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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갔다가 아침부터 배탈이 나는 바람에 하루 종일 여관방에 쳐박혀 있었다. 아픈 개처럼 몸을 꿈틀대면서 <집으로 가는 길>을 읽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 보다 마음이 아파왔다. 밤이 되자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책을 잘못 고른 것이다.





전쟁과 아이. 이보다 더 모순된 결합이 있을까. 내전이 치열한 시에라리온에서 소년병을 경험했던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상상력이 뛰어난 소설가라도 쓸 수 없는 문구들로 가득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울 듯한 슬픔과 고통의 경험을 그는 생생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었다.


그의 말이 담담하기에 나는 더욱 괴로웠다. 이게 인간이 인간에게 할 짓인가...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모를 살상하는 일, 마약과 폭력 영화로 아이를 길들여 살인을 즐기도록 하는 일, 극도의 공포로 조장하여 인간을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일...





이스마엘은 랩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소년으로, 다시 마약과 피에 젖은 병사로, 그리고 지금은 유엔에서 소년병 문제를 논의하는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었던 고통과 상처는 내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나 같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살아났다. 유니세프 직원들의 눈물겨운 도움으로 그는 몸과 마음의 암흑 상태에서 벗어나 순수한 옛 기억을 되찾았다. 다시 랩을 부르고 춤을 추며 이제는 전 세계를 향해 말하고 있다. 전쟁은 안 된다고, 소년병은 더더욱 안 된다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보았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눈은 어떻게 하면 과자를 더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숙제를 안 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이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전쟁에 휘말려 총을 들고 어른들의 생존게임에 뛰어든다면...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이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선 비극의 한가운데에 아이들이 놓여 있다...





다음 날 유니세프에 전화를 했다. 푼돈에 불과할지라도 소년병을 구출해오는 차의 기름값으로, 적응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매일같이 불태우는 공책값으로, 노래 잘 부르는 어느 소년병에게 줄 카세트 테이프값에 보태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비극 속에서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그 슬픈 기억을 되짚어 이야기해 준 이스마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 책 한 권으로 어느 정치가도 하지 못할 일을 해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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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7.12.05 21:50
    시에라리온 내전에 관한 <망명자 올스타 밴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가슴 아픈 영화였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큰 불행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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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우 2007.12.05 21:50
    10년도 훨씬 지난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었습니다. 대구의 서문시장이란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었는데, 그곳이 서쪽으로 15도 정도 위로 경사가 져 있습니다. 붕어빵 장비로 보이는 리어카를 아저씨는 끌고 아이를 업은 아줌마는 뒤에서 밀며 제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순간 '우동 한그릇'을 읽고 난 것 같은 따뜻함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집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그 모습이 보기가 좋던지 아직도 그 장면이 한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그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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