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즐겨읽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발행하는 '광고정보'紙 5월호에
마침, 함민복 시인의 '감나무'라는 시와 함께 실린 글이 있는데
공감가는 바가 있어 옮겨봅니다.
… 중략 …
저는 시인들이 길어 올리는 관점을 염탐하길 좋아합니다.
'아, 꽃을 저렇게 보네', '나무를 저렇게 보네',
'아 어머니의 주름을 저사람은 저렇게 보네'
참 재미있습니다.
그들에게만 있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의 질서를 재편하는 일은
고되지만 즐겁고 복된 일입니다.
감나무
함민복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 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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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박목월---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過客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門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