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소소한 즐거움

by 임은정 posted May 27,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늘 같은 패턴 안에 살아갑니다.


회사 규칙에 따라 하루 생활 패턴이 정해지지요.


아침이면 늘 일정한 시간에 같은 길로 출근을 하게 되겠지요. 저처럼 이요.




작년 여름 이직 후,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출근 시간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익숙하지 않은 출근 시간은 제게 곤혹이었습니다.


왕복 8차선 도로 위를 꽉 메운 차들, 양보 없는 운전자들. 꼬리에 꼬리 물기로 신호 기능이 무시된 무질서한 교차로.




도로를 꽉 메운 차안에 회사 출근규칙에 맞춰 도착해야하는 그들과 내가 있습니다.


불쾌한 감정은 그들로 하여금 내가, 또 나로 하여금 그들도 느끼고 있을 테지요.




출근길 무엇을 보고 지나가시나요?




초록불이 서둘러 뜨길 바라며 신호등만 보고 계신가요?


방어태세를 갖추고 내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없도록 살피고 계신가요?



요즘 EBS주파수에 채널을 맞추고 출발 전 영어학습을 다짐하지만 이내 예민해진 출근시민이 됩니다.


물론 볼멘소리 후에 아차 싶어 다시 라디오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지만 오늘도 도착 후에 기억에 남는 표현은 없네요. 


오랜 수행자도 힘들 것 같은 출근전쟁입니다.






그런 저에게 행운이 있었습니다.


세 달여 전에 알게 된 지름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택가와 천변 옆으로 난 1차선 도로로 적어도 신호 세 번은 피할 수 있는 길입니다.


5분 이상의 시간을 단축하게 되었으니 출근시민 '올레~'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름길은 저의 출근 명품코스임에 충분했습니다.


봄꽃들이 만개하여 일렬로 쭉 늘어선 모습은 딱딱한 회색 도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요.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택 옆으로 난 도로이기에 시속 40km 이하로 달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느린 바퀴의 움직임이 출근 시간에는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가 되네요.




명품코스를 지나치는 아침 제게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지름길 위에서 만난 한 명의 친구를 보는 일입니다.


각기 다른 24시간, 자신의 정해진 패턴 속에서 매일 아침이면 스칠 수밖에 없는 인연입니다.




늘 무표정한 얼굴과 책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 가방을 바닥에 닿을 듯 들고 가는 그 귀여운 초등학생이 제가 출근길에 늘 만나는 친구입니다.


그 아이의 등교시간과 저의 출근시간이 지름길 위에서 교묘하게 맞아 거의 매일 마주치게 되지요.


내가 차로 지나온 길은 그 아이가 걷고, 그 아이가 터벅터벅 걸어온 길은 제가 지나가게 되지요.


등굣길에 특별할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유독 그 아이만 기억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지름길 위를 걸어 등교하는 유일한 아이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3달 동안 지름길 위의 유일한 그 초등학생을 보게 되며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늘 똑같은 무표정과 느릿한 발걸음입니다. 서두르는 법이 없네요.


늘 길의 오른쪽을 걷는 그 아이가 왼쪽 길을 걷는 횟수는 한손에 꼽을 정도 입니다.


비가 잦았던 올봄에는 우산을 방패삼아 걷고 있는 그 아이가 있고요. 어느 날은 우산 속에 어머니를 옆으로 꼭 안고 등교하는 그 아이가 보이네요. (그날도 무표정이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반대편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네요.


근데 오늘은 귀에 이어폰을 꼽았어요.ㅎ 흰색에 핑크색이 들어간 상큼한 이어폰이네요. 




그 아이에겐 적어도 3~4년을 매일같이 걸어 등교한 길에 방해꾼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어린 초등학생이 반갑습니다.


오늘 저도 모르게 차 안에서 ‘안녕~~^_____^’을 외치네요! ㅎ


물론 매일 보는 그 초등학생의 등교 모습이 저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겠지요.




오늘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저의 출근길이 즐겁습니다. 즐거운 출근길이 될 수 있도록 해준 그 친구에게도 감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