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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남극을 가다 세상의 끝, 지구의 중심을 찾아 떠난 17박 18일간의 여정. 지구 한 바퀴(4만㎞)를 훌쩍 뛰어넘은 4만4천458㎞의 길고 길었던 길. 각종 비행기와 선박, 소형보트를 끊임없이 갈아타야 했던 고난의 연속.
●푼타아레나스 마젤란의 도시. 이곳에서 킹조지섬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호텔 밖으로 보이는 부두에는 미국의 쇄빙선 파머호가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1만t급이 넘는 파머호는 남극을 연구하는 모든 연구자들의 꿈이다. ●푼타아레나스→킹조지섬(1천240㎞· 비행시간 3시간) 전화가 오면 짐을 싸서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기를 3일째. 드디어 출발이다. 전기안전공사 감독관, 국토해양부 조사관, 한양대학교 대학원생 2명 등 기자를 포함해 5명이 동행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각 나라 연구진들이 대기 중이다. 호주 연구원 한 사람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 ‘코리아’라고 대답하자 ‘킹세종?’이라고 되묻는다. 세종기지의 위상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하다. 킹조지섬으로 가는 항공편은 비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우루과이 군용기뿐이다. 편도 800달러에 육박하는 운임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대륙으로 직항하는 민간항공기는 편도 2천200달러에 달한다. 남극의 벽이 더욱 높게만 느껴진다. ●우루과이 군용기 안 소음·진동과의 전쟁. 3시간여 지났을까. 시리도록 푸른 색의 바다 위로 여기저기 살얼음이 보이고 둥둥 떠가는 빙하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로 저 멀리 하얀 땅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떤 이, 어떤 나라의 소유도 아닌 지구상의 유일한 땅.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극은 ‘세상의 끝’이라는 이미지에 너무도 잘 어울리게 고요했고, 그러나 장엄하게 다가왔다. ●킹조지섬 공항→세종기지(11㎞· 운항시간 30분) 킹조지섬 칠레기지의 공항은 자갈밭에 가까웠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이곳이 남극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기지에서 우리를 마중나온 대원들은 이미 5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바닷가에 올려져 있는 조디악(고무보트)에 오르기 전 구명수트를 입었다. 공항에서 기지로 가는 길은 높은 파도에도 불구하고 뒷바람이라 비교적 수월했다. 오는 길: 남극 → 칠레 → 애틀랜타 → 인천공항
남극에서의 아쉬운 1주일을 뒤로 하고 러시아 조사선 유즈모호에 올랐다. 군용기의 다음 출극 일정은 1월 6일. 너무 오랜 시간을 남극에 머무를 수 없어서 택한 배편이었지만 타는 순간부터 후회막급이었다. 세계 3대 악협이라는 드레이크 해협에 들어서자 4천톤급인 유즈모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탁자는 네 발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아다녔다. 자리에 누워 머리를 어느 쪽으로 두는 것이 잠이 잘 올까를 3박 4일 내내 고민했다. ●푼타아레나스→산티아고(2천176㎞· 비행시간 3시간 20분)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산티아고 공항의 펭귄 인형은 낯설지 않다. 남극에서 볼 수 있었던 해표와 각종 새들의 인형도 반가울 따름이다. 한여름에도 추운 남극과 달리 산티아고 공항의 여행객들은 너무나 가벼운 옷차림이다. ●산티아고→애틀랜타(7천600㎞· 비행시간 9시간 45분) 오로지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인데 비행기는 더 이상 타기가 싫다. 피곤에 지쳐 곯아떨어졌다가 눈을 떠보면 고작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들리는 한국 관광객들의 목소리는 지난 2주일간 극지에서 일하는 대원들만 보고 있었던 나에게는 오히려 신선했다. ●애틀랜타→인천(1만1천440㎞· 비행시간 15시간10분) 드디어 긴 여정의 끝이다. 3주에 걸친 남극행은 과학을 담당하는 기자가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 고생을 하고도 꼭 다시 남극을 찾겠다는 월동대원들의 다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우주´를 목표로 삼아야겠다. |
박건형 서울신문 기자 | kitsch@seoul.co.kr 저작권자 2009.01.23 ⓒ ScienceTim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