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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교양서보다 감동적인 최고의 교양서
이제 당당히 문학을 얘기할 수 있다.
도발적인 서체가 인상적인 『나는 문학이다』는 그 서체만큼이나 제목도 무척 당돌하다. 111명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다룬 이 책은 한국현대문학 100년에 바치는 장석주의 뜨거운 오마주이자 애절한 절창이다. 여기 기록한 111명의 인물은 한국문학의 빛나는 성좌들로 어쩌면 이 자체로 ‘문학’이고 ‘교양’이다. 청소년들에게는 훌륭한 논술 교재로 일반인에게는 최고의 인문교양서로 자리매김할 이 책은 더는 모자람 없는 ‘현대문학사’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근대문학의 초기에 푯대처럼 우뚝 서 있는「무정」은 스타일의 미숙과 소통에 대한 성찰이 떫고 둔탁한 건 불가피하지만 그럼에도 캄캄한 먼동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이 다가오는 새 날빛의 언어를 보여주고, 근대적 주체의 욕망과 계몽에의 의지를 잘 새겨 넣었다.”라고 현대문학의 흠 많은 아버지 춘원 이광수에게 헌사를 바치며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소월의「진달래꽃」김유정의「봄봄」「동백꽃」이상의「날개」「오감도」등의 작품과 김현, 김병익, 김윤식, 김우창 같은 비평가의 업적을 기리고 김훈, 윤대녕, 신경숙, 공지영 같은 이 시대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현대문학사를 빛낸 작가 111명의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서문
1. 한국문학의 맹아기(1900-1929)
이광수, 김동인, 김소월, 염상섭, 한용운
2. 1930년대 문학―현대문학의 제1부흥기(1930-1939)
김기림, 김남천/한설야, 김동리, 김영랑/박용철, 김유정, 박태원, 백석, 서정주
이기영, 이상, 이태준, 임화, 정지용, 홍명희, 황순원
3. 해방 전 친일문학에서 해방 전후의 혼란기까지(1940-1949)
김광섭, 오장환, 유치환, 윤동주, 이용악, 이육사, 청록파(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4. 한국전쟁과 폐허 시대(1950-1959)
김관식, 김종삼, 김춘수, 김현승, 노천명, 박경리, 박용래, 박인환, 서기원, 선우휘
손창섭, 오영수, 이봉구, 전혜린, 조병화, 천상병, 최일남, 한하운
5. 4?19혁명과 한글세대의 출현-현대문학의 제2부흥기(1960-1969)
김병익, 김수영, 김승옥, 김현, 마종기, 서정인, 신동엽, 이병주, 이어령, 이제하
이청준, 정현종, 최인훈, 황동규
6.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 1(1970-1979)
고은, 김우창, 김원일, 김윤식, 김주영, 김지하, 박상륭, 송영, 신경림, 오규원
오정희, 윤흥길, 이문구, 이성부, 조세희, 최인호, 황석영
7.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 2(1980-1989)
고정희, 김...서문
1. 한국문학의 맹아기(1900-1929)
이광수, 김동인, 김소월, 염상섭, 한용운
2. 1930년대 문학―현대문학의 제1부흥기(1930-1939)
김기림, 김남천/한설야, 김동리, 김영랑/박용철, 김유정, 박태원, 백석, 서정주
이기영, 이상, 이태준, 임화, 정지용, 홍명희, 황순원
3. 해방 전 친일문학에서 해방 전후의 혼란기까지(1940-1949)
김광섭, 오장환, 유치환, 윤동주, 이용악, 이육사, 청록파(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4. 한국전쟁과 폐허 시대(1950-1959)
