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논리가 좋아 - 바르셀로나의 한 호텔방에서

by 이정원 posted Dec 31,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논리가 좋아

 

3 주 전 바르셀로나의 한 호텔방.
오랜만에 만난 학교 친구, 아는 후배와 같이 밤을 지새기로 했다.
티테이블에 캔맥주를 두고 셋이 둘러앉아 대화 룰을 정했다.

누가 주제를 던지면 의견을 나눈 뒤 결론을 맺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우리 셋은 호흡이 잘 맞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새벽이 되었길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눕자 후배의 대화 스타일이 새로운 주제로 등장했다.
후배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말하길 그 후배는 항상 따져묻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후배가 말하길, 자기는 논리로 남을 제압할 때 쾌감을 느낀댔다.
그래서 상대방의 논리에 허점이 보이면 툭툭 쳐보는 것이라고 했다.
대신에 상대방의 논리가 맞다면 쉽게 인정하는 편이라고 했다.

 

나는 때론 논리가 최선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논리는 상황에 따라 욕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완벽한 논리로 상대방을 제압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은 분한 마음만 품고 돌아설 가능성이 많다고 부언했다.
논리로 흥한 자 논리로 망한다는 패러디 격언도 지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득의 3 요소로 꼽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각각 60, 30, 10 만큼의 영향을 미친다는 세일즈 법칙도 예로 들었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며,

논리나 이성은 자기합리화 단계가 되어서야 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고를 때 안전성평가자료보다 친구에게 들은 고장 사례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얘기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CF의 예를 들어 보이자 그런 CF의 설득 효과가 탁월한 것에 모두 동의했다.

 

술기운과 졸음이 동시에 몰려와서인지 여기서 잠깐 대화가 끊겼다.

이제 잘 시간이 되었나보다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후배가 돌연 내뱉은 한 마디.

 
'어쨌든 난 논리가 좋아요'.


이럴수가, 그 후배는 '어.쨌.든. 논리가 좋.다.' 는 것이다.

후배의 외마디 고백에 나와 친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고,

주제를 바꾸어 한참을 더 떠들다 잠이 들었다.

 

 

2008. 8. 4.

이정원

 

Articles

3 4 5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