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회 수 372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린 왕벚나무

                                                        정호승

  도시에서 가로수로 살아가는 어린 왕벚나무 한 그루가 하루는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그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한 그루의 나무로서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때문이
었다. 그는 허구한 날 가만히 땅에 뿌리를 박고 서서 육체를 살찌우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
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늘 괴로웠다.
  "동생아, 뭘 그렇게 고민하니?"
  고개를 떨군 채 고민에 빠져 있는 어린 왕벚나무를 보다못해 형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말해봐. 우린 형제야. 이 형에게 무슨 못할 말이 있겠니?"
  "사는 게 따분해서 그래. 이렇게 한 곳에만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말고, 또다른 삶은 없
어? 꼭 이렇게 살아야만 돼?"
  어린 왕벚나무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형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우리에게 또다른 삶이 뭐 있겠니? 우린 가로수야. 지금 이곳에서 도시를 아름답게 하
는 일에만 충실하면 돼.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열
심히 사는 것이 보다 중요한 거야."
  형은 바람이 불자 이제 막 돋기 시작한 이파리 하나를 살짝 떨어뜨려 동생의 가슴을 다독
여주었다.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고말고. 오늘이 없는 미래는 없어.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 미래가 되는 거
야."
  어린 왕벚나무는 형의 말이 적이 위안이 되었다.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 계속 이
어지면 미래의 삶도 열심히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했다.
  어린 왕벚나무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 흙속의 영양분을 빨아들였다.
그러자 다른 왕벚나무들보다 청록색의 잎들이 더 빨리 돋기 시작했다.
  "어머 저 잎새 봐. 정말 예쁘다 얘!"
  어린 여학생이 탄성을 지르며 지나갈 때마다 그는 가슴이 뿌듯해서 더 열심히 뿌리를 뻗
었다. 개미들이 기어올라와 자꾸 몸을 간지럽혀도 은근한 미소로 대했다.
  4월은 깊어갔다. 어린 왕벚나무는 곧 연분홍 꽃을 피웠다. 꽃을 피운 것은 처음이었다. 그
는 자신의 몸 속에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형과
아버지가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자기도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적은 있
었지만, 정작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왕벚나무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꽃을 피우는 존재인 것이 퍽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아가야, 너도 크면 저 벚꽃처럼 어여쁘거라."
  젊은 엄마가 아가를 등에 없고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온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곧 지고 말았다. 한번씩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꽃잎은
흰눈처럼 땅바닥에 떨어졌다. 온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바람과 대항해보았으나, 바람이 조금
만 강하게 불어오면 우수수 꽃잎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계속................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4 가입인사 가입인사 드립니다. 허당왕 2015.11.07 1782
123 자연과학 온라인 이종필 교수님 상대성원리 강의 같이 들으실 분 5 장미공원 2015.11.12 2112
122 가입인사 안녕하세요.. 1 나그네 2015.11.16 1882
121 모임 뇌과학과 정신의학 그리고 학습상담 5 이일준 2015.11.29 2259
120 가입인사 안녕하세요 가입인사드립니다 :) 재밌는처자 2015.12.09 1998
119 공지 한국정신과학학회 12월 월례회 꿈꾸는다이아 2015.12.17 1849
118 가입인사 강화도에서도 백북스 모임 시작하려고 가입했습니다. 1 불덩이 2016.01.11 2189
117 가입인사 가입인사 드립니다 이상재 2016.02.01 1875
116 자연과학 최초의 생명꼴, 세포 별먼지에서 세포로, 복잡성의 진화와 떠오름 이중훈 2016.02.04 2139
115 자연과학 중력파 검출 성공 이중훈 2016.02.12 2283
114 가입인사 인사드립니다 정글은언제나 2016.02.15 2114
113 홍보 다중지성의 정원 2016년 2분학기가 4월 4일 개강합니다~! 김하은 2016.03.07 9108
112 가입인사 안녕하세요^^ 산바우 2016.03.14 2005
111 홍보 4/8 개강! 베르그손의 자연철학 (강의 주재형) 김하은 2016.03.25 1985
110 공지 한국정신과학학회 4월 월례회 꿈꾸는다이아 2016.04.08 1807
109 홍보 2016년 1학기 서산철학강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file gotmilk 2016.04.11 1963
108 홍보 새책! 『대테러전쟁 주식회사』(솔로몬 휴즈 지음, 김정연·이도훈 옮김) ― 공포정치를 통한 기업의 돈벌이 갈무리 2016.04.21 1833
107 공지 최덕근 교수님의 "10억 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 강연 안내 박용태 2016.04.26 1776
106 가입인사 안녕하십니까? jazz 2016.05.02 1785
105 홍보 다중지성의 정원의 새로 시작하는 세미나에 참가하세요! 김하은 2016.05.07 367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05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