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아시아사 학자인 르네 크루쎄(1885-1952)는 현재까지 유목사의 최고의 책으로 꼽히는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에서 유목민족에 대해 다소 낭만적이었던 나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목민들의 생활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가난한 투르크-몽골 유목민은 가뭄이 든 해가 되면 말라버린 우물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면서 풀이 메말라버린 초원을 지나 농경지대의 언저리, 즉 북직예나 트란스옥시아나의 문앞에까지 와서 정주문명이 이룩해놓은 기적, 즉 풍부한 농작물, 곡식으로 가득 찬 마을들, 도시들의 호화스러움에 놀라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농경사회와 동시에 목축.수렵 공동체가 잔존한 것 - 달리 말해 한발이 드는 해가 되면 초원생활에 드러나는 끔찍한 굶주림을 겪고 있는, 여전히 목축단계에 머물던 사람들이 보고 접촉할 수 있는 곳에서 농경사회가 더욱더 발전해간 것 - 은 현격한 경제적 대조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잔인한 사회적 대조를 나타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작지역에 대한 유목민들의 주기적인 침투는 자연의 법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