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를 알 리 없었던 큰어머니의 시뮬라크르
| |||||
큰아버지가 듣기 민망했던지 넌지시 만류하자 큰어머니가 대뜸 “왜 하지 말아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인데.”라고 말을 받았다. 갈등의 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이 말에는 귀가 퍼뜩 띄었다. 그렇다, 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씹지 않고 넘긴다면 먹으나 마나다. 그리고 말을 하면 실제로 뭘 먹는 것도 아닌데 맛 같은 게 느껴진다. 그 후로 나는 말을 할 때 느끼는 쾌감이 도대체 어디서 오나 하는 막연한 호기심이 지금껏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언어를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중 우연히 들뢰즈를 읽다가 스토아학파의 사건/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즉 맛이란 비물체적인 것인데 이는 물체적인 것들이 부딪칠 때 물체들의 표면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표면효과이자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기의 맛은 이가 고기를 파괴하는 표면들 사이에서, 다시 혀가 그 표면을 훑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이고, 말의 맛은 언어의 음운법칙에 따라 구강내 발음기관들이 서로 부딪는 표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맛의 효과인 셈이 된다. 그러니까 말도 음식처럼 씹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옛날 우리 큰어머니는 그냥 감각으로 터득한 사실을 철학자들은 정말 힘들게 설명했구나! 그러므로 물체적인 것은 비물체적인 것을 생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비물체적인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존재자(시뮬라크르)가 되므로, 우리가 물질을 욕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존재를 느끼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의 물신주의는 물질 자체에 집착하게 만드는데 이는 도착증이다. 말은 해야 맛이듯이, 물질은 제대로 쓸 때 맛이 난다. 김근 서강대 교수·중국문화전공 |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04 | 공지 | 총..균..쇠..... 1 | 이지영 | 2007.06.15 | 1533 |
1003 | 공지 | 박문호 박사님께서 말씀해주신 별보기 좋은 에어즈락 2 | 김주현 | 2007.06.14 | 18314 |
1002 | 공지 | [re] 우연히 접한 시 3 | 황보영 | 2007.06.13 | 2021 |
1001 | 공지 | 우연히 접한 시 1 | 황보영 | 2007.06.13 | 1913 |
1000 | 공지 | 6월 11일, 박문호 박사님댁 방문 사진. 7 | 문경목 | 2007.06.13 | 2538 |
999 | 공지 | 100books 발표일정 2 | 박문호 | 2007.06.13 | 1889 |
998 | 공지 |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이종상 화백 | 박문호 | 2007.06.13 | 1897 |
997 | 공지 | [펌]"외계 생명체 증거 10년 안에 밝혀질 것"<英학자들> | 이진석 | 2007.06.12 | 2114 |
996 | 공지 | [펌]데자뷔 유발 뇌 부위 찾았다. | 이진석 | 2007.06.12 | 1899 |
995 | 공지 | 119회 토론회는 오늘 "월"요일 입니다 !!! 1 | 송윤호 | 2007.06.11 | 1601 |
994 | 공지 | 두번째 산행 2 | 오영택 | 2007.06.11 | 1978 |
993 | 공지 | 계룡문고 확장이전을 축하드립니다 5 | 현영석 | 2007.06.10 | 2713 |
992 | 공지 | [알림] 119회 토론회 6월 11일 월요일 !! 2 | 송윤호 | 2007.06.09 | 1721 |
991 | 공지 | 서울국제도서박람회를 다녀와서(in coex)..... 6 | 송근호 | 2007.06.09 | 2280 |
990 | 공지 | 6월의 계룡산 1 | 김홍섭 | 2007.06.08 | 2789 |
989 | 공지 | 6월 산행 스케치 2 | 송나리 | 2007.06.08 | 2564 |
988 | 공지 | 신희섭 박사님 뇌강연---전자통신연구원 대강당--- | 박문호 | 2007.06.08 | 1970 |
987 | 공지 | 독서100권클럽에 원고를 청탁드립니다. | 월간 마이라이프 | 2007.06.08 | 1889 |
986 | 공지 | 첫산행 | 박혜영 | 2007.06.07 | 1862 |
985 | 공지 | 총.균.쇠. 와 루이스 토마스 | 박문호 | 2007.06.07 | 2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