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의 말대로 “일상이 단조롭다는 것만큼 지극한 행복의 경지는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큰 걱정거리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는 고민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가 누구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얼마를 가졌든,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분들에게 행복과 불행을 전하는 전령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직업에 대해 늘 불만이다. (…)
의사는 시시각각 불행이 닥쳐오는 소중한 생명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에게 최고의 행복은 의사를 대면할 일이 없는 것,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상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오히려 다른 그 무엇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 양 오해하고,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아집과 질투, 시기와 증오, 그리고 반목을 거듭한다. --- pp. 5~7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나머지 생을 모르기 때문에 웃고 울고 화내며 살아간다. 신이 우리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은 누구도 죽음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게 아닐까.
두 분은 오늘까지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10년을 살아왔다. 내가 아주머니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온유함과 고요함,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 p. 38
“그뿐이 아닙니다. 이미 암세포가 오른쪽 폐에도 전부 전이되었고, 왼쪽 폐의 일부에도 전이가 있습니다. 환자가 숨이 차는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일 겁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싫을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의사는 저승사자처럼 세상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야 할 때가 있고, 이제 그만했으면 싶은데도 그토록 잔인한 이야기를 끝까지 계속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말기암이라는 진단만으로도 이미 한줌의 희망마저 사라진 사람들에게 나는 잔인하고 지독한 단어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 --- p. 46
“그래도 군인이라서 치료비가 얼마간 나와, 그런데 제대하면 그게 안 나와. 군생활하고 상관없는 병이라서 제대하면 그 길로 끝이래. 그래서 제대를 안 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금지옥엽 외아들이 병이 들면 당장 제대시켜 곁에 데려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진구 아재의 형편은 오히려 그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앞으로 얼마가 더 들지도 모르는 치료비, 아마 아재네 철물점과 집을 모두 팔아도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 p. 89
할아버지가 또 혼자 오셨다. 원래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같이 오셔서 할머니는 옆방에서 심장 진료를 받고, 할아버지는 내게 관절염 치료를 받는데, 요사이는 계속 혼자 오셨다.
서로 곰살 맞게 대하는 분들도 아니었고, 그저 말없이 기다리다가 나중에 한 분이 나오시면 서로 얼굴 한번 흘끗 보고는 별말 없이 같이 일어서서 나가시곤 한다. 두 노인이 참 친한 것도 갖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간 늘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몇 번이나 할아버지 혼자서 병원에 오셨다. 궁금해진 내가 여쭤보았다. “어르신, 할머니는 왜 안 오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가만히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다.
“할마이 먼저 갔어. 몇 달 됐어!” --- pp. 142~143
밤에 잠든 딸아이의 얼굴은 절대 보지 말아야 한다. 자는 아이의 얼굴을 무심코 들여다보았다가는 사이렌의 마법에 걸린 항해자들처럼 녀석에게 영혼을 빼앗겨버린다.
앙증맞은 코를 통해 쌕쌕 숨을 고르는 소리며, 두 손을 턱밑에 모아 백설공주처럼 곱게 잠든 모습이며, 심지어 이불을 차면서 몸을 뒤척이는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내 시선을 붙들지 않는 것이 없다. (…)
이 아이 앞에서는 돈이나 명예 따위는 하찮은 것일 뿐이다. 어떤 것도 이렇게 귀하고 값진 느낌을 선물하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사랑을 알게 해준 이 아이가 참으로 고맙다. 만약 이 아이가 내 딸로 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감정적 호사들을 결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 p. 213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의례적인 안부도, 악수도 청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인형이 얼마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서로가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 네 소식은 잘 듣고 있다. 나는 뭐 이렇게 산다.” ‘나는 이렇게 한다’는 말에 비로소 무장해제가 된 느낌이 들었다.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하고 “꼭 한번 연락해라.” 하고 말하려고 돌아섰지만 나는 비겁했다. 나는 명함을 건넴으로써 면죄부를 받은 셈이지만 ‘꼭 한번 연락해라’는 내 말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로 들렸을까?
2주일이 지난 지금 그는 그곳에 다시 나타나지도, 내게 연락하지도 않고 있다. --- pp. 239~240
아이들은 아직 진흙이다. 스스로 만들고 싶은 모양을 만들면 된다. 우리 시대처럼 누가 정해주는 대로가 아닌, 자기가 필요한 용도대로 만들면 된다. (…) 아이들은 저마다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만들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뭉개고 새로 빚으면 그만이다. 이미 구워진 우리는 뭉개면 점점 더 잘게 깨지는 파편이 되지만, 아이들은 백번이고 천번이고 마음에 뜰 때까지 다시 빚을 수 있다. (…)
나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런 아이들 중 하나가 바로 다영이다. 3일 후, 그 아이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을 때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 저는 요강이 될래요. 만들기 쉽다고, 또 쓰임새가 나쁘다고 아무도 만들려고 하지 않지만, 저는 요강이 될래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해도,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p. 2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