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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9 09:00

종교가 사악해질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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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사악해질 때 찰스킴볼/김승욱/에코라브르

2006.2.5(일) 주말열차 기차칸에서

●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특히 초점을 맞춘 데에는 두 가지 뚜렷한 이유.

→ 두 종교는 각각 약 18억 명과 13억 명의 신자를 거느린 세계 2대 종교, 세계적으로 퍼져있으며, 정치적인 문제와 맞물리는 경우가 다른 중요 종교들에 비해 많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두 종교 사이에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현재 아브라함의 여러 자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를 만들어내고 있다. → 선교에 대한 강한 열망

● 나의 현명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절벽 끝에 서 있을 때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전진이 되지 않는다!”

● 하버드 대학의 ‘다원주의 프로젝트’

→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지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교를 가진 나라이다.

→ 이슬람교는 유대교를 제치고 이미 두 번째로 큰 종교가 되었거나 곧 될 것이다.

→ 미국의 무슬림 수는 장로교인과 감독교회 신자들을 합한 수 보다 많다.

→ 로스앤젤레스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불교도시다.

●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 사이의 우주적 투쟁을 아후라 마즈다(신)와 아리만(악마), 천사와 악마, 천당과 지옥의 싸움으로 정의 했다.이 정의는 고대 유대교, 기독교, 마니교, 이슬람교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 예루살렘은 세 번째로 신성한 도시, 무함마드가 기적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져서 마스지드 알아크사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과거의 예언자들과 함께 기도를 했다.....

→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는 바위의 돔이다. 유대인은 이 돔의 기반이 된 바위가 모리아 산이라고 믿고 있다.

● 결정적인 사건이나 신성한 이야기 때문에 특정한 인물ㆍ장소ㆍ시대ㆍ물건 등이 범속한 것들과 구분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 종교가 문제라는 주장이 부분적으로 옳은 이유 →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결함을 안고 있는 반면, 기독교는 더 정통을 따르고 있으므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20세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스위스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바로 이런 논리를 기반으로 여러 권으로 구성된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을 저술했다.

● 1925년 테네시에서 벌어진 저 악명 높은 스콥스 재판(존 스콥스라는 고교 생물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재판받은 사건)은 영화 <원숭이 재판(Inherit the Wind)>으로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

● 여러 세대의 대학생들에게 비교 종교학 입문서의 역할을 한《세계의 종교》를 쓴 휴스턴 스미스는 최근에 발표한 책《종교가 왜 중요한가》에서 종교에 대해 아주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다뤘다.

● 종교를 단순히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으로 보고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은 대개 편협한 시각에서 종교를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 자양분이 되어 인류를 지탱해주었던 신화들에는 역사적 사실과 상징적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신화가 사실이 아니라며 그냥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치는 셈이다.

● 이웃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 종교는 이미 타락해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확신해도 된다.

● 학기가 끝났을 때 나는 A학점을 받았지만 세계 최대의 종교인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보다 훨씬 더 많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예수의 자기 희생이 왜 필요했을까? 예수의 신성한 이야기를 전하는 4대 복음서의 내용이 왜 그토록 다른가? 예수 수난일과 그후의 이틀, 그리고 일요일인 부활절 아침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 일을 통해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 예수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이 혜택을 입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만 혜택을 입은 것인가? 어린아이나 오지의 주민들처럼 예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예수의 희생이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다면 어떻게? 의미가 없다면 왜?

● 이슬람에서 가장 끔찍한 죄악은 쉬르크(shirk : 하나님을 다른 무엇과 연관짓는 것)이다.

● 기독교인이 인간인 예수를 하나님과 연관짓는 것은 쉬르크를 범하는 것인가? 삼위일체의 교리를 인정하는 기독교인은 다신교를 믿는 셈인가?

● 하나님, 혹은 뭔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지식의 장애 두 가지

→ 뭔가를 알게 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것. 경험, 관찰, 추론, 직관, 계시 등이 모두 그런 방법들이다. 자기들이 신의계시를 통해서만 종교적 진리를 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인식론적 근거들을 동시에 이용하고 있다.

