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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7차모임)

by 송윤호 posted Jun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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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변화 중심축이 무엇이냐 해명하는 것 간단치 않다. 하지만 문명 상호작용

에 의해 중심축이 나타난다.

이책의 성과는 특히 일상생활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관료들의 하루의 삶들을 구성

했다.

1980년대 기점으로 한국역사가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80년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나름대로 상당히 고통이었다. 그동안 축적된 역사가들이 새로 만들어진 한국역사

학회. 젊은 연구자들이 기획하고. 기존의 틀을 집필할 수 있는 연구자의 양산과

결집이 이 책을 가능케 했다.

종합성의 문제가 가장 큰 이책의 결점.

어떻게 조선시대를 조망하고 있는가 설명했다.

조선시대를 이끌고 간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었다.

한 시대를 설명하는데 있어 경제분야가 간편한 수단이다. 모르는 나라를 금방 지

표로 알 수 있다.

조선시대를 제약했던 가장 경제적인 근본상황은 농업사회였다. 논농사에서 밭농

사로 넘어가고 있는 사회였다. 큰의미고 변화다.

대덕밸 리가 굴뚝산업에서 IT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사회에서 굉장

히 큰 임팩트였다.

변화는 생산력의 문제를 자극했다. 상경이라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다시말하

면 휴경

(2년에 1번) 매년 짓는 농사단계가 이것은 조선을 제한하는 경제력. 가령 3년의

1번 농사를 했을 때 매년 한다면 1번 한다는 것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생산지역, 생산주체 문제가 걸린다.

고려시대의 수도가 개성이었다. 조선시대로 넘어 반도밑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 설명안됐다. 개성에서 서울로 움직여온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의미.

지역과 주체의 문제가 살며시 대두된다. 경제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

로 문제의 주체가 옮겨간다.

사실 조선건설의 주역들은 보통 사대부였다. 지식층이다. 지식인+관료. 고려의

귀족+관료와 대비되는 형태다. 지식이란 개념은 조건을 완화하는 역할이 있다.

귀족이란 것은 구성원이 확대하는 것이 어려운 폐쇄된 문화.

지식인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백그라운드는 생산력이다. 노동층과 무노동층의 분

화. 사대부층의 등장배경이다. 생산물의 확대에서 잉여축적 공부할 수 있는 층

이 확대되어 간다. 이가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주체의 문제인데 어디출신인가하

면 삼남지방의 출신이었다. 서북지역에서 삼남지방의 출신으로 옮겨갔다. 고려말

부터.

이들이 등장하며 그 이전의 체제를 부정해 건국내지 혁명이 조선의 등장이다.

자기들이 사회적 주도권을 형성할 수 있는 이념체계로서 주자학이 등장한다. 주

자학은 송대,남송대에 확대되는 이데올로기다. 송대와 조선시대 격차는 200백차

이다. 갑자기 주목된 이유는 불교적 이데올로기(기존 귀족세력의 체계). 지나가

버린 패션인데 한국상황에서 필요하다는 것.

조선시대 남송을 바탕으로 피어오른다. 논농사지역이다. 주자학의 배경이었던 논

농사와 관련된 기술적인 주체로서 사대부가 등장한다.

조선초기의 형성을 전후해 정치가 경제를 경제가 사상을 영향줬다.

정치의 문제로 조선시대로 이야기 하면 국가의 주체는 사대부. 사대부의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논리로 빠지는데 왕이라는 문제가 도출이 된다. 사대부 정

도전, 신흥무장세력으로 이성계, 15세기부터 시작 16세기까지 조선전기, 17~8세

기 조선중기

15세기.

머리에 물을 들이는 유행이 일지만 파장이 일기 충동이 있듯 문화의 파동과 격파

과정이 일때는 출렁거리는 것이 있다. IT산업의 전환이 되려면 인프라가 구축되

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감의 과정, 합의의 과정들이 외형적인 흐름속에서 이뤄

진다. 과정속에서 과연 사대부의 국가냐 이씨왕조냐의 갈등이 조선시대에서 가

장 큰 내재된 테마다.

왕과 신흥무장세력의 파동. 파동의 와중에서 각종 해프닝 다 일어남. 이씨왕조

냐 사대부냐 1세기 출렁거려 태종이 정도전을 치고 왕족은 귀족성의 혈통을 끄

는 강조성, 세조가 다시 나와 또 친다. 두 번 이외에 관료들이 왕을 갈아치우는

현상나온다. 연산군, 광해군 등...

