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The Blue day.

by 윤보미 posted Mar 07,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며칠 전. 개학날 느낀 행복함을 글로 썼었지요.
개학날 뿐 아니라. 지금 약 3,4일 동안 매일 아이들에게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적용해 가며
지난 2년보다 올 3년차에 많은 보람을 느끼며 지내고 있었어요.

그림책 읽어줄 땐 아이들이 내용에 폭 빠졌고,
55가지 원칙 중 한두가지씩 매일 읽어주면서 설명하면 아이들이 끄덕끄덕 거리고
마인드맵 관련 책을 읽고 그 자료를 PPT로 정리한 후
아이들과 마인드맵을 연습한 다음 사회 과목을 1단원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해보니,

첫 사회 시간동안 30여 페이지의  사회 1단원 흐름을 신기할 정도로 머리속에 다 넣었음을 확인했죠.
아이들도 자신의 두뇌가 발휘한 실력에 모두 깜짝 놀라 박수를 쳤구요..


요즘 그렇게 행복하고 좋은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들떠있으면서도.
항상 불안했고 두려웠어요.

언제까지나 내가.. 항상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한번쯤은 지금의 행복에 금이 갈 수도 있는 거니까.



오늘이 그런 날이네요.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던 날.

요 짧은 기간동안 느꼈던 행복에 금이 간 날...


개학 한지.. 지금 한.. 4일째죠.



매일 뭔가 빠뜨린 아이가 있었어요.

공책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가져오지 않았고.     (여일곱의 아이들이 안가져옴)

다른 사람에게 "새 공책"을 빌려서 다음 날 예쁜 걸로 다시 돌려주라고 했죠.

                                                      (필기는 누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책이 없는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고,

다른 친구에게 공책을 빌리면 자리에 앉으라고 했어요.

모두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후 수업을 시작했지요.



다음 날, 그 아이는 공책도 아니고, 낙서장도 아닌 곳에.

수업시간에 필기한 내용은 적지 않고 짝과 작게 떠들고 있더군요.

                                           (교실을 돌아보니 필기 안한 아이는 그 아이 포함 2명)



그 공책을 들어 살펴보니 어제 배운 내용 필기가 되어있지 않더군요.
                                          
                                           (어제 내용도 필기되지 않은 아이는 그 아이 한명)

물어보니 어제 공책을 안가져왔었대요.

친구한테 새 공책을 빌려서 쓰지 않았었냐고 물으니

다른 친구 공책 찢은거에다가 필기한 후 버렸다고 하더군요.

제일 뒤에 앉아서 떠들기도 하고.

그래서 어제는 제일 뒤에 앉아있던 자리를 앞자리로 옮겼어요.

제 시야에서 멀리 있으니 가까이 앉혔지요.



오늘은 국어 교과서를 안가져왔어요. (다른 교과서는 가져왔지만.)
                                                  (그 아이 말고도 4명의 아이가 더 안가져왔지만.)

그 아이는 그런 행동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얘만은 무섭게 혼내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었죠.

                                               (이 마음이.. 오늘 안좋은 일의 시초였던거 같아요.)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얘는 어제 나눠준 시간표도 안가져갔길래)
주먹을 대고.                              (내 주먹)
머리를 여기에 박으라고 했어요.     (쿵! 하고.. 꿀밤처럼)

한 두대 박더니.                           (좀 약하게)

웃더라구요.

무섭게 말했죠.
웃어? 한번 더.  또 한번더. 한번 더.

그리고 다음부턴 잘 가져오라 하고 들어갔어요.



애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요.
고래고래 소리지르시더군요.
어떻게 아이를 주먹으로 "가격" 할수가 있냐고.
교장실에 전화하려다가 저한테 하는거라고.
애 이마가 퉁퉁 부었다고.
앞으로 지켜볼거라고.

저는 앞뒤 상황을 설명드리고.

제가 잘못된 "방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했죠.
그렇지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하루, 이틀, 삼일.. 그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길 했는데.

고래 고래.. 소리 지르시고. 끊으시더군요.



잠시 후. 다시 집에 전화를 드리고. 안받길래 핸드폰으로 걸었더니
끊어버리시고...



저도 생각해보면. 잘못이었죠.
그래도. 오늘은 참 힘드네요.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어요.

제가 잘못한 부분은 아이에게 손을 댄 것이죠.



그리고 학부모님께도 제가 사용한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생각이 짧았다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그 아이에게 혼낸거 자체는 후회하진 않아요.
몇일을 지켜보았을 때, 그 아이는 규칙에 대해 제대로  개념이 박혀있지 않은 것 같았거든요.


다만.
혼내는 방법으로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혹은 규격화된 매를 썼으면
덜 하지 않았을까 싶은 후회는 드네요.
문제는 제가 손을 사용한 것이고

아이의 피부가 부풀어 올랐다는 것이죠.



그 어머니도 아이가 혼난거 자체보다는

책을 안가져온 아이가 4명인데 그 아이 혼자만 꿀밤을 맞았고.

또 꿀밤맞은 그 이마가 부었기 때문에

더욱 감정적이셨을거예요.


앞으로가 걱정이네요.
제가 과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요..

나를 움직이는 힘이 "내"가 되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를 듣고

저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부모님들의 "입"이 될까봐
그게 두렵네요.


그래도 오늘 저의 행동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확실히 잘못이 있었어요. (단, "방법" 의 잘못. 그 외에는 물러서고 싶지 않네요.)

아직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도 엄격하게 교육하는 방법이 몸에 배지 않은

신출내기 교사이기에.



매 순간 순간 판단을 하기 전에

멈추고. 생각해보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아직 갈 길이 머네요.

나나, 그 학부모님이나. 갈 길이 멉니다.

 

P.S

 

학교의 우울한 이야기를 하기 전. 고민했습니다.

학교에서 제가 겪은 좋은 이야기를 밖에 할 수록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안좋은 이야기는 그 안에 가지고 있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여..

 

그러나 지극히 .. 아직 그릇이 작은 선생으로서,

이런 우울함을 쓰지 않으면.

언제나  행복하고 좋은 선생님, 즐거운 아이들.. 이렇게 포장하는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교사가 학부모 욕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올린 듯한 찝찝한 기분입니다.

이런 일이 생긴 오늘이 유감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