→ 우리가 무엇을 알든,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심오한 진실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데는 오로지 상징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인간의 목에 있는 혈관보다도 인간에게 더 가까이 있다”(50:16)는 꾸란의 놀라운 말처럼 하나님이 인간 생활의 온갖 시시콜콜한 일들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걸까?

● 많은 힌두교도와 여러 종교의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주에 생기를 불어넣는 ‘현실’을 환기시키려는 제한된 인간적 노력의 측면에서 봐야 하나님(혹은 여러 신들)을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는 것일까?

● 2001년 9월 11일의 비극적인 사건 이후 눈에 띄는 인물은 제리 폴웰, 팻 로버트슨,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등이었다. 이들은 매번 조금씩 방법을 달리해 기독교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슬람교가 거짓 종교이며 알라도 거짓 신이라고 선언했다.

● 알라는 하나님을 뜻하는 아랍어이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알라에게 기도한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디유(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나,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고트에게 기도하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다.

●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예수의 이름은 93이나 언급된다.

● 1980년 당시 미국 최대의 개신교파인 남부침례교회의 의장이었던 베일리 스미스가 하나님께서는 유대교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발언한 것이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에게 닿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기도를 어떻게 들으셨을까? 하늘에 교환원이 있어서 부활이후 ‘예수의 이름’을 되뇌는 기도가 아닌 기도는 모두 차단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속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한 바울의 장황한 설교(로마서 9-11)를 스미스는 어떻게 해석할까? 사도행전 10장에도 이처럼 경직된 진리 주장을 밑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고르넬리오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기도까지도 들으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줄 뿐만 아니라, 신학교육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작업임을 잘 보여준다.

● 니치렌 종파의 창시자인 니치렌은 《묘법연화경》만이 정당한 경전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품고 있었다. 다르마를 훼손하는 자를 죽이는 사람은 나중에 업보를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니치렌은 부처가 사람을 죽이는 자는 모두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굶주린 혼령과 짐승의 영역으로 떨어질 테지만 다르마를 훼손하는 자의 경우에는 예외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 지금도 소카 가카이라는 영향력 있는 신흥종교의 기반으로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 셰익스피어의 신랄한 발언은 이 점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심지어 악마조차 자신의 목적에 걸맞은 성경구절을 인용할 수 있다.

● 순교자는 세상을 떠난 후 최후 심판의 날까지 중간 단계에서 기다리지 않고 천국의 가장 높은 곳인 일곱 번째 천국으로 곧장 올라간다. 일곱 번째 천국에는 예언자들도 살고 있다.

● 광신적인 선교사가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물들어 ‘구원받는’사람을 결정하고, 해도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멋대로 판단하는 경우에는 종교의 전판 과정이 대개 불길한 양상을 띤다.

● 후니페로 세라 신부가 창설해서 발전시킨 캘리포니아 미션(1769~1834)이 이런 문제의 좋은 예다.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세라 신부의 신앙심ㆍ용기ㆍ헌신적 의지에 대해서는 1988년 그의 시복을 옹호했던 사람들은 물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인정한다. 그의 선교는 사실 식민화와 정복이라는 더 커다란 전략의 일부였다. 세라와 그 밖의 선교사들은 원주민을 야만적인 이교도로 간주하고, 마치 아이를 다룰 때처럼 엄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시행했던 교육이란 지금 같으면 캘리포니아 법에 따라 아동학대로 간주될 만한 것이었다.

● “자기들이 보기에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인디언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과 사회구조, 관습, 가치관 등을 해체하는 작업에 나섰다.” 선교사들은 마을을 파괴하고, 가족을 떼어놓고, 노예 제도와 경제적 착취를 제도화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강압 정책을 실시하고, 다양한 체형을 가했다. 세라의 행적을 면밀히 조사한 끝에 그들이 너무 고지식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종족말살의 공범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기독교와 이슬람교 선교사들은 시대에 따라 각각 방법을 달리하기는 했지만, 늘 자기들의 문화와 종교가 더 우월하다는 주장 혹은 생각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거기에 의존

● 피아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절대적 진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선교 사업이 지금도 세상의 틀을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부침례교총회는 매년 각 종교의 가장 신성한 경축일에 미국 내의 유대교인, 힌두교도, 무슬림들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한다.