김관식, 김종삼, 김춘수, 김현승, 노천명, 박경리, 박용래, 박인환, 서기원, 선우휘
손창섭, 오영수, 이봉구, 전혜린, 조병화, 천상병, 최일남, 한하운
5. 4?19혁명과 한글세대의 출현-현대문학의 제2부흥기(1960-1969)
김병익, 김수영, 김승옥, 김현, 마종기, 서정인, 신동엽, 이병주, 이어령, 이제하
이청준, 정현종, 최인훈, 황동규
6.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 1(1970-1979)
고은, 김우창, 김원일, 김윤식, 김주영, 김지하, 박상륭, 송영, 신경림, 오규원
오정희, 윤흥길, 이문구, 이성부, 조세희, 최인호, 황석영
7.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 2(1980-1989)
고정희, 김광규, 김남주, 김명인, 김사인, 김혜순, 문정희, 박노해, 박완서, 복거일
윤후명, 이문열, 이성복, 이인성, 장정일, 조정래, 천양희, 최승자, 최승호, 현기영
황지우
8.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학(1990-2000)
공지영, 기형도, 김영하, 김훈, 마광수, 신경숙, 윤대녕, 하일지, 황인숙, 배수아
색인
고전이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오래된 것이라고 다 고전은 아니다. 우리의 정서와 심성의 전형성이 잘 드러나고, 그 형식은 새로워야 한다. 당대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살아남아 통해야 한다. 언제 읽더라도 현재적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심미적 텍스트여야 한다. 무수한 작품이 시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다. 소멸하는 것은 그 소멸로써 의미를 소진한다. 시대와 더불어 그 의미를 갱신하는 텍스트. 바로 그런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다. 고전은 하나의 우주다. 우주이되 어떤 근원과 향수로 속절없이 깊어진 심연이다. 삶의 심연, 언어의 심연, 의식의 심연이다. 한국문학 100년은 고전의 반열에 든 무수한 작품이 별들로 반짝이는 심연이다.
이광수의 「무정」(1917년)은 근대문학의 초기에 푯대처럼 우뚝 서 있다. 스타일의 미숙과 소통에 대한 성찰이 떫고 둔탁한 것은 불가피하다. 「무정」에 스타일이 있다면 외래에서 이식移植된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캄캄한 먼동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이 다가오는 새 날빛의 언어를 보여주고, 근대적 주체의 욕망과 계몽에의 의지를 잘 새겨 넣었다. 김유정의 「봄봄」(1935)과 「동...고전이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오래된 것이라고 다 고전은 아니다. 우리의 정서와 심성의 전형성이 잘 드러나고, 그 형식은 새로워야 한다. 당대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살아남아 통해야 한다. 언제 읽더라도 현재적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심미적 텍스트여야 한다. 무수한 작품이 시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다. 소멸하는 것은 그 소멸로써 의미를 소진한다. 시대와 더불어 그 의미를 갱신하는 텍스트. 바로 그런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다. 고전은 하나의 우주다. 우주이되 어떤 근원과 향수로 속절없이 깊어진 심연이다. 삶의 심연, 언어의 심연, 의식의 심연이다. 한국문학 100년은 고전의 반열에 든 무수한 작품이 별들로 반짝이는 심연이다.
