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로망 백서 - 박사, 이명석 저
일반적으로 여행서라 하면 여행지의 정보를 빽빽하게 수록하고 있다.
또는 여행자의 경험들을 차곡차곡 적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책은 지금까지 접한 여행책과는 조금 다르다.
여행을 꿈꾸기보다는 여행자의 로망에 대해서 꿈을 꾸게 만든다.
그동안의 여행을 돌아보니 장기여행을 제외하면 언제나 빡빡한 일정속에
정해진 장소를 모두 보기 위해 하루종일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많은 장소를 들렀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도착해보면 여행일기를 적을때엔
기억나는 이미지나 느낌을 담을수가 없게 된다. 이미 지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쫒기듯 관광명소만을 찍는 여행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요즘이다.
이제는 시간에 쫒겨 모든것이 스쳐 지나가버리는 여행에 입맛을 잃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듯 아는만큼 느끼게 될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조용히 음미하는 바람의 느낌과 매일 달라지는 하늘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기억하며 여행하고 싶다.
이 책은 여행에 관한 로망을 엔터테인 라인, 서바이벌 라인, 센티멘털 라인, 배가본드 라인,
메모리얼 라인 등으로 나누어서 서술하고 있다. 독특한 발상이다.
이들이 서술하고 있는 100가지 로망에는 실현 가능한것에서부터 황당한 것까지 다양한 경험과
상상력으로 다양한 로망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또한 박사와 이명석이라는 두 저자의 명쾌한 팀웍이
너무도 기발하고 완벽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둘은 작업실을 같이 쓰는 친구라고 알려져있는데
한편 내게도 창작작업을 위해 서로 자극이 되고 상사으이 원천이 될만한 최고의 팀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만든다. 물론 지금 최고의 팀을 구성하고 있지만 아직 결과물을 생산해내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들의 팀웍이 부러울 따름이다.
특히 센티멘털 라인중 "폭풍"마저도 가슴을 열고 느낄수 있는 그들의 오픈마인드!
그들은 남들의 투덜거릴 악조건의 기후에도 상황에도 나름의 로망을 찾아간다.
긍적적 마인드, 혹은 괴짜, 혹은 긍정론자들?
또한 사운드트랙의 로망은 어떠한가?!
음반중에서 OST를 지독하게 듣고 지독하게 모으고 지독하게 연구해오던 나는 (요즘은 덜 지독해졌지만..)
그들이 말하는 OST의 로망을 눈물날만큼 동감한다. 갑자기 그들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아..나의 동지들!
냄새의 로망은 어떻고! 각 나라마다 공항을 나설때 그나라 특유의 바람냄새, 사람냄새 같은것이 있다.
그들은 이런 오감의 감각조차도 흘려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가슴에 담는다.
무료한 노천카페의 로망..은 정말 진정한 여행자에게 필수!!아니던가?!
내 테이블 옆에는 늙고 게으른 고양이 한마리가 함꼐 했으면 한다. 그 고양이는 산전수전 다 겪은 표정으로 아주
무료하게 내옆에 앉아있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무료한 노천카페의 로망은 완벽해지는거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만의 여행에 관한 로망들을 쌓아간다.
이미 예전에 잊고 지냈던 황당하거나 기발한 상상들이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다.
몇가지 정리해보자면
+ 레게머리하기 (한국에서는 다양한 제약으로 인해 언제나 실패로 돌아갔던 나의 악동짓?)
+ 파트너와 똑같은 문신하기 (두려움이 많은 그는 과연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 동네 꼬마 아이들과 땅따먹기 하면서 하루종일 빈둥거리기
+ 아침에 슬리퍼를 끌고 숙소에서 나와 상점 주인들과 인사하고 샌드위치 가게 아저씨와 인사하고 환전소 직원과도 인사하고 지나가는 강아지와 각종 짐승들과도 안면을 트고
하물며 공원의 비둘기와도 인사를 나누던 시절.. 나는 과연 여행자인지 동네주민인지 나조차 구분이 안가던 그곳에서 더이상 내게 박아지란 없었다. 차라리 동네 상점의 주인들은
우리 악동들이 하루빨리 이 동네를 떠나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 국가의 명예를 걸고 체스한판 - 이때의 뜨거운 열기는 자칫 폭력을 수반하기도 하니 적당하게..
+ 말없이 - 삶과 죽음에 관한 너무도 무거운 고민을 엎고서 왠만한 산보다 높은 신전을 조용히 걸어올라가고 있을때 많은 이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물건을 팔기위해, 동냥을 하기위해 또는 자신들과 다른 신기한 생김새를 신기해하며 내게 접근했을때 나는 귀머거리인척 했다.
했다기보다는 세상의 아무런 소리를 듣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모두가 나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동정했다. 어떤 이는 축복을 빌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때는 내 자신을 찾기위해 아무도 필요하지 않았고 그저 나혼자 그 질문의 답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적이 있다.
하루종일 그 성지의 꼭대기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죽어가는 동물들과 끝없는 사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죽어가는 작은 강아지 한마리와 그 옆에서 울고있는(분명 울고 있었다.) 또래의 강아지를 보면서
나도 주저앉아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더이상 내 인생을 슬퍼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난 살아있지 않던가... - 적고보니 로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슬픈 경험이긴하다.
+ 전기가 없다 - 전기가 안들어오는 마을을 3일을 걸려서 도착했을때 사실 많이 난감했다.
해가지면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할일이 없다고 지루해하며 숙소의 마당에 누웠을때 하늘에 떠있는 별은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별이 아니었다. 마치 한때 유행하던 문구점에서 팔던 야광별을 하늘에 박아놓은것처럼 숫자를 헤아릴수 없는
야광별들이 하늘에 떠있는 것이었다. 별이 너무많아..별이 너무 밝아서 어쩜 이곳에는 전기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워서 노래를 불렀다. 이 순간 3일간의 눈물나는 시골길의 서바이벌은 더이상 억울하지 않았다.(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생각이 안난다.)
+ 참견하기 - 마침 도착한 숙소의 옆집에서 전통적인 제사가 치뤄지고 있었다. 엄숙한 제사가 끝난후에는 전통악기를 가지고
신나는 연주를 하고 있는 무리를 만났다. 너무도 집중해서 어떤 리듬을 연주하는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데 타악기 연주자가 내게 연주의 기회를 준것이다.
리듬감각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존심은 무너졌지만 그날 함꼐 연주했던 그들은 더이상 남이 아니었다. 우리는 리듬을 통해 아주 오래된 친구같은 친말함을 느꼈다.
+ 한가지 사물만 찍기 - 터키에 갔을때는 고양이만 하루종일 찍어도 지루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한가지 사물을 정해놓고 하루종일 찍으러 다닌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것 같다. 터키 고양이들을 게을러보여서 너무 좋았다. 부지런한 고양이는 왠지 매력없으니까..
개인적으로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곳", "가보지 않으면 후회하는.."등등의 여행서적은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여행서가 아닌 좀더 진지하거나 기발하거나 악동스러운 여행서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