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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제 32회차 모임)

by 송윤호 posted Nov 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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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32회차 모임 중계



10월 25일 현충사에서 32회차 오프라인 모임이 열렸습니다.

천안지역에서 독서지도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장미란 선생님과 토론도 하고

참석자 가족들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발제자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책이다. 하지만 성인들이 읽어도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동화이기에 선정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표현을 하라고 그러면 사람이 본의 아니게 분석을 하게 된다. 깊이 생각을 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학교 다닐때 의도의 오류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배웠다. 작가가 쓸때는 그 의도가 아니었는데 해석하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원래 문학이란 것이 읽는 사람마다의 느낌이 다른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선 여러분의 이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내 생각대로 잎삭하고 초록머리의 생각이나 행동에 초점을 두고 생각을 해 봤다.

잎삭이란 이름은 잎삭 스스로 지은 것이다. 또한 자기가 살아가는 목표를 스스로 지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랑 이야기를 해 보면 공부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 목표 없이 하는 아이들이 많다. “너 뭐가 되고 싶니?” 하면 “모르겠다.” 라고 대답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고 아직은 뭐가 될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었을때 즉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될 때 힘들어 하는 것이 어릴적부터 주체성 있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잎삭이라고 하는 닭은 자기 스스로 나는 잎사귀 같은 삶을 살고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면서 삶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목표의식 없이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점을 던져 주는 것이다.

같은 맥락인데 알을 품고 싶어 하는 소망도 잎삭의 삶을 변화시키고 결정시키게 되는 하나의 동기인데 , 즉 동기가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책의 작가인 황선미씨도 어렸을 때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한 그림책을 접한 후 그 해 수 백권의 그림책을 읽게 되었고, 그것이 작가로 만들어지게 되는 작은 동기가 된 것이었다.

양계장에서 살아가는 닭들에게 잎삭이라는 닭은 굉장히 이상한 아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꾸기 때문이다. 그냥 양계닭은 그렇게 사는게 당연한 건데 잎삭은 자기의 삶에 안주하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이 그런 양계장 안의 닭들과 같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사람들은 다 똑같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주요 일간지에 매운탕 맛있게 끓이는 법이란 기사가 나오면 그 한 아파트에 여러 세대에서 그 날 저녁에 그 매운탕이 올려지는 꼴이다. 이러한 일관된 삶에서 모험의식을 갖고 자신의 인생에 도전을 해야 진정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 등장 인물 중 청둥오리인 나그네의 모습을 보면 자기 자신의 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행동에서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도 초록머리는 나그네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주었기 때문에 행복한 부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부모들 중에 그러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도 감정은 공유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생각과 생활에 대해서 다 알길 원하지만 자식 스스로는 부모님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경우가 많다.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말,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말 틀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서로의 노력으로 메꾸는 것이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나누는 말 중에 좋은 말들이 나온다. 그 중에 나그네가 잎삭에게 했던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난 너를 존경해.”라는 말이 있다.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강신철 교수

원래 잎삭의 목표는 마당에서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와보니 마당이라는 집단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른 사회나 조직으로 가고 싶어해도 그곳에서 받아 주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서 범죄자들이 감옥에서 출소를 해도 우리 사회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당에 있는 닭, 오리, 개 또한 그러한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사회성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발제자

자기와 다르면 배척하는 현대인의 습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강신철 교수

맞다. 현대인들도 자기 생각과 자기 행동과 다르다고 해도 무조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나쁜 현상이다. 또한 장애인을 향한 일반인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기와 다르다 해서 따돌리는 그 사람 자체도 정신적인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다.



황종수 한남대 경영 4

아무래도 예비 사회생이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내 스스로의 환경이나 생활에 적용을 하게된다. 이 책을 처음부터 읽으면서 꿈을 가지고 있으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들어 고 3 학생들에겐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꿈일테고, 나에겐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되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이게 다가 아닐텐데 현실사회에서 그러한 면에 거의 모든 것을 쏟고 있는 자신이 조금 서글프다. 몇 년 전에 하버드 대학 입학률에선 한국학생들의 성공률이 높은데, 졸업률에선 최하위에 가깝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단기간의 눈 앞에 보이는 목표만을 위해 내몰리는 현실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의 목표 자체를 그 하나로만 삼고 살아왔기 때문에 성취 이후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이다.



