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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월 추천영화 - 왜 '더 로드' 인가

by 전광준 posted Jan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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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내가 기억해야할 첫 명장면이었다. 질기게 목숨을 부지하던 한 생명체가, 자신의 분신을 곁에 두고 자신을 분만했던 가이아 지구의 어느 품 안에서, 주어진 생명을 다하고 추억과 분신과 그리고 잔혹한 현실에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었다.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마저 서슴치 않았던 그의 마지막 언어는 눈물이었다. 참으로 처연했고 숭고했다.



    




 영화는 로우키 조명(12월 창디 영화읽기)으로 현실성을 더했고 채도를 낮춤으로써 희망없는 암울한 미래상을 시각화하고 있다. 나무는 말라 쓰러져가고 지축을 뒤흔드는 지각운동의 굉음은 외화면 내재음향 off-screen diegetic sound (1월 창디 영화발표)으로 처리, 폐허의 공간을 포효하며 살아남은 생명체들을 더욱 두려움에 떨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공간은 가까운 미래의 미국, 캐릭터들의 동기는 추위와 기근을 피해 남쪽으로 무작정 내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적대적 캐릭터들은 그러한 이들을 식량으로 삼는 같은 인간이다.



 이러한 설정만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충분히 아연실색케 만든다. 이런 걸 상상해봤다. 우리에게도  빙하기가 갑자기 닥쳐와 -영화에서는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대변동- 작물을 심을 수 없고, 동물들조차 인간의 식량으로 소진되는 어느 날, 과연 인간성(humanity)은 지켜질 것인가. 부정적인 견해를 답으로 갖는 나는 괴로운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물을 폄하하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상상의 끝에서 나는 내 안의 야생과 마주쳤다. 결국 영화에서처럼 굶주림을 참다못해 자살하거나 동족을 식량으로 삼는 일은 사회적 위치와 인품, 학식, 직업과 전혀 상관없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무슨 선택을 할까. 자살일까, 식인일까..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영화에 대해 그 이상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미 수 년전부터 미국 헐리웃 영화에서 읽히기 시작한 미국내 자기반성의 징후만큼은 꼭 언급하고 싶다. 기존 미국 대중영화의 주류는 사건발생의 인과관계가 명확했고, 선악이 분명하게 규정지어졌으며, 권선징악의 명쾌한 결말로 흘러갔다. 냉전대립의 끝 무렵이었던 70년대말 80년대에 이르면 악몽같은 베트남전을 외면한채, 초강대국 미국의 자신감과 과학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영화적 과장이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람보,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로보캅, 터미네이터 등등. 물론 스스로 만들어낸 악몽을 직시하는 자기반성의 움직임도 있었으나 주류의 흐름으로 인정하기에는 민망했고, 미약했다. - 플래툰, JFK, 월 스트리트, 네트워크 등등



 60년대말에 태동해 10년간 꽃 피운 뉴아메리칸 시네마로 미국 주류의 자기반성은 이미 끝나버린 백일몽이었던가! 라는 푸념의 끝자락에서 나는 2000년대말부터 시작된 미국 대중상업영화의 어느 경향에 눈과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초강대국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졌던 미국의 실체가 911 이후 테러공포와 금융위기로 발가벗겨져 드러난  뒤 미국민의 무너진 자존심 내지 겸허함은 주류를 이루었던 권선징악의 액션물이 이제 한낱 추억꺼리 혹은 시대착오라는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시켰을 것이다.  



 미스트, 클로버필드,  제임스 본 3부작 등등은 실체없는 테러공포에 시달리고, 명분없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미국민들의 심리를 정확히 짚어낸 영화들이다. 






 그 정점에서 나온 '더 로드'는 3백만명이 매 끼니를 걱정하고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도 못 받는 빈민층의 증가, 실업,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아래 착취를 거듭하던 거대금융자본의 음모 상황에서 발단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경제위기상황에 놓였던 미국민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해낸다.



 영화 속에서 선과 악을 명확히 구별하고 악에 대항하려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악행들을 아들이라는 거울을 통해 들여다본다. 현재 미국에 대한 이보다 더 적절한 은유가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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