이광수의 「무정」(1917년)은 근대문학의 초기에 푯대처럼 우뚝 서 있다. 스타일의 미숙과 소통에 대한 성찰이 떫고 둔탁한 것은 불가피하다. 「무정」에 스타일이 있다면 외래에서 이식移植된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캄캄한 먼동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이 다가오는 새 날빛의 언어를 보여주고, 근대적 주체의 욕망과 계몽에의 의지를 잘 새겨 넣었다. 김유정의 「봄봄」(1935)과 「동백꽃」(1936)은 욕망이 표출하며 부딪치고 화응하는 삶의 원초적인 모습을 토속 언어로 담아낸 수작이다. 소설이라는 근대적 양식은 더는 외래적인 것이 아니다. 생래적이라 할 만큼 몸-삶에 밀착한다. 이 소설에 돌올하게 솟은 골계滑稽 미학은 소설이 계몽이나 윤리의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보여줌에 있음을 드러낸다. 김유정이 출현한 지 반세기쯤 뒤에 나온 이인성의 중편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1983년)나 하일지의 장편소설「경마장 가는 길」(1991년)은 소설의 또 다른 낯선 층위를 보여준다. 이인성과 하일지는 발화 방식의 새로움을 통해 욕망으로 들끓는 삶의 환멸을 드러낸다. 이인성이 의도된 말 더듬기와 발화 주체의 분열을 통해 삶의 불모성을 보여준다면, 하일지는 끈질긴 반복과 변주를 통해 삶이 감춘 환멸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두 작가는 소설의 속/겉이 하나이고, 그 본질이 기억-이야기가 아니라 반反-기억이고 해체며,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스타일임을 보여준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1973년)과 조세희의 연작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년)은 농경사회가 해체되고 산업화로 들어서는 1970년대 한국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떠돌이 노동자, 생산조직 속의 노동자의 삶을 사실주의 문체로 그려낸다. 농경 유림의 전통 속에서 유구하게 이어지는 삶을 회고적 문체로 다룬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1978년)은 스러지는 농업 노동의 현장을 인류학적으로 관찰하고 거기에 사실적 언어의 실감을 불어넣은 신경림시집 『농무』(1974년)와 더불어 문학과 시대의 상동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작들이다. 박경리 『토지』(1994년)는 최씨 일가의 흥망성쇠를 중심축으로 펼쳐지는 대하소설이다.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며 다양한 인물이 부침을 거듭하며 날줄과 씨줄로 얽히는 역사를 그려낸다. 홍명희의 『임꺽정』(1939년), 이병주의 『지리산』(1974년), 조정래의 『태백산맥』(1989 ), 황석영의 『장길산』(1984), 최명희의 『혼불』(1996) 등도 기억에 남을 만한 대하소설이다. 최인훈의 장편소설「광장」(1961년), 김승옥의 「무진기행」(1964년), 이청준의 「별을 보여드립니다」(1971년) 등은 지식인 소설의 범주에 든다.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에 눈뜬 후진국 지식인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떠돈다. 이들은 주체의 의지나 선택을 압도하는 분단 역사 속에서 좌표를 잃거나, 개별자의 공간으로 퇴행하거나, 중심에서 튕겨 나와 주변을 맴돈다. --- 작가 서문 중에서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는 현대소설의 아버지다. 이 공적 아버지는 고마운 존재면서도 흠이 많은 아버지다. 이광수는 전?근대에 머물러 있던 서사문학의 내적 문법을 바꾸고 현대성을 수혈하면서 비로소 한국어가 자아와 세계를 동시적으로 포획하는 현대소설에 적합한 문자라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현대를 향한 다양한 줄기들은 이광수에게 와서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었고, 그것은 그대로 한국 현대 서사의 장강長江이 되었다. 이 장강에 기대 한국의 서사문학은 꽃을 피웠다. 이광수는 한국 현대 서사문학이 발아發芽하는 기점이자 여명의 외침이고 아울러 무시무시한 빅뱅이다. 이광수라는 빅뱅을 겪지 않았다면 한국 서사문학의 밤하늘을 찬연하게 수놓는 성좌星座는 아직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광수는 이런저런 흠을 가진 불완전한 아버지다. 그는 가족을 떠나 늘 집 바깥을 떠도는 아버지였다. 그는 순수하게 문학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문학은 근본적으로 계몽과 계도의 도구, 지식인의 방법적 실천, 당대 이성의 기획이라는 당위성 때문에 한계를 갖는다. 이광수의 문학은 그것쳀 여러 이성의 기획 중 하나일 뿐 유일한 대안이라는 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내내 중요한 논객이자 언론인이자 사회개혁 사상가로 살고, 그것들에 에너지를 쏟아 붓고서 나머지를 겨우 문학가라는 명성을 떠받치는 힘으로 삼았다. 그는 “잘 빚은 항아리” 그 자체보다 그것의 용도를 더 궁구한 사람이다. 어떤 근대인보다 문학의 가능성을 일찍이 엿보았지만, 문학에 흘려보낸 수액은 턱없이 부족하고, 문학의 목덜미를 집요하게 물고 놓지 않는 야수의 열정이 부재했다. 그래서 그가 일군 심미적 이성의 골밀도는 성기고 문학의 골격은 취약했다. 그렇기에 그의 문학은 권력의 욕망이 이글대며 타오르는 현실이라는 지옥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쉽게 녹아버린다. 이광수 문학을 다만 “그만의 문학”으로 남게 하는 것은 이광수의 불행이면서 동시에 현대 한국 서사문학의 근원적 불행이다.
