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영석론
15년 전 나는 둔산동 크로바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47평 아파트 속에 재활팔걸이가 레일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내가 제 아무리 좋은 아버지 모임을 만들어 회장을 해도,
현교수님 앞에서는 영원히 소인배라는 걸 고백했다.
그 형님은 그 아파트 속에 아들을 걷게 하겠다고,
형님과 형수는 기어 다녔다.
나는 그 후로 한신아파트 내집에 오면
두 시간씩 엎드려 기었다.
현영석.
사각얼굴에 거침없는 보이스,
누가 경험 앞에 이론을 내 놓는가.
나는 형님만 보면 박수를 친다.
내 심장의 승모판이 박수를 친다.
2. 강신철론
우리는 절묘한 운명으로 만났다.
미리 헤어져보고 다시 만난다는 걸 아무도 모를 거다.
시골 촌놈과 도시의 사오정 출신이 만나니
둔산동 온누리 일식집에서 밥만 먹고 헤어지는
초짜 인생들이었다.
예측하건데 늦둥이 아들 신세 질 사람이다.
그의 아내는 백지에 흰 물감으로 그린 여인이다.
모든 색을 다 통과시켜주는 순백의 아내.
속 썩어 누렇게 그을린 강교수의 낯빛을
나는 친구들에게 변명한다.
팔자 좋아 골프에 빠져 자외선에 탄 얼굴이라고.
강신철.
나는 당신 앞에서 쓸개를 빼줄 수 있다.
당신도 쓰디 쓴 쓸개가 없으니.
3. 박문호론
샤부샤부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고기를 먹고 남은 국물에 볶아먹는 날계란 밥은
박문호 박사 앞에 있었다는 것이 그 날의 불행이었다.
국물도 끓기 전에 자신에게 배당된 밥인 줄
널름 비워버리는 박문호의 순수함 앞에,
도복이 없어 팬티 바람으로 낙법을 배웠던
나의 23살 순수함은 유도처럼 나가 떨어졌다.
내가 입술을 댄 로키산맥 천년설의 설수가
박문호보다 순도가 높지 않았다.
순수를 지켜주는 예절은
의무가 아니라 명령이다.
부처의 명령이라도 좋고, 예수의 계명이라도 OK.
‘왜 종교는 졸업이 없어요?’
도대체 앞으로도 45억년 동안
누가 또 이런 화두를 던지겠는가.
나는 그를 만난 것이 운명이다.
2008년 6월 21일 박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