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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0 01:45

구원의 여인상---피천득

조회 수 1654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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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여인상


                    

                      피천득


여기 나의 한 여인상이 있습니다.
그의 눈은 하늘같이 맑습니다.
때로는 흐리기도 하고 안개가 어리기도 합니다.


그는 싱싱하면서도 애련합니다.
명랑하면서도 애수를 깃들이고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앳된 데를 지니고 지성과 함께 한편 어수룩한 데가 있습니다.

걸음걸이는 가벼우나 빨리 걷는 편은 아닙니다.
성급하면서도 기다릴 줄 알고,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수줍어할 때가 있고,
양보를 아니하다가도 밑질 줄을 압니다.

그는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이 사람을 매혹하게 하지 아니하는
푸른 나무와도 같습니다.
옷은 늘 단정히 입고 외투를 어깨에 걸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나 가난한 것을 무서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파야프레스에 통작작을 못 필 경우에는 질회로에 숯불을 피워 놓습니다.
차를 끓일 줄 알며, 향취를 감별할 줄 알며, 찻잔을 윤이 나게
닦을 줄 알며, 이 빠진 접시를 버릴 줄 압니다.

그는 한 사람하고 인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라다 보는 일이없습니다.
그는 지위, 재산, 명성 같은 조건에 현혹되어 사람의 가치 평가를
잘못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예의적인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아니합니다.
아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남이 감당하지 못할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사치하는 일은 있어도 낭비는 절대로 아니합니다.
돈의 가치를 명심하면서도 인색하지 아니합니다.
돈에 인색하지 않고 시간에 인색합니다.
그는 회합이나 남의 초대에 가는 일이 드뭅니다.

그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많습니다.
그는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오래오래 산책을 합니다.
그의 그림에는 색채가 밝고 맑고 화폭에는 넓은 여백의 미가 있습니다.


그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나,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아니합니다.
그는 마음의 허공을 그대로 둘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 아니합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받아서는 아니 될 남의 호의를 정중하고 부드럽게 거절할 줄 압니다.

그는 과거의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아니합니다.
자기 생애의 일부분인 까닭입니다.
그는 예전 애인을 웃는 낯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몇몇 사람을 끔찍히 아낍니다. 그러나 아무도 섬기지는 아니합니다.

그는 남의 잘못을 아량 있게 이해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정직합니다. 정직은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 닿지 않는 광막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고갈하지 않는 윤기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유머가 있고, 재치있게 말을 받아넘기기도 하고

남의 약점을 찌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는 때는 매우 드뭅니다.

그는 한 시간 내내 말 한 마디 아니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라도 그는 같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기쁨을 갖게 합니다.

성실한 가슴, 거기에다 한 남성이 머리를 눕히고 살 힘을 얻을 수 있고
거기에서 평화롭게 죽을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가슴을 그는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 영혼의 존엄성, 진리와 미, 사랑과 기도,
이런 것들을 믿으려고 안타깝게 애쓰는 여성입니다.

==================================================


아래의 이정원님의 글을 보면서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이 생각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글을 읽으면


균형잡힌 감성의 아름다움을 느낌니다.






더해서도 덜 해서 도달하지 못하는


동치미 맛 같은 사람.











  • ?
    이상수 2007.11.10 01:45
    하하하, 웃고 싶어 집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하하하
  • ?
    이정원 2007.11.10 01:45
    적절한 타이밍에 소개받은 이 글은 앞으로 웬만해선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 ?
    송윤호 2007.11.10 01:45
    동치미 맛 같은 사람 !!!!! 더 할 말이 없네요 !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조동환 2007.11.10 01:45
    동치미 맛 같은 사람! 표현이 아주 멋지십니다.
  • ?
    이상수 2007.11.10 01:45
    몇달이 지나서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저의 댓글이 저위에 있네요. 왜 저런 표현을 했을까 잘 생각이 안납니다. 그때와 지금의 감정 상태가 다른가 봅니다. 애련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애련
    (哀憐)【명사】【~하다|타동사】 가엾고 애처롭게 여김.
    ¶ ∼의 정을 금치 못하다.

    애련
    (哀戀)【명사】 이루지 못한 연애(戀愛). 슬픈 사랑.
    ¶ ∼의 정을 깨닫다.

    애ː련
    (愛憐)【명사】【~하다|타동사】 어리거나 약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어 사랑함.

    애ː련
    (愛戀)【명사】【~하다|타동사】 사랑하여 그리워함.


    균형잡힌 감성의 아름다움을 느낌니다.
    더해서도 덜 해서 도달하지 못하는
    동치미 맛 같은 사람.

    박문호 박사님의 저 표현 보다 보다 더 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동치미 맛 같은 사람 -> 이 한줄로도 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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