우리보다 앞선 외래의 것들은 아직 현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낯선 것이며, 낯선 것들은 당연히 매혹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누군가는 미신적인 믿음을 넘어 용감하게 그것들을 씹고 삼켜야 하는 전위가 필요한 법인데, 이광수는 현대의 들머리에서 그 전위 노릇을 선뜻 맡은 사람이다. 이광수는 트로이 목마다. 이광수는 우리 현대 서사문학의 거푸집이고, 문지방이다. 우리는 그 문지방을 넘어 근대에서 현대로 건너오고, 그 거푸집을 빌려 상상력의 촉발과 변형이라는 자원을 공급받으며 무수한 문학의 집들을 지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광수의 문학 언어는 작동이 멈춘 언어다. 작동이 멈춘 언어들은 고작 말의 거품들, 백일몽의 허우적거림이다. 90년 세월이 흐르고서 읽는 『무정』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공허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광수의 소설은 마치 불이 꺼진 등대와 같다. 90년 전에 이광수의 소설은 선진先進의 빛을 비추는 등대 구실을 했지만 이제 그 용도를 다한 채 불이 꺼진 것이다. 그 등대는 과거의 유물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이광수를 부정하는 일은 우리 문학의 자아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광수를 부정해야 한다. 이광수의 문학은 죽은 자의 무덤 앞에 세우는 하나의 비석이다. 영광의 빛이 사라진 비석의 뒤에는 오욕의 긴 그림자만 남는다. 비석은 우리에게 어떤 생명의 요소도 주지 못하고 다만 추념의 자리만을 마련할 뿐이다.
이광수는 현대 한국문학의 선구자로서 그만큼 많은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일제의 ‘일본식 성명강요’ 정책에 따라 자진하여 카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이름을 바꾼, 식민지 조선의 조숙한 천재이자 걸출한 작가인 이광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자 원죄의 배태자胚胎者다. 이광수는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김현)다. 그렇지만 한국 문학사는 이광수를 빠뜨리고는 기술할 수 없다. 그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발자취는 크고도 뚜렷하다. 최남선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데 반해, 이광수는 저 변방의 몰락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며 세파를 헤쳐나간다. 고아라는 취약하고 어려운 배경 속에서도 춘원은 명민한 머리와 피나는 노력으로 한국문학의 선구자,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선다. 그러나 우리 현대문학사가 낳은 이 걸출한 인물은 동시에 변절자 또는 민족반역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비행기 격납고 속처럼 폐쇄적이던 왕조시대의 막바지에 목숨을 받아, 개화파의 계몽주의와 척사파의 민족주의가 한꺼번에 분출되며 혼란의 극치를 이루? 시기에 활동한 식민지 작가의 한계이다. 요즘 들어 친일문학론이 새롭게 논의되며 한국문학의 자랑이자 수치인 이광수의 일제강점기 행보가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선각자 이광수를 현대문학의 흠 많은 아버지로 갖게 된 것은 우리 현대문학사가 내장한 불행이다.
1940년대 초엽 어느 겨울날의 일이다. 덕수궁에서 도쿄 유학생들의 미술전람회가 열린다. 마침 겨울방학을 맞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에 있던 20대 초반의 문학청년 김춘수金春洙는 그 전람회장에 갔다가 뜻밖에 이광수를 만난다. 춘원은 여러 학생에게 둘러싸여 나직한 목소리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키가 큰 춘원은 까만 테 안경을 낀, 점잖고 준수한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는 동글납작하고, 폐병을 앓고 있던 터라 안색이 파리한 편이었다.
