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100북스 모임이 여느 다른 모임과 다를바 없다면,
어제 사무실에서...
운이 없으면, 만의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급하게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하여 작성한 예비 성명문에 써야만 했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한 마디. 이걸 타이핑하는 순간, 더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힘이 쭉 빠졌다. 그럴리가 없다고, 그래선 안된다고, 모두다 희망을 기원하는데, ‘만의 하나’라는 이유로 돌아오지않는
오만가지 생각이 오간다.
'어제 느꼈던 이상야릇한 느낌이 순간적으로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던게 아닐까. 흠..'
'제발.. 제발… 제발… 잘 떠올라라… '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기록을 세워라. 성공율을 다만 0.1%라도 올리는 일이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안전한 이륙을 기원하는 간절한 바램은 어느새 눈물로 바뀐다.
엔진 하부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그 붉은 오렌지빛 화염이 화면에 가득한다. 아!! 저 힘~!!!
소리가 생생히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하나, 둘, 셋, 드디어 소유즈가 땅을 박차고 오르기 시작한다. 아~!! 다행이다. 폭발하지 않음에 대한 안도의 한숨도 눈물로 바뀐다.
넷, 다섯, 여섯, 심장 소리와 함께 계속 세는 동안에도 로켓은 하염없이 하염없이 오른다. 그리고 백을 좀 넘겼을 때 1단이 분리되는 게 보였다. 어쩜 그렇게 깔끔하게 네등분으로 떨어져나가나… 깔끔해서 또 한 번 눈물이 와락.
잠시 후 580초가 지나면, 우주선은 완전히 지구 궤도에 오른다는데…. 벌써 로켓은 시야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희미한 한 줄기 점을 따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아무 일도 없기를…
시야에서 소유즈가 완전히 사라지자, 우주선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로 여유만만의
중앙관제소에서 들리는 초 단위의 보고 소리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운다. 얼마 전까지만하더라도 부산에서 얼굴 붉히며 일했던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함 그 자체다. 모든 시스템의 확인이 끝난 후,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일어서는 사람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다시 만나게 되면,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해야겠다.
소유즈 발사장면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20세기 음악으로 돌아와 공부를 계속했다.
우주선 발사를 단체 관람 한 후 교수님은 현대 음악 강의를 이렇게 이어가셨다.
“지금 우리는 우주선이 올라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마차가 다니던 시절의 음악에만 매달리시나요?”
"마차가 다니던 시절에 고전음악을 들으셨다면, 우주선이 날아가는 시대에는 여기에 맞는 (현대)음악을 듣는제 맞지 않을까요?"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마차와 우주선.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마차와 우주선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우주선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얼마전 양자역학의 세계로 이제야 막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교수님은 음악마저도 우리를 20세기 21세기로 안내해 주고 계시다. 비록, 우리가 마음으로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위대한 예술가와 과학자, 인문 사회학자들의 공통점은 끝없이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따라갔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주선에서 삶의 본질을 찾으려 하고 있고, 양자역학에서 그 본질에 다가가려 하고 있다면,
왜 현대음악에서 그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면 안 될까?
아직은 내가 온전히 현대음악의 아름다움이나, 작곡가가 전하고자 하는 삶의 메시지를 느끼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직은 그 알수없는 소리의 조합들이 현대인들의 삶의 각박함, 외로움 고뇌와 좌절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지 마음으로 온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일단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소리, 혹은 우주의 소리 같은 그것 또한 삶의 본질을 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먼저 인정하고 시작해 볼까 한다.
차츰 현대음악이 나타내고자 했던 무질서 가운데의 질서, 다양한 음역의 세계.. 이제 그 세계를 만나는 것을 애써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
기회가 온다면, 덜컥 들어가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그러면, 21세기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좀 더 알 수 있게 될는지!
로켓 발사를 연구하시는 분이 이 순간에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발사 과정의 험난한 여정과 각 단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잘 알기에 눈물이 흐르셨겠지요.
임석희 회원님의 눈물이 정말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