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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3 07:53

좋으면 그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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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면 그냥 하는 것이다





이독(耳讀)이란 귀로 책을 읽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눈으로 책을 읽는다. 소위 目讀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나 나이가 들어 시력이 감퇴되면 눈으로 책을 읽기가 힘들어진다. 물론 점자로 책을 읽는 방법이 있지만, 연로하신 분들에겐 점자를 새로 익히기도 힘들뿐더러 점자로 된 책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디오 북이 진즉 발달이 되어 있다. 다행히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오디오 북이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고 카톨릭 재단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 북을 제작하여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고 한다. 


일전 100권독서클럽 독서토론회에서는 93세의 원로 철학자 정종 박사님을 모셨다. 중학교 때 ‘무솔리니의 전기’를 처음 읽게 된 것을 계기로 독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일본인 이시마루가 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철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등산도중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했으나 독서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한쪽 눈을 혹사하다보니 90세에 나머지 한쪽 눈마저도 잃게 되었다.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두 눈이 안 보이게 되자 상실감에 한동안 우울증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실명이 책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耳讀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때부터 소설을 녹음해 놓은 오디오 북을 구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년 6개월 동안, 하루에 열 시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백권의 오디오 북을 읽었다고 한다.


이 분에게 인생의 가치는 讀과 講의 즐거움에 있다. 12살에 설정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제 후손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 것은 바보스러운 질문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산악인 조지 맬러리(G.L. Mallory, 1886~1924)는 산에 왜 가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어서(Because It is there!)"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따로 필요 없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이유인 것이다. 좋으면 그냥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며칠 전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여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즈음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남들은 부를 쌓든지 사회적 명예를 얻든지 뭔가 해놓은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이렇다 하게 해놓은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위 돈도 명예도 없고, 학자로서 이렇다 할 학술적 성과를 낸 것도 없고, 공부한답시고 가족들에게도 소홀히 한 것 같고, 그렇다고 훌륭한 제자를 키운 것도 아니고...” 듣고 보니 나도 뭐 별다르게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는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사회통념으로 대학교수이면 그래도 뭔가 이룬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


우리가 인생의 가치 기준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 답을 정종 박사의 인생에서 찾아본다. 속세의 잣대로 우리의 인생을 재면 허무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의 가치에 중심을 두고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면 자신이 대견스럽고 인생이 행복하게 느껴질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강의, 내가 좋아서 하는 독서, 그것이 무엇이든, 어디에서 하든, 그저 그 행위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다른 이유가 필요 없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았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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