그날 김춘수는 몇몇 학생과 함께 효자동에 있던 이광수의 집까지 따라간다. 춘원의 집은 아내 허영숙의 산부인과 병원 옆에 붙어 있었다. 거실에서 차까지 얻어 마시고 문학 이야기를 나누던 김춘수 일행은 정오 사이렌이 울리면서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장면과 맞닥뜨린다. 당시 일제는 정오 사이렌이 울리면 행인에게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가 멎을 때까지 황군皇軍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비는 묵도를 올리도록 했다. 그런데 거실에 있던 춘원과 차를 내온 춘원의 딸이 정오 사이렌이 울리자 묵도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 본문 중에서
고전이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오래된 것이라고 다 고전은 아니다. 우리의 정서와 심성이 전형성이 잘 드러나고, 그 형식은 새로워야 한다. 당대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살아남아 통해야 한다. 언제 읽더라도 현재적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심미적 텍스트여야 한다. 무수한 작품이 시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다. 소멸하는 것들은 그 소멸로써 의미를 소진한다. 시대와 더불어 그 의미를 갱신하는 텍스트. 바로 그런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다. 고전은 하나의 우주다. 우주이되 어떤 근원과 향수로 속절없이 깊어진 심연이다. 삶의 심연, 언어의 심연, 의식의 심연이다. 한국문학 100년은 고전의 반열에 든 무수한 작품이 별들로 반짝이는 심연이다.
(중략)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과 시름을 바탕에 깔고 유장한 리듬으로 잃어버린 님과 집과 밥을 노래한다. 민요와 설화의 능란한 차용, 우리말 리듬의 능숙한 구사로 이루어진 시는 경박하고 투박한 신체시를 단번에 앞지른다.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을 자극하는 서정시의 원형이다. 승려시인인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년)...고전이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오래된 것이라고 다 고전은 아니다. 우리의 정서와 심성이 전형성이 잘 드러나고, 그 형식은 새로워야 한다. 당대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살아남아 통해야 한다. 언제 읽더라도 현재적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심미적 텍스트여야 한다. 무수한 작품이 시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다. 소멸하는 것들은 그 소멸로써 의미를 소진한다. 시대와 더불어 그 의미를 갱신하는 텍스트. 바로 그런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다. 고전은 하나의 우주다. 우주이되 어떤 근원과 향수로 속절없이 깊어진 심연이다. 삶의 심연, 언어의 심연, 의식의 심연이다. 한국문학 100년은 고전의 반열에 든 무수한 작품이 별들로 반짝이는 심연이다.
(중략)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과 시름을 바탕에 깔고 유장한 리듬으로 잃어버린 님과 집과 밥을 노래한다. 민요와 설화의 능란한 차용, 우리말 리듬의 능숙한 구사로 이루어진 시는 경박하고 투박한 신체시를 단번에 앞지른다.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을 자극하는 서정시의 원형이다. 승려시인인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년)은 상실과 부재에 따른 공허를 형이상학 층위에서 조명한다. 님은 원융圓融, 우주의 충만함, 그리고 삶의 중심적 가치이자 지향점이다. 그것을 잃은 자는 날카로운 상실감과 함께 깊은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있다 사라진 님도 님은 님이다. 없는 님은 있어야 할 님이다. 님의 가는 길과 님이 오는 길은 하나로 겹쳐진다. 「님의 침묵」은 잃어버린 것, 혹은 잊어버린 것에 기억을 부여하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아울러 한국어가 훌륭한 예술적 기반이며 형이상학적 관념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언어임을 증명한다. 