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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고치면 고칠수록 좋다

by 이정원 posted Jul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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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면 고칠수록 좋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쓸 때 무려 200번이나 고치고 다듬고 다시쓰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완벽한 작품을 쓰고 싶었으리라. 완벽한 글이란 한 글자라도 바꾸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상태에 이른 글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완벽한 작품을 쓰고 싶겠지만 그들도 결국은 투자시간과 완성도 사이에서 타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타협점을 어디까지 가지고 가느냐 하는 점이 관건이다. 글쓰기에 소질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글쓰기에 소질없는 사람이라도 고치고 또 고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에서 만나는 네티즌의 글은 말을 내뱉듯이 작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글을 만나면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신변잡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토론방에서도 그런 글을 많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즉흥적으로 쓴 글은 구조, 용어, 논리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잘못된 구조는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애매한 용어는 오해를 낳고, 서툰 논리는 반박 논리를 부른다. 토론글은 문학 작품과는 다른 구조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서 사용하는 기승전결이나 서론- 본론- 결론 구조를 의사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에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토론글이라면 결론을 먼저 얘기하고 근거를 내세워 반박논리에 대응하는 구조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 문학적인 비유나 애매한 표현은 쉽고 명확한 용어로 바꿔 써서 오해를 없애야 한다. 민감한 문제를 다룬 글이라면 상대방의 기분을 거슬리게 할 만한 부분은 없는지 독자 입장이 되어 두 번 세 번 읽어봐야 한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은 토론방에서조차도 글을 즉흥적으로 써 버리곤 한다.

 


나는 글을 즉흥적으로 올리지 않는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우선 며칠을 생각하며 묵힌다. 며칠을 묵힌 생각도 글로 옮겨보면 어색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띈다. 고치고 또 고치면서 초고를 작성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어색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하려면 글의 일부를 과감히 버리기도 해야 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서양미술 최고의 작품이라 손꼽히곤 하는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에 관한 일화를 여러 번 고쳐 써 보다가 결국 들어내고 말았다. 어색한 연결을 만드는 부분은 고쳐 쓰기보다는 아예 들어냈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글을 쓰려면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을 생략하면 안 된다. 애정을 담은 글이라면 초고 분량의 오분의 일은 들어낼 각오를 해야 하고, 열 번은 다시 읽어야 하고, 세 번 이상 다시 고쳐 써야 한다.

 


2008. 7. 18.
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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