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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6 09:00

소고를 위한 산책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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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옆에 조계사가 있어 저는 가끔 그곳엘 들른답니다. 여유만만해 보이는 중년 여인에서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더군요. 법당에서 불상을 향해 절을 하는 분들을 목도하노라면 평소 백안시했던 종교심의 위력을 새삼 깨닫곤 하지요. 정말 부족할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이 불상을 향해 무어라고 중얼대며 합장하는 광경을 보노라면, 저 자신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 든답니다. 한없이 무한한 세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비참한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저렇게 고상하고 우아한 분들을 불러들여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위력이란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하는 종교에 대한 경외심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입니다.

법당 앞에는 허름한 석가탑이 서 있습니다. 그 곳에도 불자의 발길은 끊이질 않습니다. 모두들 한 줄로 서서 돌탑을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시주를 하는 곳이지요. 소리없이 움직이는 입술로 보아 그들 또한 무언가 소원을 비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아주 정성을 다해 시주를 하곤 합니다.

원래 돈이라는 것이 인간 욕심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탐욕에 속하는 물욕의 표상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하고 저 자신 민망해지는 걸 어찌 하겠습니까. 해탈한 부처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자세로 합장을 하고 나서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시주를 하는 모습이 결코 예사롭게 보이진 않더군요.

공원이나 지하도, 또는 서울역에 가보면 요즘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있지요. 노숙자들이지요. 경제가 않좋다 하지만 물질풍요라고 일컬어지는 요즘 시대에 거리마다 왜 걸인은 또 그렇게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혹, 국민소득 증가와 걸인은 비례하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에도 경제 호황기에는 오히려 걸인이 증가한다고 하더이만.

암튼 살찌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어느새 살찌는 것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해 먹고 마시는 것을 매일매일 고민해야 하는 그런 부류들이 분명 있지요. 자신을 위해서라면 돌멩이게도 절을 하는 이들이 혹 그들은 아닐런지요. 죽은 조각상에 고해성사 하고 사죄를 구하는 분들이 혹 그들은 아닐까요.

자비를 베푸라고 한 부처의 말을 빗대어 하는 말은 결코 아니랍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선의로 정의되는 희생정신이며, 봉사며, 자비, 혹은 겸손이나 사랑마저도 알고보면 이기심의 발로는 아닌지 잠시 어지러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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