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창의성 디자인, 창디본색 2010 조경분야를 맡고 있는 유승종입니다.
역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디자인을 이야기 하는것은 재미있는 경험인것 같습니다.
창디본색 2010 조경에게 디자인을 묻다 1
그림속 디자인 읽기
1. 창의적 읽기를 위해 알아야 할것 - 의미는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가?
한장의 사진을 먼저 보겠습니다. 불빛이 보입니다. 터널속에서 찍은 사진 같습니다.
원래의 사진입니다. 터널속을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입니다.
사실 '빠르게'라는 감흥은 맨처음 사진에서는 그다지 우리에게 다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번재의 사진에서는 그 감흥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다가오지요.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빠르다'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정지된, 혹은 "느림"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있기에 가능한것 같습니다.
Q>의미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는가?
A>의미란 대립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은 차이로부터 발생한다.
공간을 읽을때, 작품을 읽을때 가장 중요한 관점은 바로 이 "차이"입니다.
성스럽다/속되다
길다/짧다
크다/작다
주/부
등등.
우리가 느끼는 감흥이라든지, 의미라고 하는것은 결국, 바로 이 차이로부터 비롯되는것입니다.
마치 시끄러운것이 있기에 조용하다라는 상대적 개념이 의미를 발하는 것 처럼요.
그리고 작가가 디자인을 한다. 그림을 그린다. 혹은 음악을 만든다. 라고 하는것은 결국
그 안의 구성요소들간에 이렇게 차이를 집어 넣어서 의도와 의미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역으로, 우리가 작품을 읽는다는것은 바로 이 차이에 주목해서 읽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을 우리는 작품의 내재적 구조를 읽는다고 하여 구조적인 층위의 작품읽기라고 합니다.
반대로, 상황적층위의 작품읽기도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세한도를 예로 들어보지요.
" ...세한도는 엉성해 보이지만 실은 완벽한 삼각형 구도다. 그림 오른쪽 아래 구석과 집옆 늙은 소나무 가지를
선으로 잇고 그곳에서 그림 왼쪽의 아래 구석으로 선을 그리면 바로 삼각형. 불세출의 서예가 다운 놀라운 구성력에 탄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다. 보고 또 보아도 세한도가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그자체가 아닌, 작품의 상황적층면에 치중한 읽기가 가지고 오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장이라 할수 있습니다.
위의 글에서 남발되고 있는 장황한 형용사를 다 떼어내고 보면, 작품을 통해 '읽혀진' 사실은 아주 간단한 한가지, 삼각형의 구도로 되어있다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두고 불세출의 서예가답다느니 , 보고 또 보아도 좋다라는 의미의 도약이, 점프가 마구마구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작품읽기를 할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상황적층위, 작가의 전기적 사실에 입각하거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작품을 읽을때에는 결국 우리의 작품 읽기는 창조적이 되지 못하고 이처럼 소비적이 되고 맙니다. 저는 이것을 소비적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유홍준전 문화재청장님이 쓰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것을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 봐도, 이러한 관점에서 서술된 글들을 아무리 읽은듯, 그것은 결국은 '남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되고 말지요. 이것은 독서, 남의 작품을 남이 읽은것을 내가 보는것이지, 결코 창조적 읽기가 될수 없습니다.
창조적 읽기를 위해선, '차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다음의 이미지를 보겠습니다.
바티칸의 욕실이라고 하는 작품입니다. 다른 어떤 부연설명이 없더라도, 우리는 어떤 공통된 의미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 의미자체에 대한 것을 보지 말고, 작품안에 사용된 구성요소로서의 사람을 봅시다.
구성요소간에 사용된 차이는 어떤것인가요?
크기, 즉 크다와 작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가 정확히 어떤것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견은 감상자에 따라 다르겠으나, 그것은 결국 구성요소간의 크기의 차이라는 것을 통해 명확하고 명쾌하게 우리에게 전달되고 잇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디자인은 이처럼, 우리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나게 하는 기술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작품을 읽는다고 할때는, 이처럼 그 차이에 집중해서 읽어보는 훈련을 갖도록 하는것이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겠지요. 세한도를 통해서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세한도를 통해 읽는 창의성
다시한번, 미술책을 통해 워낙 우리에게 낯익은 그림,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입니다.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말년의 처지를 초라한 집으로 표현하고, 제자의 변함없는 사랑을 기개와 푸르름을 잃지 않는 잣나무와 소나무에 대입하여 집주위에 둘러서 배치 한 것 정도가 이 그림에 대해 잘 알려진 사실이 되겠습니다.
국보로 까지 지정되어 있는 이 그림은 눈을 씻고 보고 또 다시 보아도, 간단하기 그지 없지요.
이걸 두고 뭘 읽어낸다고 하지? 라고 고민하지 말고, 일단 보이는 구성요소에 최대한 집중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