● “종교에 강요는 금물이다.”(2:256) 이 구절은 사람들이 각자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 신앙의 체계도 중요하지만, 결국 더 중시되는 것은 정통 교리보다 바른 실천이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 우리 딸이 나에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이며, 나 같은 아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때, 그 아이의 말은 진실이다. 옆집에도 자기 아빠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늘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아이는 절대적인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구절들 역시 믿음의 표현이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의 언어로 표현된 고백을 절대적인 진리로 변화시킬 때 문제가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진리로 변화시킨 다음, 그것을 근거로 다른 진리, 혹은 다른 종교의 주장들을 평가하기 시작할 때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진다.

● 사이비종교는 건강한 종교와 타락한 종교의 차이점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렌즈와 같다. 반주류분파는 전통적인 신앙과 예배 방식을 지닌 대안적인 종교집단일 뿐이며, 컬트는 새로운 신앙과 예배 방식 때문에 전통적인 종교에서 더욱 멀리 떨어져 나온 집단이다.

● 거의 모든 종교는 처음에 오늘날 우리가 사이비 종교라고 부르는 종교집단으로 출발한다. 처음에는 천재적인 재능과 통찰력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영도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들의 가르침은 기존 종교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거나 개혁한 것, 혹은 기존 종교를 더 깊이 통찰한 것에 가깝다. 사이비종교가 갈라져 나온 기존의 주류 종교는 당연히 신흥종교를 위험하거나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 기독교는 1세기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서 시작되었다.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부처는 고전적인 힌두교 내부에서 등장한 많은 영적 수행자 중 하나였다. 이슬람의 가르침 역시 무함마드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개혁적인 지도자로서 영국 국교를 결코 떠난 적이 없다.

● 메기도는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산 이름인데, 아마겟돈이 바로 이 이름에서 유래

● 자객, 흉악범을 뜻하는 서그라는 단어는 힌두교의 칼리 여신을 따르는 특정 집단의 ‘종교적’ 행위에서 온 말이다. 1000년이 넘도록 이 칼리여신의 추종자들, 즉 새그는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은 다음 그 사람을 죽여서 죽음과 파괴의 여신인 칼리에게 그 시체와 강탈물의 3분의 1을 바쳤다.

● 아사신파는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시리아와 페르시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집단이다. 아사신은 hashashin(‘하시시를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말로, 시아파 중 이스마일파에 속하는 지독히 호전적인 집단인 니자르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들은 특정 정치지도자들을 암살함으로써 적들의 가슴에 공포를 불어넣었다. 아사신파는 1256년에 몽골의 침입이 있은 후 사라졌다. 십자군 병사들이 이 단어를 유럽까지 퍼뜨렸고, 그후 이 단어는 라틴어ㆍ프랑스어ㆍ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에 편입