백석의 『사슴』(1936년)은 한반도 서북 지역의 토착적 풍속과 언어의 곳간이다. 일제 강점기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처지에 놓인 채 끊임없이 허드렛일과 거친 방황으로 내몰린 청년의 내면을 맑고 품격 높은 언어로 형상화해낸다. 한반도 서남 지방 출신인 서정주의 『화사집』(1941년)은 관능의 비등점으로 치닫는 젊음이 내장한 매혹과 징그러움을 고압高壓의 언어로 포획한다. 서정주의 언어는 들끓는 욕망에 속절없이 투항한다. 욕망의 장력은 아주 강력해서 금욕의 윤리학은 어디에도 깃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파열하듯이 드러나는 맹목과 치기의 언어는 영혼의 어떤 저급함, 혹은 악에 이끌리는 한 젊은이의 내면 모습이다. 추악할 수도 있는 그 내면을 탐미의 언어로 대체함으로써 부정적인 것을 긍정으로 감싼다. 서정주의 시적 뛰어남은 주술적 언어의 부림과 위악의 능청스러움에서 나온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6년)는 일본의 한 교도소에서 숨진 한 무명 문학청년을 일약 민족시인의 맨 앞자리에 세운다. 인격적 성숙으로 가는 도상에 놓인 청년시인의 내면에 대한 고백의 언어들은 촘촘하다. 그 언어의 촘촘함이야말로 비상한 윤리감각의 물증이다. 이 내향적인 청년 시인은 아주 짧은 서정시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쓴다. 내면에 대한 철저한 돌아봄에서 비롯된 양심의 예민함과 날이 선 윤리성은 놀랍기만 하다.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청록집』(1946년)은 해방기의 도처에 끓는 정치적 열기 속에서 돌연 탈정치적 자연 미학을 추구함으로써 눈길을 끈다. 아마도 선전·선동의 언어들에 멀미와 피로를 느낀 이들에게 이 ‘순수한’ 언어들은 휴식과 위로의 기쁨을 주었으리라. ‘자연’이라는 화두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세 시인이 미묘하게 차이를 보인다. 정지용이 《문장》을 통해 문단에 내보낸 이들 청록파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일체의 정치색을 탈색함으로써 몽환적인 의고擬古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 작가 서문 중에서
한국문학의 星座 111명, 그들과 만나다!
문학을 꿈꾸고, 사랑한다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사전 같은 두께이지만 책장의 장식품보다는 무릎이 더 어울릴 책.
『나는 문학이다』를 보지 않고 문학을 얘기할 수 없다.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 고전이 향기로운 이유, 인생이 苦海인 이유는 뭘까?
문학으로 역사를 배우고 철학을 사색한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 111 / 한 권으로 정리한 한국현대문학사
작가는 이 책에서 한국현대문학사를 모두 여덟 개의 장으로 10년 단위로 시대별 구성했다. 이광수와 김동인, 김소월, 염상섭, 한용운을 1900년에서 1929년까지 “한국문학의 맹아기”를 이끈 작가로 분류하고 / 1930년대는 김기림, 서정주, 이상, 황순원 등을 “현대문학의 제1부흥기”를 이끈 작가로 / 1940년대는 “친일문학에서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는 김광섭, 오장환, 유치환, 윤동주, 이육사, 청록파를 / 1950년대는 김춘수, 노천명, 박경리, 박인환, 조병화, 천상병을 “한국전쟁과 폐허 시대” 작가로 그리고 / 1960년대는 “4?19혁명과 한글세대의 출현”을 이끈 작가로 김병익, 김수영, 김승옥, 신동엽, 이어령, 이청준, 황동규 등을 / 1970년대는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을 다룬 작가로는 고은, 김원일, 김주영, 김지하, 신경림, 조세희, 황석영 등을 / 1980년대는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에는 김남주, 박노해, 이성복, 이인성, 조정래, 현기영, 황지우를 / 19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학”에는 공지영, 기형도, 김영하, 김훈, 신경숙, 배수아 등을 연대기적으로 다루었다.
현대문학 100년에 바치는 오마주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111명의 적지 않은 작가를 한 권의 문학비평서로 다룬 이 책은 현대문학 100년에 바치는 시인 장석주...한국문학의 星座 111명, 그들과 만나다!
