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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고요 (92회)

by 송윤호 posted Sep 1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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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편지’로 인해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시를 좋아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06년도 만해문학상에 빛나는 살아있는 최고의 시인, 황동규를 만났다.



황동규 시인이 찾은 100권 독서클럽은 독서량이 부족한 대학생들에게 폭넓은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2주에 한권씩 4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2002년 6월 만들어진 모임이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현재 연구원, 교수, 사회원 등 각계 전문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대덕밸리 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관련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과 토론의 시간을 가진다.



25일 오후 7시 황동규 시인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자리에 앉은 황동규와 함께 그의 시를 읊으며 자랐던 중장년층은 물론, 파릇파릇한 대학 새내기까지 모두 설레임과 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황동규 시인은 특유의 좌중을 휘어잡는 유머와 카리스마로 강연장을 이내 시의 세계로 변화시켰고, 이내 사람들을 그의 시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황동규 시인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너도 나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것을 획득하려 정신없이 뛰고 있는 이 세상에서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것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문학의 바보스러움이 지닌 매력 때문이다”라는 말로 문학을 하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또, “내 문학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의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애인 혹은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의 견딤과 포용의 환희와 막막함으로 차있다”면서 자신의 문학을 평가하였다.



호기심이 많은 황동규 시인



황동규 시인은 본인 스스로 호기심이 많다고 얘기한다.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고전음악에 빠져 지내고, 여러 작품에 대한 연구까지 한다”고 하였고, 실제로 시 속에 작품 이름을 그대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또한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와 신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깊다. “최근에는 도그마를 잠시 옆에 제쳐놓은 예수와 석가가 허심탄회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연작시로 쓰고 있는데 솔직히 많은 비판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만해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고 하였다. 석가와 예수를 등장시켜 이들 서로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한 점은 종교사상의 시적융합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 외에 모자란 호기심은 여행을 통해 채웠다. 우리나라에서 볼만한 곳 치고 안 가본 데가 별로 없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관광여행이 아닌 진짜여행을 즐겼고, 국외로 나갔던 여행에서도 모자란 호기심을 채우고 돌아왔다. 터키여행 중의 세마춤과 절름발이에 대한 호기심이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서’라는 시를 낳았다.

‘즐거운 편지’



‘즐거운 편지’ 56년 전 황동규 시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연상의 여인을 생각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영화 ‘편지’에 삽입되면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황동규 시인이 작품을 쓸 당시 연애시는 미당, 만해, 소월부터 큰 흐름이 있었다. ‘진달래꽃’, ‘님의 침묵’ 등 사랑하는 님이 떠나고 혼자 남아 님이 돌아오길 바라는 여성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에 대해 황동규 시인은 “좋은 것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은 것이 적당히 섞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당시의 흐름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또,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이는 사랑이 그칠 것. 이별까지도 포용하겠다는 의미다. 이별까지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면 사랑은 즐거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운 편지’이다”라면서 작품을 해설했다.



‘기항지 1’



이 시는 황동규 시인의 대학교 3학년 때 작품이다. 여행을 즐겼던 황동규 시인은 몇 번에 걸쳐 남해의 여러 항구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남해에 있는 2~3개의 항구를 합성해서 가상적인 항구를 만들어 ‘기항지 1’ 이라는 시를 만들었다.



황동규 시인은 “모든 배들이 선미를 항구에 대고, 뱃머리를 바다 쪽으로 향하게 하여 금방이라도 자유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뱃머리를 항구에 대고 있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 자유의 시작이 항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자유를 갈망하지만 나갈 수 없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여 작품에 대한 해설을 하였다.



마지막 질의답변에서 황동규 시인은 시를 쓰면서 좋아하는 단어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시어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색깔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황속에서 색이 아름다운 것이지 원칙상 아름다운 것은 없다. 특별히 사랑하는 단어는 없고, 사랑하는 단어를 잘못 만들면 간지러운 단어가 된다”고 대답하며 말을 맺었고, 돌아가는 이들의 마음에 한가득 ‘시’라는 감정을 채워주었다.



황동규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와 동대학원 영문과 졸업.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현대문학상(1968), 한국문학상(1980), 연암문학상(1988), 이산문학상(1991), 김종삼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상(2002), 홍조근정훈장(2003), 만해문학상(2006) 수상. 저서로 《어떤 개인 날》《풍장》 《외계인》《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등 12권의 시집, 그리고 《사랑의 뿌리》《나의 시의 빛과 그늘》 등 몇 권의 산문집과 《황동규 시전집 1, 2》 등이 있음.







기사 : 구굿닷컴 현경민 대학생 기자

사진 : 송윤호 운영위원/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