● 기독교인이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즉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불교도 역시 대오각성을 하더라도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더러운 연못에 아름다운 연꽃이 떠 있는 모습은 불교도들이 이승에서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부처는 임종 직전에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며 빛의 은유를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얘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며, 책 속에 있는 말이라거나 너희의 믿음과 일치한다거나 너희 스승에 대한 말이라고 해서 어떤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말아라. 너희가 스스로 등불이 되어라, 지금이든 내가 죽은 후든 자신만 의지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가장 높은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는 아마도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편지에서 바울은 제1세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확신한 나머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 무함마드는 최초의 무슬림들이 서기 622년에 메카를 떠나 북쪽의 메디나로 가서 설립한 새로운 움마(공동체)의 정치적ㆍ군사적 지도자였다. 예언자의 영도하에 있던 당시의 메디나는 모범적인 이슬람 국가의 모습을 이론적으로 제시해준다. 그러나 이 이상이 오랫동안 훌륭하게 실행되었던 예를 찾기가 어렵다. 1세대 무슬림들 사이에 심한 불화와 분쟁은 물론 심지어 내전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알리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시아)은 무함마드가 자신의 사위이자 사촌인 알리를 정치적 후계자로 점찍어 두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표결에서 패배했고, 아부바크르가 초대 칼리프로 선출되었다. 알 리가 제 4대 칼리프가 되기는 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세속적인 권력은 무함마드 가문의 손을 떠났다. 우마이야 일족이 다마스쿠스를 기반으로 1세기에 걸쳐 왕으로서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680년에 일단의 시아파 신도들이 카발라에서 학살당하고 무함마드의 손자인 후세인이 전장에서 목이 잘리자 이슬람 세계 내부의 분쟁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 무슬림들이 서기 622년에 메카를 떠나 북쪽의 메디나로 가서 설립한 새로운 움마의 정치적ㆍ군사적 지도자였다. 예언자의 영도하에 있던 당시의 메디나는 모범적인 이슬람 국가의 모습을 이론적으로 제시해준다. 그러나 이 이상이 오랫동안 훌륭하게 실행되었던 예를 찾기가 어렵다. 1세대 무슬림들 사이에 심한 불화와 분쟁은 물론 심지어 내전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유럽이 암흑시대를 겪으며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이슬람 문명은 에스파냐에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너른 지역에서 번성하고 있었다.

● 무슬림의 통치를 받으며 여러 종교의 신도들이 함께 어울려 살던 에스파냐나 바그다드, 예루살렘 등지에서 우리는 관용과 협동의 미덕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 제국이 많은 놀라운 업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전 세계의 권력자들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온갖 결점들, 힘을 내세운 정치 게임, 내분, 무자비한 만행 역시 이슬람의 역사 속에 존재한다.

● 처음부터 분명하게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유일한 국가인 파키스탄은 50여년 동안 바람 잘 날 없는 세월을 보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그들의 실험이 만들어낸 결과는 매력적이지 못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무슬림도 파키스탄을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보지 않았다.

●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를 계속 점령함으로써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모습과 이 때문에 민주적인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스라엘의 꿈 역시 파괴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구시 에무님(Gush Emunim:정부의 후원을 얻어 점령지에 불법적인 정착지를 건설하려고 적극적으로 애쓰는 광신도들) 같은 집단 들의 정치적 힘이 점점 비정상적으로 커져가는 현상과 점령지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스라엘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많으며, 이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종교적 수사법을 이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대가를 지불하기까지 했다.

● 힌두교는 원래 다양성을 존중하며 관용적이다. 힌두교에는 체계화한 위계질서도 없고, 유일한 경전도 없으며, 매주 정해진 날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인도사람들이 다양한 종교를 믿는 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적성과 기질이 매우 다양하므로 각자에게 맞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힌두교라는 강에서 갈라져 나온 수많은 지류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주제는 존재한다. 그중 가장 으뜸은 우주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유일한 본질, 즉 브라만에 대한 인정과 업과 윤회라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 환상의 세계 속에서 브라만은 진정한 실재를 의미한다. 최후의 심판에서 각자의 영혼의 정수인 아트만은 브라만의 일부로 간주된다. 힌두교도들은 환생을 통해 윤회하는 것이 바로 아트만라고 믿는다. 윤회는 영혼이 해방되어 브라만과 완전히 재결합할 때까지 계속된다. 최종적인 목표인 모크샤, 즉 해탈에 이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여기에는 반드시 지상에서의 행동에 대한 높은 도덕기준과 윤리기준이 포함된다.

● 종교의 한 가지 요소만을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그 목적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타락의 징후가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측은지심을 갖고 건설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원칙을 무시해버리는 경우이다.

● 아브라함의 전통적인 무덤은 요르단 강 서안의 헤브론에 있다. 이곳은 족장들의 동굴과 이브라힘 사원이 있어, 유대교인ㆍ기독교인ㆍ무슬림이 모두 성지로 생각하고 있다.

● 1세기의 저명한 랍비 힐렐의 유명한 가르침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내가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당신이 내게 토라를 모두 가르칠 수 있다면 내가 유대교 신자가 되겠소.” 힐렐의 대답 :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이웃들에게 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의 전부요. 나머지는 주석이지. 가서 공부하시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 샤론은 유대인도 템플 마운트를 거닐 권리가 있음을 대담하게 선포할 의도로 그 방문계획을 세웠다고 시인했다.