문학을 꿈꾸고, 사랑한다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사전 같은 두께이지만 책장의 장식품보다는 무릎이 더 어울릴 책.
『나는 문학이다』를 보지 않고 문학을 얘기할 수 없다.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 고전이 향기로운 이유, 인생이 苦海인 이유는 뭘까?
문학으로 역사를 배우고 철학을 사색한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 111 / 한 권으로 정리한 한국현대문학사
작가는 이 책에서 한국현대문학사를 모두 여덟 개의 장으로 10년 단위로 시대별 구성했다. 이광수와 김동인, 김소월, 염상섭, 한용운을 1900년에서 1929년까지 “한국문학의 맹아기”를 이끈 작가로 분류하고 / 1930년대는 김기림, 서정주, 이상, 황순원 등을 “현대문학의 제1부흥기”를 이끈 작가로 / 1940년대는 “친일문학에서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는 김광섭, 오장환, 유치환, 윤동주, 이육사, 청록파를 / 1950년대는 김춘수, 노천명, 박경리, 박인환, 조병화, 천상병을 “한국전쟁과 폐허 시대” 작가로 그리고 / 1960년대는 “4?19혁명과 한글세대의 출현”을 이끈 작가로 김병익, 김수영, 김승옥, 신동엽, 이어령, 이청준, 황동규 등을 / 1970년대는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을 다룬 작가로는 고은, 김원일, 김주영, 김지하, 신경림, 조세희, 황석영 등을 / 1980년대는 “산업화 시대와 반독재 투쟁문학”에는 김남주, 박노해, 이성복, 이인성, 조정래, 현기영, 황지우를 / 19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학”에는 공지영, 기형도, 김영하, 김훈, 신경숙, 배수아 등을 연대기적으로 다루었다.
현대문학 100년에 바치는 오마주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111명의 적지 않은 작가를 한 권의 문학비평서로 다룬 이 책은 현대문학 100년에 바치는 시인 장석주의 뜨거운 오마주이자 애절한 절창이다. 한국문학의 성좌로 불리는 작가의 삶을 꼼꼼히 읽노라면 문학사는 물론이고 어느새 우리의 근현대사까지 통째로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문학사에 빛나는 걸작의 탄생과 그와 관련한 주변 이야기와 산통 같은 창작의 고통 그리고 나약한 생활인으로서의 작가도 만나볼 수 있다.
최고의 문학, 최고의 교양
이것이 문학이고, 이것이 교양이다!
이 책은 문학비평서이기도 하면서 자체로 하나의 손색없는 ‘문학’이고 한편, 모자람 없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다. 수록한 111명 인물의 성공과 좌절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현대문학사가 어느덧 한눈에 꿰어지고 위대한 작가들이 뿜어내는 지적 향연은 장삼이사를 초라하게도 하고 때론 흥분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특정 분야 하나로 자리매김이 어렵다. 독자의 요구와 성향에 따라 문학평론서나 전기물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인문교양서나 논술용 참고서가 될 것이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은 무려 111명의 위대한 작가들의 영광된 삶과 인생의 질곡이 하나로 묶여 절묘한 하모니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작가 장석주는 한국문학의 거장들이 뿜어내는 아찔한 영광과 황홀한 아우라를 담기 위해 무려 열다섯 번의 계절이 바뀌도록 무지몽매한 짐승처럼 쓰고 또 썼다. 500mm에 달하는 책의 두께가 무색한 건 그의 열정과 투혼이 핏빛처럼 붉기 때문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땅에 살던 한국문학의 생산자들에게 바치는 장석주의 지적 오마주는 글쓰기의 내공도 내공이려니와 한국문학에 대한 뜨거운 애정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한때 문학을 꿈꾸었지만 작가가 되기란 쉽지 않다.
여기 우리 문학사에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111명 작가의 삶을 통해 만나는 『나는 문학이다』라는 문학의 바다는 그야말로 보물투성이다.
당돌한 제목만큼 독자의 지적 허영을 만족하게 할 최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