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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4 09:12

'관'으로서의 인간

조회 수 2831 추천 수 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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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면역의 의미론을 읽다가 힌트를 얻어서 썼던 글입니다. 
[면역의 의미론] 관련 올려주신 글 감사합니다. 제 글도 혹시나 흥미로울까 해서 한번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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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린아이들 밥먹는게 신기할 때가 있다. 어떻게 저기 얼굴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걸 알고 그리로 수저를 가져가는 걸까.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입구멍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거울을 보지 않고도 안다. ‘와~’ 우리 큰 딸이 처음 태어나자마자 젖꼭지를 찾아 얼굴을 파묻던 기억이 생생하다. 입구멍이 어디있던지는 뱃속부터 알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을 입속에 쏘옥 낀채 찍힌 태아 사진은 소화관이 열렸다는 걸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이제 막 탄생한 아이들의 신비함은 또 다른 구멍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작게 뚫린 콧구멍사이로 바람이 드나드는 것인데, 귀를 콧구멍에 가깝게 대고 있으면 색색거리는 바람소리가 피부와 귀로 느껴진다. 눈을 뜨면 아이의 복부가 파도치듯 살랑거리는 것을 보인다. 구멍이 두 개 뚫려있고, 그리로 쉴새없이 바람이 드나듦이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다. 탄생의 순간은 구멍이 열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손가락을 빨기시작한 입구멍, 바람이 드나드는 숨구멍. 

 


  실로 인간은 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서 열거한 호흡기관, 소화관 외에 중요한 관이 하나더 있으니 바로 혈관이다. 피가 통하는 관인 혈관은 혈액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혈액은 몸 밖과 몸 안의 물질들을 끊임 없이 실어 나름으로써 궁극적으로 세포의 생명활동을 보장한다. ‘관’의 의미하는 것은 소통이다. 관으로 뭔가가 소통되는 것이 생명현상이다. 호흡기관은 대기와 소통하고, 소화관은 땅과 소통하고, 혈관은 궁극적 생명단위인 세포안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 소통하도록 해준다. 소통, 오고감, 드나듦을 통해 유기체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벗어나서, 풍화되지 않고 녹슬지 않으며 성장한다.


  이것은 삶의 마지막을 연장시키려고 치료하는 중환자실에서도 극명하게 확인된다. 중환자실에서는 몸의 모든 관이 닫히지 않도록 노력한다. 혈관을 유지시키기 위해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고, 호흡기관을 유지시키기 위해 기관삽관후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소화관을 유지시키기 위해 라빈튜브를 위장까지 밀어넣는다. 중환자실 침대위에는 주렁주렁 뭔가가 참 많이 달려있고 복잡해 보이지만 목적은 하나다. ‘관이 닫히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관'의 중요성은 그 크기로도 드러난다. 우리몸에서 가장 큰 장기인 피부와 관-소화관, 호흡기관의 표면적을 비교해 보자. 우리 몸의 가장 큰 장기이며,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의 표면적은 성인에서 2㎡정도 된다. 반면에 호흡기관의 표면적은 80㎡로 피부의 40배나 된다. 들어가는 숨구멍은 하나이지만, 실질적 기능단위인 폐포의 숫자가 3억개나 되기 때문이다. 피부에 비해 40배되는 표면적이 매 순간 대기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소화관은 미세한 주름 점막으로 이루어져 표면적을 극대화시킨다. 그 표면적이 400㎡, 테니스 코트 두 개 면적에 해당한다.


  개체를 외부와 구분지어주는 표면적에 비해, 외부와 소통하는 표면적이 이토록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있다. ‘나’와 ‘남’을 교류하는 것이 ‘나’와 ‘남’을 구분짓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살기위해서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닫힌계가 아닌 열린계이다. 한 순간도 혼자서 살 수는 없다. 외부와의 환경과의 교류속에 생명이 유지되는데, 소통과 교류의 범위가 일상적 사고를 넘어선다. ‘생명이란 소통하는 존재’라는 말로는 모자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강조해 표현하면 이렇다. 생명이란 ‘흐름이 나타내는 현상’이다. ‘소통속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배변의 현장. 배설의 그 순간의 미묘함이 표정하나로 표현되었다. 배설이란 단순이 나갈 것이 나갈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을 위해 괄약근의 이완, 평활근의 수축, 복근과 심지어 얼굴의 표정까지 온 몸의 용씀을 통해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적 행위이다.


  몸의 소화관으로 들어온 땅의 자원들이 극단의 뱃속 환경 - 염산을 뿌린듯한 산성의 환경, 위창자벽의 물리적 충돌, 살을 갉아먹으려 덤벼드는 온갖 세균과 효소의 공격 - 을 겪어내고 몸 안으로 흡수된다. 처절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피와 살이 되지 못한 뱃속의 루저들은 다시 새로운 ‘관’을 찾아 떠나야 한다. 배설되어 다시 땅의 품으로 갔다가 언젠가 다시 새로운 ‘관’을 찾아 떠날 것이다. ‘관’은 피와 살이되고자 하는 노력과 분투,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땅 모든 유기물들의 운명인 것이다. ‘관’에서 또다시 새로운 ‘관’으로...

  • profile
    김형태 2012.09.24 09:12
    와~ 멋진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이낙원 회원님께서는 글을 정말 맛깔나게 쓰시네요. ^^
    <면역의 의미론> 이 책은, 이상하게도 제 마음에 계속 남아 있는 책입니다.
    이낙원 회원님의 통찰이 담긴 글을 통해, 이 책이 왜 중요한 지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사진속의 귀여운 공주님은 큰 따님이신가 봅니다. 입주위의 자국을 보니, 짜장면을 먹은 듯 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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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록 2012.09.24 09:12
    입과 항문으로 연결된 것을 도너츠라고 표현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생물학에서 어느 것이 먼저 생겼냐를 두고 원구, 후구 생물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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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주 2012.09.24 09:12
    내 몸 속의 소통이 마음과 마음의 소통만큼이나 중요하네요..
    조카들이 어미새에게 모이 받아먹듯 셋이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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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훈 2012.09.24 09:1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3차원이라서 관이 가능하다는...3차원공간에 감사할 일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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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희 2012.09.24 09:12
    이럴 글을 읽을 땐 위상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
    때론, 관 속이 진짜 나인지, 관 밖이 진짜 나인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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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두 2012.09.24 09:12
    관 안은 분명히 안이 아니고,
    그렇다고 관 밖이 안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상한 위상공간.

    안은 어디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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