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러시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년이지만,
단 한번도 러시아는 나에게 1순위인적은 없었다.
나는 전공 때문에 그곳으로 떠났지, 러시아를 보고 떠난 게 아니였던 것이다.
그렇게 무심하게 내 옆의 존재로만 남겨둔 item, 러시아.
230차 강연 준비를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선물을 받았다.
로켓엔진이 나에게 지식을 주고 열정을 이어가게 해 주었다면,
러시아는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던 것.
열악한 환경과 극도로 답답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이겨낼 수 있는지,
도저히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은 긴 겨울밤,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은 끝없는 눈발 속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연앞에 내던져진 좌절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현명하게 절망할 수 있는지,
끝이 정해진 시간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번도 접한 적 없었던 상당한 문화예술의 충격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
모든 것이 끔찍한, 탈출도 시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생존해야 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부족한 물자 앞에서, 내가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수는 없는지,
또, 내가 살아가며 진정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어느 누구도 이런 질문에 답을 해 주진 않았지만,
러시아라는 환경은 나로하여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 만들어 주었나보다.
사랑이었다. 그리고 진심 어린 공감과 이해와 애정이었다.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이 내민 사랑에 어느새 러시아를 사랑하게 된 나를 발견한다.
부족한 그들, 그리고 나 또한 역시 무언가 부족한 인간이지 않은가!
이런 깨닳음은 흩어져 있던 지식이 차곡차곡 쌓이는 즐거움 못지않은,
새로운 인간으로서의 태어나는 나의 재발견이고, 모스크바 생활이 준 선물이다.
이제야 비로서 러시아가 나의 일부였음을 알게 된다.
늦었지만 끝까지 기다려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먼 길을, 눈 길을 달려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새로 오신 분들께도 감사.
무엇보다도 강연자와 청중들의 싱크로율 100% 였던 강연에도 감사.
끝으로, 나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주신 백북스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즐거운 강연이었어요~
모두다 행복한 시간이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