● 리쿠드당의 우파 강경론자들 사이에서 입지가 강화된 샤론은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다.

● 1991~1992년에 모스크를 무너뜨리고 사원을 짓자는 운동의 선봉장은 L.K. 아드바니

● 최초의 문서인 바울의 편지 속에는 사도들 사이의 내부 투쟁이 반영되어 있다. 바울은 유대인의 ‘노력’을 기독교의 ‘신앙’과 대조하고, 유대교의 ‘율법’과 기독교의 ‘자유’를 언급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이 결코 유대 민족을 버리신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로마서 9-11)

● 복음서 중 가장 마지막으로 씌어진 요한복음을 보면, 유대인을 가혹하게 비판한 여러 구절을 통해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기독교인은 수세기 동안 이런 구절들을 근거로 유대인 전체를 악마로 몰았다. 커다란 긴장과 분쟁이 있었음에도 기독교도와 유대인은 4세기 이전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4세기에 “예수의 십자가가 몬스탄티누스 대제의 손에 들린 칼이 되었다.” 이처럼 기독교가 국가 권력과 결합하자 기독교도는 유대인에게 점점 더 못된 태도와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 4세기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유대교회당이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곳, 불신자들의 소굴, 불경한 자들의 본거지, 미친 사람들의 은신처이며 하나님이 직접 저주를 내리신 곳”이라고 선언했다.

● 유대인이 번영을 누린 시기도 있었다. 이슬람교가 부상한 후 많은 유대인들은 이슬람의 영토와 기독교 세계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상인으로서 좋은 시절을 구가했다. 그러나 불길한 변화들도 함께 일어나고 있었다. 유대 민족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단단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 다른 종교들도 여성을 굴종시키거나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함으로써 때로 노골적으로, 때로는 미묘하게 집단 정체감을 강화하거나 기존 체제를 유지한다.

● 역사를 통틀어 많은 권위적인 지도자들은 종교적인 체제와 핵심적인 교리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교회가 후원한 이단 재판이 가장 좋은 예다. 그들의 표면적인 목적은 두 가지였다. 영원한 저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과 이단적인 교리로 인한 여러 위협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것. 종교재판소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215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제 4차 라테란공의회에서 이단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지침을 발표했을 때부터였다.

● 페르난도 왕의 경우에는 많은 유대인 상인들이 축적해놓은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또한 그는 종교재판을 통해 자신의 함대에서 일할 노예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이단 혐의자들에게 사형 대신 갤리선의 노예가 되라고 선고했다.

● 종교계의 권위자들이 이를 문제 삼자 예수는 이렇게 응수했다.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 무함마드는 원하지 않은 여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를 산 채로 모래 속에 묻어버리는 잔인한 관습인 여아살해를 금지했다. 꾸란과 하디스에는 과부, 고아, 빈궁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주는 것이 무슬림의 절대적인 의무임을 강조하는 구절이 많다. 타인에 대한 관대함, 특히 궁핍한 사람에 대한 관대함이 이슬람교의 핵심임을 신자들에게 일깨워준다.

● 예수의 추종자들이 서기 3세기까지 평화주의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많은 초기 교회 지도자들과 당시의 기록들은 비폭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의지를 강조한다. 군대에 복무하는 기독교인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서기 170년에서 180년 사이였다.

● s-l-m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 및 ‘평화’와 관련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친숙한 세 단어가 유래했다. salam, Islam, Muslim이 그것이다. salam은 ‘평화, 안녕’을 의미하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히브리어 단어 shalom과 어원이 같다. Islam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평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을 ‘Muslim’이라고 한다.