사대부의 국가로 가는 확연히 정착되는 시기로 나타난다. 쿠테타, 왕의 교체로

사대부의 국가로 들어서니까 사대부가 주도하는 정치패턴속에 ‘붕당’이라는 패

턴이 등장한다.

붕당의 핵심포인트는 관료간의 여론의 수렴. 공론의 수렴을 어떻게 가져갈것인

가 하는 정치패턴이 나타난다. 새로운 이슈를 정치적으로 마련해 간다.

조선초기의 생산력문제속에 제한된 문제를 가지고 있고 신주류(피라밋구조속에

왕, 귀족, 지식인 보다 확대된 계층이 정치에 관여 참여하게 되는것) 농민, 서민

들이 막을 열어가는 것인데 이만한 것 쉽게 되는 것아니었다. 1세기를 소모하여

막을 열어갔다.

농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과정까지 가는데도 오랜 지루한 시간이 걸린다. 조선후

기의 농민의 정치참여 막을 열기위한 몸부림을 겪었다고 예상했다.

경제에서 어떻게 심화되는가 상업이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 시기 상업을 거론

하는 것은 고대 신라시대의 상업무역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 시대는 귀족적 상업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생산력 가지고 잉여, 여유분이 사회의 리

더층에게 귀족들에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고가의 사치품(향료, 차, 도자기, 고

급 금속제품 등).

농업생산력이 확대되며 잉여가 농민에게도 남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

다. 다시말하면 농민이 상업의 주체로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농민이 살한대, 채

소 등 이런식의 16세기부터 슬며시 나타난다. 소히 장이 서기 시작한다. 서서히

국지적인 장이 형성되며 교환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농업중심사회가 뭔가 달라지는 사회의 네트워크가 형성이 된다. 밑으로부터의 변

화다. 가령 대전 회덕, 신탄진, 공주, 진잠 장들이 형성되고 장과 장의 네트워크

가 형성되었다. 전문상인층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회덕에 장사를 하고 저녁 무렵

신탄진 넘어가고 공주로 넘어간다. 새로운 생산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상업에서 원시적 축적을 통해 산업으로 간다. 전문상인의 소네트워크 금강을 중

심으로 네트워크 형성, 서울까지 형성, 중국으로 뻗침. 이미 세계무역권의 한국

이 구체적으로 편입된다.

이 와중 서서히 농민과 상공인이 서서히 부각한다.

조선시대는 사대부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 조선사회 이데올로기속에서 상업영역

구축을 통해 구성된 층이 조선후기 문화가 이들만의 문화가 치고올라가며 판소

리, 충격을 주고 흡수되어 가는 와중이 형성된다.

조근희

-주자학의 200년 뒤진것. 자기네들의 타당성을 위해 들어왔나.

고려시대 주자학이 들어온다. 국자감에서 가르치고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있다.

주자학을 사회의 이념으로 내세우는 것 차원이 다르다. 남송단계에서 중국의 관

심은 당과 다른사회의 건설이었다.

-왕과 사대부들의 싸움이 왕의 카리스마인지 구조적인

치열한 조직과 조직의 싸움이 주도권을 잡아가는 것이다. 엄청난 논리적인 싸움

과 투쟁을 통해 주도권을 잡는다.

중앙집권적=대통령. 전통을 가다듬고 나가야 겠다. 서양의 폼나는 것 가져올 수

없다.

사실 국민정부 성공하지 두차례 못했다. 다음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댓가, 내지

는 지불해야 된 역사적 채무다. 권위적인 대통령. 가령 김영삼, 김대중이 가지

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박정희, 전두환과 다르지 않다. 김대중도

참모들을 독재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 왔다. 시스템으로 본다면 전혀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뀔수없었다. 나름대로의 카리스마도 있고 기존틀속에 있었다.

노무현은 다르다. 카리스마도 없고 시스템도 일수 가 없다. 국회 공청권. 자기

도 대통령되면서 권위적 틀을 가져갈 수 없다. 이제 비로소 소히 독재시스템이

나왔던 뿌리가 두 번의 댓가를 지불하고 노무현이 제대로 역할 할 수 있을 것 본

다.

노무현, 당내 파벌. 합리적인 결정과정에 의한 국민에 의한 결정되는가 관건이

다.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정권이다. 노무현이 깔고 있는 것은 대중적인 지지다.

여론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역사적인 것이다. 대통령제는 힘을 집중할 수 있

는 손질 잘한다면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