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공지
2007.05.15 23:00

제비야 네가 옳다

조회 수 1968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민복이는 언제나 이딴 얘기만 했다 -  김훈


 


함민복의 글은 삶의 갈피갈피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삶의 고통이나 슬픔과 더불어 아름답고 강인한 친화력을 보인다.


이 친화력이 언어적 장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삶의 구체성을 향해 곧게 나아갈 때, 그는 <제비야 네가 옳다>또는 <눈물은 왜 짠가>처럼 짧고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함민복은 강화도 서쪽 바닷가에서 버려진 농가를 빌려 살고 있다. 나는 라면과 소세지를 장만해서 민복이네 집에 몇 번 놀러 갔었다. 부탄가스도 사다 주었다.


우리는 바닷가 갯펄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라면을 끓여서 소주를 마셨다.


나는 민복이가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데, 민복이는 이걸 전혀 모른다.


만복이는 취중에도 문학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민복이는 제비가 딴 집에만 집을 짓고 자기 집에 와서는 구경만 하고 갔다고 투덜거렸으며, 올 가을에는 망둥이가 살이 덜 올랐다고 걱정했다. 민복이는 언제나 이딴 얘기만 했다.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그는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고있다. 그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은자隱者이고, 숨어서 내다보는 견자見者이다.


                                                         


*******


제비야 네가 옳다



 




강화도 우리 동네에는 이십여 호의 집이 있다.


그 중 제비가 집을 짓지 않는 집은 빈집 두 집과


남자 노인이 혼자 사 는 집. 그리고 역시 남자 혼자 사는 우리 집 뿐이다.


재작년 봄,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지으려고 거실까지 들어와


내 삶을 염탐할 때, 나는 몹시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에 집을 짓지 않는 제비는


딴 곳으로 날아갔다.


나 아닌 다른 생명체와 한 지붕 밑에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낙담이 컸다.


작년엔 제비를 속여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티브이를 크게 틀어


여자와 아이들 목소리도 내고 빨래를 널어보기도 했다.


그런 데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비는 한 가정을 이루지 않고 살아가는 나의 삶을,


언제 떠날지 모르는 뿌리가 없는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던것 같다.


 


 -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머리가 아파서 함민복 시인의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정화하는 박테리아처럼, 시인은 사람들의 때를 대신 닦아주는 일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위의 시가 마음을 잔잔하게 하는군요...


 

  • ?
    이상수 2007.05.15 23:00
    저도 기사도 찾아보고 했는데, 함민복 시인에게 되게 친근감을 느낍니다. 작년에 무성산에서 살던 집이 선정도서 게시물에 올라온 집만큼이나 허술한 곳이었고.. 이곳 저곳의 기사에서 그는 가난하다라고 하는데 저도 가난해서 그런지 친근감을 느낍니다. 하하하
    대개는 가난하다는 것을 말하기 껄끄로울 때가 많은데 함민복 시인의 글 앞에서는 그냥 담담히 이야기 할 수 있네요.

    기대되어서 은근설쩍 설레이는 마음이 간혹 간혹 듭니다.
  • ?
    정영옥 2007.05.15 23:00
    저는 주말농장의 상추를 뜯어다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닐수 있지만 모든것일수 있는 무언가를 드리고싶은 마음이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48 공지 공부모임 이름 의견수렴 12 박문호 2008.06.13 2142
1947 공지 [알림] IDC에서 안정적으로 서비스됩니다. 3 이정환 2004.09.22 2142
1946 공지 처음이라 긴장되네요^^ 1 박미선 2003.09.30 2141
1945 공지 사랑하고, 감사하고, 지혜롭기 위한 공부 2 손기원 2003.05.24 2141
1944 공지 20시간 홈베이스 복귀 화보... 2 송윤호 2004.03.06 2140
1943 공지 전국민 책읽기 운동 펼치는 도정일 교수 2 문경수 2007.10.05 2139
1942 공지 <희망의 책 대전본부> 출범식 안내 2 이동선 2007.07.24 2139
1941 공지 책을 읽다가 문득 3 엄준호 2007.07.22 2139
1940 공지 [스페인] 1. 바르셀로나 : 가우디 - 사그라다 파밀리아 7 이정원 2008.08.06 2138
1939 공지 황금연휴를 책과 함께/내일신문 이동선 2007.09.18 2138
1938 공지 전재영회원의 병실을 다녀와서... 13 김홍섭 2008.08.07 2137
1937 공지 문경수군!! 1 송윤호 2005.02.02 2137
1936 공지 [의학]인체기행..식도,9초면 통과한다 서지미 2009.03.23 2136
1935 공지 1월 13일 조중걸 교수님 [비트겐슈타인 & 나스타샤]강연 타이핑 13 file 윤보미 2009.01.15 2136
1934 공지 시가 태어난 자리 3 박문호 2007.05.10 2136
1933 공지 실리콘밸리에서 소식 띄웁니다 4 최병관 2004.12.08 2136
1932 공지 [re]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 논란에 부쳐 - 과학과 철학의 경계 장종훈 2008.11.23 2135
1931 공지 보바스기념병원에서 성남노인보건센터로 13 고석범 2008.12.24 2135
1930 공지 [re] 5월 산행 스케치 3 송나리 2007.05.07 2135
1929 공지 8월 23일 76회 토론회 안내 송윤호 2005.08.23 213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 145 Next
/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