● 꾸란의 많은 구절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예언자들 중 가장 위대한 자로, 심지어는 둘도 없는 존재로까지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꾸란에는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가혹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 “진실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유대교도ㆍ기독교ㆍ사바인 등 누구든지 하나님과 최후의 심판 날을 믿고 좋은 일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주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며, 두려움도 없고 슬픔도 없을 것이다.”(꾸란 2:62,5:69) “종교에 강요는 금물이다.”(꾸란 2:256) 사실 서로 다른 종교 공동체들은 하나님의 계획 중 일부로 간주된다. 다양한 종교 공동체는 이곳 이승의 삶에서 개인이 행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일종의 시험이다.

● 특정 종교의 틀 안에서만 활동하는 사람들은 가장 파괴적인 형태의 부족주의를 부추길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 이스라엘이 선택된 백성이라는 사고방식에 배타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만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출애굽기 19:6)이 되어 여러 민족에게 빛을 비추는 것을 자신들의 영적인 책무로 생각했다. 이 지상의 모든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는다.(창세기 12:3)

● 구세주라고 하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단지 하나님의 사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리아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에서부터나타난 영혼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 사도들을 믿어라. 결코 신이라 해서는 안 된다. 삼갈. 그것이 너희들을 위해 훨씬 좋은 일이다. 하나님은 유일한 신이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하나님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꾸란 4:171)

● 어떤 자를 하나님과 나란히 있게 할 수도 없으며, 그리고 하나님을 젖혀놓고 우리들이 서로 주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일이다.(꾸란 3:64)

●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은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딤미(dhimmi:보호받는 백성)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들을 이슬람의 힘 안에서 ‘보호’받아 마땅한 합법적인 공동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 배타주의의 기반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정당한 구원의 방법을 제공해준다는 신념이다.

● 문자주의 - 배타주의의 한쪽 극단에 위치한 것

● 스스로를 배타주의자로 보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쉽게 인정하면서 욥기와 로마서를 지적한다. 그들은 관용과 상호존중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다른 종교 신자들과의 협동을 실천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증인이 되는 것이 자신들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 포괄주의 - 모든 종교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과 역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계시를 모두 인정한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공식적으로 포괄적인 신학을 채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다. 가톨릭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중반에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발표한 16건의 공식문서 중 세 건이 다른 종교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 여러 이슈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서는 ‘비기독교 종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The Declaration on Relations of the Church to Non-Christian Religions)이다.

● 제2kck 바티칸공의회에서 채택한 또 다른 문서인 ‘이교도에게 빛을(Light to the Gentiles)'(Lumen Gentium)은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받아들였다.

● 다원주의 - 다원주의 옹호자들은 기독교를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보지도 않고, 다른 종교의 완성형으로 보지도 않는다. 다원주의는 구원을 얻기 위한 다양한 행로가 모두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한다. 존힉(John Hick)은 30년 전 신학적 사고에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힉은 천문학의 비유를 이용해서 신을 중심에 놓은 시각, 즉 “기독교를 중심에 놓는 시각에서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며, 모든 종교는... 그분에게 봉사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돈다는 깨달음으로 변화할 것”을 주장했다. 힉은 저서《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지니신다(God Has Many Names)》에서 신을 중심에 놓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전 세계의 종교들을 “단 하나의 신성한 ‘현실’에 대한 각각 다른 반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여러 종교들 사이의 차이를 주로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환경으로 인한 인식의 차이로 본다.

● 콕스의 책 《여러 처소》는 각 지역의 성직자들과 일반 신도들 사이에 종교적 다원주의에 관한 논의를 촉진시켰다. 그의 책 제목은 《흠정 영역 성서》의 요한복음 14장 2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에서 따온 것이다.

● 사람들 사이의 다양성을 찬양하는 현명한 구절이 하나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단일의 백성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데, 그러나 너희들에게 주신 것이니까 너희들을 시험하려고 하셨다. 그렇다면 서로 경쟁해서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하는 너희들 모두가 돌아갈 곳은 하나님의 곁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논쟁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일일이 가르쳐주실 것이다.”(꾸란 5:48)

● 이슬람의 다섯 기둥은 샤하다(신앙고백), 살라트(정해진 시간에 메카를 향해 매일 다섯 차례 기도를 드리는 것), 자카트(자선), 사움(라마단 기간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는 것), 하지(매년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 것).

