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에 함께 쌓아온 깊은 추억
1994년 3월, 학교 대강당에서 담배 몇 개비를 후배들에게 빌려와 피우며 형제가 되기를 원했고 어줍게 허락한 지가 16년, 한참의 세월이 흐르도록 잘 지내왔고 이제는 제법 유명한 시인이기도 한 후배를 만났다. 차가운 겨울 아침 7시에 출근하느라, 일이 밀릴 만큼 바쁘게 업무를 마치느라, 힘들게 일을 하지만 꽤 많은 급여를 받는다. 다음 달에는 보너스에 급여도 오른다니 어려운 실직 끝에 얻은 다행스런 일이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약속을 지키겠다며 먼저 도착하여 양념곱창을 굽고 있었다. 오늘은 돈 신경쓰지 말고 실컷 먹으란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려면 조금 덜 마시라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내일 일은 내일 일이라고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고 긴 장미 담배를 물더니 가끔은 자유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고단함도 슬쩍 묻어냈다. 약간 취기 오른 발걸음에 이래저래 지갑을 찾아 꺼내더니 차비하라며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에게는 참 소중한 돈일테니 괜찮다고 안 받으려니 성의라고 해서 억지로 받았지만 미안하다. 아침이면 어제 밤에 잘 들어갔느냐고 늘 그랬듯이 전화가 왔다. 우리가 살면서 작고 소박한 정겨움을 잊고 사는 것 같았다. 늦은 겨울 밤,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춥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은 이 험한 세상에 함께 쌓아온 깊은 추억 때문은 아닐까? 친구야, 그래 우리 힘내어 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