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失戀

by 전광준 posted Mar 25,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야간운전






  오랜 만에 파란 색, 빨간 색 신호 없는 그 해의 어두운 길을 달린다. 속 깊은 얘길 나누고 오는 길, 마주 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오면 그럼 피하지 말자, 난 죽는거겠지.. 그렇게 달려들 것만 같은 눈 부신 전조등을 주시하며 감상(感傷)적 야간운전에 숨을 맡겼다.





 


  앵앵소리에 초록불빛 번뜩이며 119구급차가 위급한 목숨을 실어 적막한 차들 사이사이를 빗긴다. 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저 차에 탄 듯 마음이 시큰거린다. 저 멀리 가버린 '번뜩이'는 내 마음 속에 기인 자국을 남겼다.



 


  센과 치히로의 물 잠긴 밤기찻길마냥 닮은 갑천역(甲川驛) 싸인을 지나자 도로 한 가운데 웬 자전거남이 곡선을 그린다. 차가 오던 말던 신호도 무시하고 유유히 차 사이사이를 지나면, 달려오는 차도 그에게는 겁나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겁이 났던 건 필시 사랑을 잘못 스쳐 생긴 상처일 것이다. 저것봐, 이 늦은 시간에 인기척도 없는 갑천의 밤 속으로 길 건넌단다. 상처는 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그 구멍만큼 휑한 밤갑천은 그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그는 조밀함 대신 공허함으로 불리워갔다.




 

  그녀 집을 스쳐지나간다. 시속 60km 내 눈은 그녀의 방에 찰나의 시선을 두었다. 우리가 입술을 스쳐간 그 해처럼, 스쳐간 품안처럼, 추억은 탄지처럼.... 그 해의 겁파마냥 믿었던 '고래의 도약'은 그렇게 찰나로 스쳐간다. 우리 삶연서(煙逝) 서로 스쳐보냈다, 야간운전의 숨 맡긴 전조등처럼, 119구급차처럼, 웬 자전거남 처럼.





 






 -듣보잡 全












 * 2년전 쓴 글인데, 간만에 꺼내 읽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피하지말자, 그럼 죽는거겠지' .. ㅋㅋ 얼마 전부터 운전대만 잡으면 죽을까봐 무서워 불안장애로 추정하는 증세마저 생겨났다는... ㅡㅜ 오호..



 * 센과 치히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름)

 * 고래의 도약 (타무라 시게루의 애니메이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