다운 표본으로 부활한 것이다.

한 남자를 끊임없이 사랑했으나, 역사의 물줄기와 통치 권력이라는 거대담론 속에서 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의 주인공이자, 밀려오는 외세에 강력하게 대처해야만 했던 잔혹한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던 '꽃과 칼날의 여인, 서태후'.

펄벅의 서태후는,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서태후의 인간적 형상, 즉 보편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결정들을 넘어, 그녀가 그렇게 행해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들을 자금성의 풍부한 정취와 섞어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 메시지는 여타의 것들처럼 그녀의 권력이나 화려한 주변 상황이 아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상실감, 견딜 수 없는 불행한 상황들은 바로 서태후의 '영록'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적 고증보다는 소설적 관점이 더욱 부각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주제 때문일 것이다. 충실하지 못한 연인으로서의 삶, 누구보다도 강력한 권력 중심으로서의 삶, 이 두가지의 상충되는 가치는, 펄벅의 서태후에서는 결코 다른 의미의 것이 아니다. 누가 감히 한 인간이 가진 삶의 무게를 단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펄벅의 '서태후'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고개 숙인 소녀의 붉은 뺨을, 누군가를 죽음의 늪으로 밀어 넣는 비정한 눈빛을, 한 남자에게로 향한 애증과 슬픔의 눈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후 승리를 거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권력과 불행의 연인 서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