● 가장 신성한 도시는 메카이며,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검은 돌로 지어진 카바이다. 무슬림들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유일신에게 예배를 드릴 장소로서 이 건물을 지었다고 믿는다.

● 무함마드는 제7천국에 있는 동안 무슬림이 하루에 50번씩 기도를 드릴 것이라고 맹세

● 모세는 무함마드에게 매일 드리는 기도의 횟수를 다시 협상해보라고 권고했다. 그후 무함마드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과 협상해서(창세기 18:16-33) 매일 드리는 기도의 횟수를 다섯 번으로 줄였다.

● 고대의 서사시인 욥기에서 악과 부당함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의문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올바른 사람들, 혹은 무고한 사람들이 왜 고통을 당하는가? 하나님은 악이나 고통과 어떤 관계인가? 이런 의문들의 뿌리가 하도 깊어 욥 이야기의 배경이 이스라엘이 아닌데도 욥기가 성경에 포함되었다. 많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악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그저 사탄과 그의 앞잡이들 탓으로 돌릴 뿐이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 입장을 취하는 고전적인 힌두교도들은 현상계에서 선과 악이라는 환상을 넘어선 통합을 본다.

● 낙태를 중단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군대’의 존재 이유. 버지니아 주 낙태반대모임의 회장인 돈 스피츠 목사는 다음과 같은 섬뜩한 말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했다. “무슬림이 미국에서 사는 것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그 악마적인 종교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기들의 악마적인 나라에서 살게 해야 한다.”

● 무슬림은 대개 묵주를 돌리며 하나님의 이름 99개를 조용히 암송하거나 명상을 한다.

● 꾸란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을 아흘 알키탑(성서의 백성)으로 인정한다. 꾸란과 하디스는 모세와 예수 이후에 등장한 사람들이 계시를 왜곡했다고 단언하지만,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을 이슬람 율법에 따라 ‘보호’받아 마땅한 정당한 공동체로 여전히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원본의 구절들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주장과 관련해 커다란 장애가 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성경의 ‘원본’이 현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와 뚜렷이 구분된다. 여러 사건들의 시간적인 순서도 다르다.(예를 들어 공관복음서에는 예수가 생애의 마지막 주 첫날 성전을 정화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같은 일화가 2장에 등장한다. ) 공관복음서는 예수가 주로 하나님의 왕국, 즉 천국에 대해 얘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는 랍비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대화법을 자주 이용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선언한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해 함구하라고 말하는 부분(이 주제를 메시아의 비밀이라고 부른다.)이 빠져 있다. 각 복음서의 첫 부분에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데, 요한복음은 예수를 우주적인 맥락에서 바라본다. 예수는 모든 창조물을 세상에 존재하게 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 유대교 성전은 원래 다윗과 솔로몬 왕의 시대에 세워졌으며,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파괴되었다. 서기 70년 로마인들이 이 성전을 두 번째로 파괴했다.

● 시아파는 무슬림 중 대략 15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의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데, 이란(90퍼센트 이상)과 이라크(50퍼센트 이상)에서는 다수를 차지한다. 후세인의 순교 기념일은 시아파의 종교적 기념일 중 가장 중요한 날이라 할 수 있다.

● Satan은 악마를 지칭하는 히브리어인데, 아랍어에서는 악마를 Shaytan이라고 부른다.

● 예수의 이름은 꾸란의 15개 장에서 93번 언급되어 있다. 꾸란은 예수를 예언자, 사도,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말씀, 구세주,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도움을 받은 자로 부른다.

● 구약성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 경전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외의 사람들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사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에는 하나님이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행하신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대홍수 이야기의 뒤를 이어 나오는 창세기 9장 8절부터 17절에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과 생물들에게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약속을 해주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톰 프리드먼은 “하나님께서는 여러 언어를 말씀하실 수 있으며, 종교 하나에만 힘을 쏟느라 지쳐버리시는 분이 아니다”고 가르치면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전체주의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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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철 2006.12.09 09:00
    대전의 대화동에는 외국인근로자들 가운데 무슬림교도들이 집회할 수 있는 성전을 지어주고 싶다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런 분이야말로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사제라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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