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그 때.. 실수한게 아니었어. '
--------------------------------------------------------------------------
약 열흘 전.
내 친구 Y가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다.
Y의 남자친구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킹카를 골랐다면서 나에게 꼭 잘 해보라고 한다.
'킹카? 킹카? 킹카! ♬'
거울 앞에서 톡톡톡 화장을 한 후,
겨울이라 추워서 잘 입지 않았던 치마를 꺼내 입었다.
타임월드 스타벅스 앞에서 만난 H씨.
(사실 그간 Y의 남자친구가 2번의 소개팅자리를 마련해 준 적이 있었다.
삼세번이라더니.. 이번에 만난 H씨의 첫인상이 가장 괜찮았다. )
H씨와 나는 타임월드 10층 기소야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숍 'Marie'에서 코코아를 마셨다.
여느 소개팅 코스와 비슷했다.
그러나 여느 소개팅과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면....
(두둥!)
알밥 속의 날치알을 톡톡 씹으면서,
타임월드 주변 거리를 나란히 걸으면서,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차를 마시면서,
약 3시간동안 내가 한 이야기 대부분은 100북스 클럽에 대한 것이었다는 점?!
"제가 어느날 호모쿵푸스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래서 100북스라는 곳에 갔는데요~"
"서울에서 들었던 천문학 강의에서는요~"
"젊은 애들끼리는 교차로를 하는데요~"
H군과 헤어질 때쯤 나는 생각했다.
'연락이 안오겠구나. '
헤어지고 몇 시간 후, 매너있는 H군이 문자를 하나 보내왔다.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뵈요."
그리고 난 답장을 보냈다.
"네. 푹 쉬세요."
처음 본 여자가 만남의 시간 내내 웬 독서클럽 얘기만 주절주절했으니,
그 이야기를 듣느라 참 피곤했겠구나 싶어 푹 쉬시길 권장했다.
그리고 H군이 문자는 저렇게 보냈어도 다음에 또 뵐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분의 눈빛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에 보자'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그 분과 나는 볼 일이 없었다.
이와 같은 경험 후, 난 작은 딜레마에 빠졌다.
내가 지금 100북스를 만나서 느낀 이 기분좋은 설레임과 흥분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일단 말을 꺼내긴 했는데, 막상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은 나와 같지 않다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나. 앞으로는 사람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웬만하면 좀 삼가야 하나. 나만의 즐거움으로 간직해야하나. 소개팅자리에서 100북스 얘길 하는건 남자의 심리를 잘 읽지 못하여 내가 범한 실수인가.
그러다가. 오늘
박문호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요한걸 중요한거라고 눈앞에 갖다줘도 중요한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아하! 아하!
그 사람은 중요한걸 갖다줘도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재밌는 100북스 얘길 해줘도 풍덩 빠져들지 못하고 나에게서 점점 눈빛을 거두어 갔구나.
(혹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거나. ㅋ 그러나 전자로 생각하겠다. 그게 정신건강에 좋겠지요? ^-^ )
암튼. 결론은.
앞으로도 나는 소개팅이나 선자리가 있으면
100북스 얘길 할 꺼다.
그 얘기에 관심을 보이며 눈이 총총 빛나는 사람= 중요한 걸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요,
그 얘기에 '이 여자... 뭐지....?' 하는 눈빛을 보이는 사람= 중요한걸 갖다줘도 모르는 사람!
이라는 흑백논리를 펼쳐본다. ^-^ㅋ
난 오늘
(지극히 100북스에발담군지얼마안된초짜회원다운 기준으로)
'진국 남자고르는 기준'을 세웠다.
P.S. 몇 해 더 지나 결혼이 정말 정말 하고싶은 때가 되면 위와 같은 기준은 수정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