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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8 00:23

몰입의 추억 1 : 윌슨의 정리

조회 수 2531 추천 수 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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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추억 1 : 윌슨의 정리 


 

누가 나에게 추억할 것이 있느냐고 물으면 '몰입의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몰입했던 대상에 대한 느낌은 수 년이 지나도록 머릿속 깊이 박혀 있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기 홈페이지에 한 친구가 갑자기 '정수론'에 대한 책을 보고싶다는 글을 올렸길래

<윌슨의 정리>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 내어 본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는 <윌슨의 정리>는 물론이고 아예 정수론을 다루지 않는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자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정수론> 책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접했다.

증명이 복잡하거나 길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명을 이해하고 나서는 굳이 왜 이런 방법으로 증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논리적인 오류나 비약을 찾아보려고도 했고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깔끔한 증명이었다.

 

일단 승복하게 된 증명이니 여러 번 베껴 써 보았다.

국어시간이나 사회시간에는 교과서 밑에 노트를 숨겨 증명을 여러 번 써 보았다.

보고도 써보고 외워서도 써보고 내가 스스로 논리적인 연결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몇날며칠 그 증명이 신경쓰였고 틈틈이 증명을 떠올렸다.

정수론은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시험에 나올 리 없는 증명이었다.

고등학생 중에 정수론 책을 본 사람은 1%도 되지 않을 것이고

윌슨의 정리 증명을 베껴써 보거나 외우고자 했던 사람은 0.01%도 안 될 것이다.

어디가서 자랑할 데도 없지만 나는 그저 즐거웠다.

깔끔하고 명쾌한 <윌슨의 정리> 증명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니!

 

그로부터 몇달이 지났는지 아니면 해가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학년 수학선생님에게 일이 생겨 윗학년 수학선생님께서 중간고사 문제를 출제한 적이 있었다.

박사학위를 가진 그 선생님은 학생들을 골탕먹이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이 내 주신 중간고사 수학문제를 받아든 순간 깜짝 놀랐다.

 

'윌슨의 정리를 증명하시오.'

 




기쁨과 흥분 속에 답을 써내려 갔지만 쉽지는 않았다.

증명을 공부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답을 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문제보다 특히 공을 들여서 증명을 써내려갔다.

 

내가 답으로 써 낸 증명이 100% 완벽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도


나는 그 문제에서 점수를 깎이지 않았다.

그 문제에 답을 써낸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윌슨의 정리> 증명을 '흉내'낸 학생이 한 명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나였다.

 

'정수론' 책을 보고싶다는 친구의 글에 댓글로 <윌슨의 정리> 얘기를 툭 던졌다.

<윌슨의 정리>가 고등학교 중간고사 문제로 나온 적이 있는데 기억하냐고.

한 친구가 고등학교 중간고사 문제를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놀라워 했다.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고맙게도 다른 친구가 댓글을 달아 주었다.

 

'윌슨의 정리 기억난다. 정원이가 윌슨의 정리를 흉내냈다고 수학샘이 얘기한 것도 기억난다.'

 

2008. 5. 27

이정원
  • ?
    이상수 2008.05.28 00:23
    그렇군요. 몰입 했던 순간이 추억되는 것이군요. 멋있네요. 윌슨의 정리 들어본적도 없는데..ㅋㅋ 검색해 보러 갑니다.
  • ?
    송근호 2008.05.28 00:23
    이정원 회원님 글 잘 봤습니다.월슨의 정리와 몰입간의 멋진 통섭입니다. 저는 몰입하면 칙

    센트미하이 교수의 ''FLOW'' 책이 생각나는 군요. 건강하세요 .이만 줄입니다.
  • ?
    김세영 2008.05.28 00:23
    소위 "족보"라는 것을 돌리고, 시험에 잘 나올만한 문제들을 추려 써머리를 하는 시험을 잘보기위한 공부를 했던 대부분의 학창시절에 자발적인 호기심과 열정으로 진리를 쫒았던 몰입의 즐거움에 관한 이정원님의 글은 미소를 짓게 합니다. 어떤분이 그러시더군요. 학교다닐때는 공부의 즐거움을 몰랐는데, 중년이 된 지금 이제 막 공부가 즐거워졌는데 암기력도 떨어지고 머리가 안따라 준다구요. *^^*
  • ?
    전재영 2008.05.28 00:23
    윌슨의 정리문제를 만났을때 기쁨과 흥분이 전해져요^^ 저도 느껴보고 싶어요 그 느낌!!
  • ?
    윤보미 2008.05.28 00:23
    저도 오늘 처음 들어보는 '윌슨의 정리' . 그리고 그 윌슨의 정리로 고등학교때 두근두근 희열을 맛본 이정원회원님..
    이정원회원님 10년안에 따라잡기 프로젝트의 기간을 좀 (많이) 늘여야겠습니다. +_+;

    다음 몰입의 순간 속편도 기대됩니다. ^-^
  • ?
    이정원 2008.05.28 00:23
    윤보미 회원님, 2년이면 충분할텐데요! ^^
  • ?
    이해선 2008.05.28 00:23
    이정원회원님 10년안에 따라잡기 프로젝트도 있나보죠?! 거기에...저도...
    참여하고 싶어요~ㅋㅋㅋ
    국어시간이나 사회시간에 윌슨의 정리에 몰입하는 이정원님의 모습이 떠올라집니다..
    그리고 이정원님의 글은 오늘 아침을 참 상쾌하게 만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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