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be

by 전광준 posted May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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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전인가 내가 전문 불법사교육으로 먹고 살 때 일이다.



 쪽집게 강의로 먹고 살다보니 예지력까지 얻었는지 주위 사람들의 앞날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예측이 맞아 떨어지다 보니, 순간 교만해져 예외를 인정치 않는 교만함이란게 생겨났다. 나를 돌아보기는 커녕 남들의 안될 징후를 찾아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한편으로 자기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다 보니 속상한 일뿐이다. 자연에도 과학에도 모든 만물에도 예외란게 있다는데, 사람이라고 예외가 없을까마는 아래처럼 흔한 말을 훈장인양 하고 만다.


 '내가 학생때는 말야, 새벽에 일어나 영어공부 3시간 했었어! 버스, 지하철에서 영어책을 손에서 안뗐어! 지금도 엘리베이터 기다릴때 영어단어 하나라도 보는데, 늬들은 하는 짓이 글러먹었어, 도대체 뭐냔 말이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이 떨어져 강압을 쓰거나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교만은 확실히 그랬다. 주로 과외받던 학생들이 피해자였는데, 이를테면 숙제 몇개 안했다고 해서 공부할 놈년이 아니라는 막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학교 입학에서 졸업에 이르기까지 나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고등학교 들어와 내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자 그네들의 몇 가지 약점에 대해 집요하게 거들먹거리면서 고치라는 협박과 매를 들었다. 그러자 과외를 단체로 끊고 수학 파트너 선생에게 가서 내 뒷담화를 했다고 들었다. 너무 심한거 아니냐는 수학선생의 말에 '걔네들은 애초부터 공부하려는 애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강경한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학생들과 마지막 자리에서는 '그간 나로 인해 고통스러웠다면 미안했다.. 너희는 그간 내 말대로 공부 안하려는 애들은 아니었단다. 다만, 나와 잘 안맞았을 뿐이니, 너희에게 맞는 다른 선생을 찾아 잘 공부하면 될 것이다.'라는 덕담으로 관계를 정리했다. 물론 이를 악물고 마음에도 없는 반어법을 사용한 것이었으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까지 세상 살면서 한 말 중 제일 잘한 말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드는 것이다.



 지금 다시 그 일을 차분히 떠올려 보면, 실은 나는 그들을 다룰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학교 출제문제와 내가 밑줄 치라 했던 부분, 빈칸 만들라 했던 부분을 비교해주면서 도대체 시험문제에 꼭 나온다고 강조한 이걸 어떻게 틀릴 수가 있느냐며 호통을 쳤었다.



 호통을 치는 능력과 나 잘났다며 으스댄 꼴만 보였지, 그네들의 갑갑한 마음은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밑줄 긋고 빈칸 만들라며 세 번 반복해준 걸 오죽해야 틀릴까. 뭔가 나한테 잘못은 없었나, 내가 학생을 보는 애정이 부족했나, 소통이 부족했나를 성찰하기 보단 잘못은 무조건 배울 자격없는 학생에게 있고, 그런 학생과 엮이면 나만 피곤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내 과외방법에 심각한 약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결국 학생도 피해자였는데, 원인제공자로만 몰아부쳤던 건 교만한 탓이었다.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한데다가 마지막 자리에서마저 학생들을 비난했다면 나는 그 얼마나 파렴치한일까. 적어도 그들과는 좋은 끝을 맺어 다행이었다.



 물론 이 교훈을 통해 내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면, 또 교만해졌을 터였다. 고맙게도 그 이후로 몇 번 더 그랬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흘러 비슷한 교만의 길을 밟고 있는 주변인을 발견하게 됐다. 만류하고 싶었지만, 조언을 줄 위치가 아니라서 아무 말도 안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쉬움이 컸다. 그는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했다. 지금은 완고해져 아예 외면과 저주를 퍼붓는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까닭은 대신에 나를 뒤돌아 보느라 그랬다. 



 남을 감찰하는 그 시간에 스스로를 감찰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자연(自然)의 이치 아닌가.



 왜 아무개는 나한테 저런 행동을 할까... 남이 아닌, 내 주변을 돌아보면 그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