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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3 11:12

김병종의 모노 레터 - 김병종

조회 수 2592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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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임에 화가가 오신다는 얘길 듣자, 전 순간적으로 김병종 화백을 떠올렸습니다. 인연이랄 것도 없지만, 그분으로 인해 제 삶이 변화된 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김병종 화백이 새 책을 낸 게 있는지 찾아보다가 작년 12월에 출간된 <김병종의 모노레터>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조선일보에 <화첩기행>이란 이름으로 연재한 것을 엮은 것이더군요. 그런데 바로 조금 전!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2000년 10월 신문에 실렸던 <진메마을서 만난 소년상> 이라는 그림이 이 책에  실려 있지 뭐예요? 얼마나 갖고 싶었던 그림이었는데!

                              

 


7년 전 그 날의 화첩기행은 김용택 시인 편이었습니다. 김병종 화백의 아름다운 글과 함께 이 그림이 아주 조그맣게 실려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자마자 전 소년의 얼굴에서 빛나는 완전무결한 순수에 감동하고 말았어요.


그림을 오려 컴퓨터에 붙여놓고는 하루 종일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김병종 화백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요지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이 그림을 보고 정말 감동했다, 내 아이들이 이렇게 순수하게 컸으면 한다, 그림을 팔든지 아님 하나 다시 그려 달라...


하하... 어이없죠? 전 그 때 김병종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그림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지했어요.


 


그리고 한 열흘이 지나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웃음이 배어있는 목소리였습니다.

“여기 서울이에요. 저 모르시겠어요? 김병종이예요!”


헉! 그 때부터 전 말더듬이가 되었죠. 어더더더....


그분의 요지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다들 이 그림에 대해서는 좋단 말을 안하던데 안목이 뛰어나다, 편지받고 참 기뻤다, 애들은 몇 살이냐, 그림은 지금 바빠서 못 그려주니 방학 때나 되면...





그날부터 저의 ‘그림 기다리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끝나도, 1년, 2년이 지나도 안 오더군요. 그날 전화 끊고 좋아서 소리 지른걸 들은 동료들은 몇 년 동안이나 키득거리며 묻곤 했습니다. “아직 그림 안 왔어?”  저의 답변은 항상 의기양양했죠. “그분은 항상 바쁘시다구요!”





그렇다고 제가 기다리기만 한건 결코 아닙니다. 인생 대전환(?)이 시작되었죠. 마른 장작이 불씨 하나에 훨훨 타오르듯이, 일종의 예의성 멘트일지도 모를 ‘안목이 뛰어나다’는 한 마디에 소위 저의 예술혼(하하... 생각할수록 부끄럽기도 하고 우스워요)이 불타 올랐습니다.


전 세계의 그림들을 모으고, 김병종 화백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분이 쓰신 모든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예술이니 그림이니 하는 책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월간 잡지를 구독하고, 끙끙거리면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줄창 그림만 그렸습니다(물론 다 독학이죠. ㅋㅋ..).


결국에는 사직하고 미술사 공부를 하겠다고 입학서류를 준비하고, 대학과 장학금 문제 협의까지...


어떻게 됐냐구요? 포기했어요. 내가 과연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애들이 좀 더 크고 나면 생각하라고 다들 뜯어 말렸거든요. 가끔, 그때 결심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냄비는 식었지만, 소년상 그림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컴퓨터에 붙여 놓은 그 신문 쪼가리가 몇 년 후 없어져 버리자, 그 그림을 다시 보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가끔씩 웹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점에서 <나의 생명이야기>를 뒤적이다가 글쎄, 그 그림을 발견한 것입니다! 오.... 김병종 화백은 이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먹지 않은거야!


별로 관심 없는 책이지만 오직 그 조그만 그림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 하나에 책값을 지불했습니다. 책은 아직도 보지 않았는데... 뭐 그게 중요한가요?





아, 그런데, 방금, <김병종의 모노레터> 책에 이 그림이 한 페이지의 크기로(신문에선 겨우 증명사진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실려 있으니 놀라지 않았겠어요? 김용택 시인에 대한 글, 강둑의 배 그림 역시 7년 전 신문 그대로입니다.


 

여러분께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기쁨을 함께 하고 싶어서 우스꽝스런 제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이 그림을 계기로 시작된 뜨거움은 2년 정도 후에 식어버렸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제 삶은 예전과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모르고 덤볐던 그 시간동안 많이 읽고 배웠거든요.

 


김병종 화백이 그려준 것은 아니지만, 저는 오늘 진정으로 소년상을 얻은 기분입니다. 혹시, 그분이 저와의 옛 약속을 기억해서 이렇게 크게 실어준건 아닐까요? (하하.. 또 오버 시작이야) 


이러거나 저러거나, 정말 멋진 일이죠?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참으로 아름다운 책, 김병종의 화첩기행 1,2,3과 모노레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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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2007.06.23 11:12
    양경화님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요즘 일을 핑계로 한 2주간 운동을 못(안)했더니 마음이 엄청 흩트러지는 것을 느끼는데, 자꾸 한가지에 올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순간 순간의 호기심은 자꾸 드는데 그것이 짧은 시간으로 끝나니 아무것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김병종 이라는 화백에 대해서 잠깐 찾아보고 이런 분도 있구나 하고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메마을서 만난 소년상' 을 봐도 제 느낌은 움직이지 않으니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항상 열심히 책을 읽으시고 좋은 독후감을 남겨 주시니 그런 모습에서 잠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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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옥 2007.06.23 11:12
    화첩기행..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구입을 못하고 있네요. 이글을 읽고나니 빨리 구입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억이 가득한 책과 음악은 더 애정이 가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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