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9 온지당에서 있었던 수유너머와의 공동워크샵때였다.
그날은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토요일 밤이었다.
갑자기 한복을 입은 도인 분위기의 사람들이 들어오셨다. 경주에서 오셨노라고. 황룡골에서 오셨노라고..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경주에서 대전을 찾아주신 손님께 늦은 저녁을 대접하고... 왠지모를 아우라의 주인공들에게 김치와 밥을 들고 들어가 인사를 드린 것이 나와 황룡회와의 첫 만남이다.
황룡사터를 지나 감포 방면으로 가다 산기슭으로 오르면 옹기종기 작은 마을이 있다. 감포로 가는 대종천을 옆으로 둔 깊은 계곡의 산 꼭대기에 위치한 것도 같다.
해가 내리기 전에 서둘러 올라야 한다는 말에 부지런히 산을 탔다. 그닥 높아보이지 않는 작은 언덕인데 숨이 헉헉 찬다. 운동을 너무 안 한 티가 팍팍 난다. 대전에 돌아가면 운동부터 해야지…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경주를 둘러싸고 있는 산중에 작은 초가집이 있다. 21세기엔 초가집을 보려면 민속촌에 가거나 박물관에 가야한다. 살아있는 현장으로서의 초가집은 민속마을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가지런히 정돈된 단아한 초가집과 거기에 딸린 작은 마당, 주변에 널린 온갖 야생꽃들을 앞에 두고 깊은 탄성을 낸다. 아~ 세상에 이런곳이!!!
계절이 빨리 다가온 탓에 5월인데도 산은 울창하다. 새생명의 기운이 흠뻑 느껴지는 윤기나는 연둣빛부터 한참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짙은 초록이 어우러져 단풍의 여름 버전을 보는듯하다. 산에 뛰어들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첩첩 산을 바라보며 위치한 이곳, 명당이 따로 없는듯한 이곳은 바둑과 차를 사랑하시는 두 선생님이 지내는 곳이다. 마당의 검둥이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너른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자연을 즐긴다. 어떤 느낌이 오는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방에 들어서자 방안이 환해진다.
분명 물리적 수치로는 내가 사는 방보다도 훨 좁은 공간인데, 어쩌면 그리도 넓고 환한지!
불필요한 모든 것을 없애고, 사람과 차에 꼭 필요한 것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무소유의 힘이 절로 느껴진다. 너무 많은 욕심에 지금 사는 집이 좁다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해본다.
욕심을 버리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자. 그러면, 마음은 저절로 부자가 된다.
하늘과 땅이 전하는 대우주의 기운이 “차”라는 설명을 해 주시는 아사가의 팽자님.
(아사가는 경주에 있는 전통찻집 갤러리의 이름이고, 우리를 맞이해 주시기 위해 친히 산을 올라와 계셨다.)
팽자님은 성함이 아니다. 이런 무식한!!! 처음 알았다. 팽자는 차를 만들어 주시는 분의 명칭이라고.
정통으로 차를 마시는데, 분명 우리 문화라고 머리는 알고 있는데, 왜 이리 낯선지…
평소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하고, 인스턴트 녹차에 익숙한탓에, 이렇게 차를 마셔본 적이 없는 탓이리라.
차가 갑자기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은 조선초 불교를 탄압하면서였다고 한다. 절에서 집에서 자연스레 차를 마셨는데, 갑자기 차 금지령 같은게 생긴거다. 새삼스럽게 정치권의 결정이 어떻게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실감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녹차만은 아니다. 차를 즐기던 스님들이 주변에서 멀어지고, 차 그릇(다기)이 사라지고, 차 문화(다도)가 사라지고, 차와 관련된 용어가 사라지고, 자연을 벗삼아 마시던 차 한잔의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지고, 풍족해지다보면 인간은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더니, 새삼 자연이 그립고, 자연이 멋지다.
오전엔 도곡 선생님 댁에서 말차를 마시고 왔는데, 오후엔 이곳에서 보이차를 시작으로 해서 철관음(관철음??)으로, 녹차로 완전히 최고의 수준으로 차기행을 떠난다. 오늘 내 코가 내 혀가 호강을 한다.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차를 대접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에서 삶의 여유를 읽는다. 시를 이야기하고, 사상을 논하고, 자연을 논하며 마신 차가 헤아릴 수 없다. 차를 마시고, 떡을 먹는데, 달달한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 혀가 놀랜다. 떡마저도 자극적이라니!! 자연에서 살면 내 몸의 센서가 순화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얼마전 달빛에 취해 감상을 하다 네온사인 간판에 눈이 시렸던게 바로 같은 경험일까?
조용히 눈을 감는다. 차 맛과 사람 향기에 취할 즈음 온 신경은 어느덧 바람결에 들리는 풍경에 가 있다. 들리는 것은 온통 바람소리와 풍경소리뿐. 이 둘이 내는 조화가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아니, 황룡골 깊은 계곡과 떨어지고 싶은 충동마저 들게 하는 푸른 숲과 신선한 봄바람, 바람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풍경소리, 차 향기와 좋은 사람들과 어울어지는 분위기 좋은 이 순간. 머릿속이 맑아지고, 영원이 있다면 이대로 오랫동안이고 싶어진다.
해가 산을 넘자 밖은 고요 그 자체다. 잠시 장소를 옮겨 창문을 바라보며 해가 진 그곳에 남아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 눈을 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무념무상 그 자체다. 그것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새삼 알수없는 눈물이 흐른다. 그 울음의 정체는 자연의 그리움이 아니였을는지…
이 순간이 영원하길…
지난 주말에 경주에 다녀왔는데, 완전히 신선놀음하고 왔다.
첩첩 산중, 황룡골이라는 곳이었는데, 초가집 한 채 지어 놓고
차 마시며 농사짓고, 시를 지으며 친구들과 노니는 그런 신선분을 만나고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