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를 알 리 없었던 큰어머니의 시뮬라크르
| |||||
큰아버지가 듣기 민망했던지 넌지시 만류하자 큰어머니가 대뜸 “왜 하지 말아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인데.”라고 말을 받았다. 갈등의 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이 말에는 귀가 퍼뜩 띄었다. 그렇다, 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씹지 않고 넘긴다면 먹으나 마나다. 그리고 말을 하면 실제로 뭘 먹는 것도 아닌데 맛 같은 게 느껴진다. 그 후로 나는 말을 할 때 느끼는 쾌감이 도대체 어디서 오나 하는 막연한 호기심이 지금껏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언어를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중 우연히 들뢰즈를 읽다가 스토아학파의 사건/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즉 맛이란 비물체적인 것인데 이는 물체적인 것들이 부딪칠 때 물체들의 표면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표면효과이자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기의 맛은 이가 고기를 파괴하는 표면들 사이에서, 다시 혀가 그 표면을 훑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이고, 말의 맛은 언어의 음운법칙에 따라 구강내 발음기관들이 서로 부딪는 표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맛의 효과인 셈이 된다. 그러니까 말도 음식처럼 씹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옛날 우리 큰어머니는 그냥 감각으로 터득한 사실을 철학자들은 정말 힘들게 설명했구나! 그러므로 물체적인 것은 비물체적인 것을 생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비물체적인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존재자(시뮬라크르)가 되므로, 우리가 물질을 욕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존재를 느끼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의 물신주의는 물질 자체에 집착하게 만드는데 이는 도착증이다. 말은 해야 맛이듯이, 물질은 제대로 쓸 때 맛이 난다. 김근 서강대 교수·중국문화전공 |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04 | 이병록 운영위원님의 해군교육사령부 단장 취임을 축하합니다. 14 | 강신철 | 2009.12.11 | 2574 | |
1003 | 12월22일 : 180차 정기강연회/2009 송년회 13 | 임석희 | 2009.12.11 | 2710 | |
1002 | 가입인사드립니다. 1 | 공부자 | 2009.12.11 | 2196 | |
1001 | 겨울방학 청소년 인문학 특강 TEXT 안내입니다!! | 교육공동체나다 | 2009.12.12 | 2316 | |
1000 | <공부력>, 사토 덴, 2008, 이스트북스 | 이중훈 | 2009.12.13 | 2201 | |
999 | 여유로운 주말, 뒤적거린 책들.. 6 | 이정원 | 2009.12.14 | 2651 | |
998 | 진해에서 소식 올립니다. 16 | 이병록 | 2009.12.15 | 2848 | |
» | 일상속의 들뢰즈 | 이중훈 | 2009.12.16 | 2498 | |
996 | 한국Technical Writing 학회 컨퍼런스 안내입니다. | 강호주 | 2009.12.16 | 2974 | |
995 | 가입인사드립니다 3 | 이미선 | 2009.12.16 | 2877 | |
994 | 저도 가입인사드립니다.. 3 | 이준규 | 2009.12.17 | 3613 | |
993 | 안녕하세요? 첫만남 인사드립니다. 5 | 최희선 | 2009.12.17 | 3583 | |
992 | 12월18일 서울백북스강연회및송년회 4 | 박용태 | 2009.12.18 | 3290 | |
991 | <영국의 독서교육> 저자 초청 강좌 및 세미나 1 | 이동선 | 2009.12.21 | 2982 | |
990 | 2009 송년회 안내 - 프로그램/오시는길 2 | 임석희 | 2009.12.21 | 2965 | |
989 | [신간 소개?] 쳇 레이모의 새 책 『1마일 속의 우주』 | 장종훈 | 2009.12.22 | 2557 | |
988 | 제3차 운영위원회 회의 결과 | 강신철 | 2009.12.22 | 2618 | |
987 | 우아한 송년회 4 | 현영석 | 2009.12.23 | 2700 | |
986 | 백북스 회원여러분 및 이병록 단장님께. 5 | 김상철 | 2009.12.24 | 2603 | |
985 | 즐거운 성탄~ 10 | 임석희 | 2009.12.24 | 2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