강신철 교수

우리가 보통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는 “비전”이라고 한다. 내 생각엔 보통 4-50대 되면 그 사람이 비전을 갖고 살아왔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가 표시가 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젊은이들은 어떠한 비전을 세우고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난 학기 기말고사로 점수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어떠한 비전과 인생의 목표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문제를 출재해 보았다. 그랬더니 30% 정도는 그냥 백지로 냈다. 나머지 40%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그런식으로 답을 썼다. 결과적으로 비전이나 목표가 아예 없거나, 눈 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인생의 목표를 장기적인 비전으로 착각하고 닥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비단 학생들의 책임만이 아니고 사회 전체, 즉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 교육 시스템 그리고 부모들의 잘못된 기대감으로 인한 압박 등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송윤호 100권독서클럽 기자

보통 아이들이 꿈이나 진로나 비전의 선택을 함에 있어서 사회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요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 전체의 비전이 통일화 되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부자 되는 것”이다. (좌중웃음)

한 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 중에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말도 있고, 보통 신년이 되면 덕담을 주고 받는데 이 때에도 현대인들은 대부분 “올 해에는 꼭 부자되세요.” 라는 말을 하곤 한다. 다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가야하는 가에 대한 방법론만 틀릴 뿐 부자가 된다고 하는 비전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통일화 되어 가는 현실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만 생각해봐도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조사하시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나오는 것 중에 인기 직업이 선생님, 간호사, 과학자, 장군 등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아이들도 부자가 되자는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의사, 판사, 대기업 회장 등 이른바 부자 직업만을 말하고 있다. 불과 1-20년 전의 아이들이 말하던 꿈 목록과 현재 아이들의 꿈 목록 직업 목록이 그 순수성 면에서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공부를 잘해서 의대나 명문 법대를 지원하는 고등학생들도 대부분 슈바이처 정신의 비전과 법 질서를 수호하겠다는 사명감 보다는 단지 그 직업이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나 사회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기에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 의사가 되는 것 자체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고 또한 세부 전공을 선택할때에도 쉽고 돈 잘버는 분야쪽으로 지원자가 몰리는 현실이다.

사회 전체적인 비전의 통일화로 인하여 책에서 나오는 양계장의 닭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좋은 책을 많이 읽어라 해도 실질적으로 중고생은 참고서 보기에 바쁘고 대학생들은 전공서, 실용서 보기에 바쁘다. 또한 사회인들도 재태크, 처세술 등 바로 적용될 수 있는 생활의 스킬만을 다룬 책들만 베스트 셀러를 차지하고 있고, 서점에서도 돈 되는 책들로만 주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솔직히 대학교 1학년 학생에게 대학생이 읽어야 할 추천도서 30선만 뽑아 달라고 해도 대부분 학생들은 다 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책을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제목이나 저자는 대학 입학 전부터 따갑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거엔 방안에 앉아서 접할 수 있는 것이 신문이나 책같은 아날로그 컨텐츠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TV, DVD, 인터넷, 게임, 핸드폰 등 각종 디지털 컨텐츠가 넘치기에 독서와 더 멀어지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 하에서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다 저래도 너 만큼은 순수한 비전을 갖고 자아실현을 해라.” 라고 외치는 것은 메아리가 있을 수가 없다. 그 만큼 사람의 인생은 장기적인 비전 뿐만 아니라 당장 닥치고 있는 현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육만으로도 가정에서 부모의 이끌림만으로도 어느 하나 단편적인 방법으로는 아이들의 참된 비전을 이끌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사회엔 곳곳에 참된 비전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한 순간에 전체적인 계몽은 안되겠지만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자기가 위치하고 있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교육의 장에서 이러한 뜻을 전파시킨다면 더 좋은 미래가 우리 앞에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