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찾기

by 관리자 posted Jul 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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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99
저자 박영의
출판사 여시아문
발표자 박영의
일자 2006-08-08
장소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자 강연제목: 현대미국소설론

효산 박영의 < 마음찾기> 여시아문 2005년6월 : 불교영어시집


저자는 해방 직후부터 약 60여 년 동안 기독교에서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였으나, 복종적 믿음에 대한 참된 신과 인간관계를 갈망하던 중 'Herman Meville'의 작품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진정 하나님과 부처님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참된 자아를 찾는 길이 유일신이 아닌 자기 본성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참나를 찾기 위한 수행과 함께, 참종교에 대한 가르침의 올바른 방향을 알리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문학개관> 등 다수
충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역임, 한국 동서비교문학회 초대회장.
추천도서:월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8월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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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081
윌리엄 포크너 (Willium Faulkner)
20세기 미국 문학이 낳은 위대한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1897년 미시시피 주의 뉴올버니에서 태어났다. 군인이자 작가, 정치가였던 증조부와 변호사로 성공한 조부 밑에서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며 미국 남부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의 사업차 이주한 옥스퍼드에서 학교를 다녔으나 혼자만의 독서와 사색에 심취하여 고등학교 때 자퇴하였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군대에 자원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작가 수업을 쌓으며 첫 소설 <병사의 보수>를 출간했다. 소꿉친구였던 에스텔 프랭클린과 결혼한 다음 <음향과 분노>를 내놓으며 소설가로서 기틀을 다졌고 곧이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와 <8월의 빛><압살롬, 압살롬!> 같은 문제작을 완성했다.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자연과 투박하고도 인간의 진실한 삶을 다룬 작품을 차례로 내놓으면서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자신의 고향인 남부 지역 특유의 지방색에 고도의 상징과 의식의 흐름 기법과 같은 실험성을 접목하여 삶과 죽음, 운명과 욕망 같은 보편적인 주제에 도달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로 내셔널 북 어워드와 퓰리처상, 노벨 문학상을 차례로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1962년 고향 미시시피에서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독자리뷰

장 그르니에의 소설, [섬] 은 내용보다 서문이 더 유명한 책이다. 그르니에를 충실하게 따랐던 작가, 알베르 카뮈가 서문을 썼기 때문이다. 서문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책을 펼친 그 누구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
책을 펼쳐들고 한 자, 한 자 읽어나갈 때의 설레임과 감동.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느낄 '새로운 독자'의 심정이 아마 부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똑같은 놀라움은 아마 이미 책을 탐독한 그가 다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은 그 전부터 좋아했다. 아니, 국내에 발간 된 소설이 몇 권 없기 때문에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를 읽기 전에는 단 한 권 밖에 읽지 못한 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포크너에 매료되기에는 충분했다. 그 책은 포크너를 단번에 작가 대열로 오르게 했던 [음향과 분노]였다. 이 책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가족'이란 설정은 어쩌면 우리가 쉽게 속아 넘어가는 어떤 이미지를 제시할 뿐이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마는, 보통의 소설에서 설정할 수 있는 관계설정을 가장 편한 방법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포크너의 놀라운 점은 그들이 가족이라는, 어쩔 수 없이 공통된 분모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설정을 뛰어넘는다는 것에 있다. 그들은 가족이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다. 각각의 캐릭터가 확실하고, 성격도 다양하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설계같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을 뛰어넘어 버린다. 그리고 난해하다는 통념이 무색하게 좀 더 빨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역시 음향과 분노와 비슷한 구성을 갖고 출발한다. 우선, 한 가족이 등장한다. 그들이 처해있는 어떤 상황과 가족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점 사이에서 그들은 고민한다. 그것은 개별적인 욕망과 가장 표면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는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며 발생하는 증오나 불안 등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표리부동적인 고민을 하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도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한 인물은 없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실제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내 바로 옆에서 숨쉬고 있는 인간 중 하나일거란 느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등장인물 중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그들 중 누군가를 완벽하게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리얼리티이다. 하지만 소설이 끝나고 나서 침대나 쇼파에 걸터앉아 어떤 배신감과 허탈함을 경험하고 난 후, 우리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공평한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연민' 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작가인 것 같다. 그에 대한 전면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그의 소설은 난해하다, 시점이 혼란스럽다, 글씨체가 자꾸 바뀐다는 식의 평을 어디에서든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읽은 그의 소설 두 편을 중심으로 생각해 봤을 때, 그의 소설은 오히려 아주 객관적이고, 구체적이고 어쩐지 작가의 배려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형식상의 문제이고, 내용적으로는 이 작가는 슬픔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인간에 대한 애착이 소설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포크너의 소설을 읽고 싶다면,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를 제일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압살롬, 압살롬!]을 읽고 있기 때문에 느낀 것인데,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가 가장 포크너의 문체를 이해하기 쉽고, 그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포크너에게 관심을 갖기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되도록이면 그에 대해 관심을 갖아서 그의 소설을 모조리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후회는 남는다. 이 소설을 좀 더 빨리 읽어서 내 오랜 친구들이 이 소설을 마음 속 깊이까지 공유하도록 만들었어야 하는데. 혹은, 이것을 아주 나중에 만나서 내가 이 소설을 읽기위해 그동안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전전긍긍했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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