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사진] 추사고택, 화순옹주홍문, 예산 화암사

by 이정원 posted Dec 15,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08-12-13

창디모임 추사고택 답사

 





추사고택의 안채 처마

 




추사고택의 안채

담장이 참으로 이쁩니다.

 




이재 권돈인(1783~1859)은 추사보다 3년 일찍 태어나고 3년 늦게 돌아가신 분입니다.

추사 선생과는 속 깊은 곳까지 털어놓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이재는 헌종 재위 당시 영의정이었는데,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면서 몰락하게 됩니다.

진종조례론(예송논쟁)에서 안동 김씨 세력에 밀려 중도부처를 당한 것이죠.

이때 추사까지 억울하게 연류되어 1851년 예순여섯 고령의 나이에 북청에 유배됩니다.

허나 추사는 이재를 원망하지 않고 먼저 편지를 써 친구의 미안함을 씻어주려 했답니다.

추사는 죽은 지 6개월이 지나 누명에서 벗어나 복권되었습니다.

추사고택 안에 추사의 초상을 모신 추사영실을 세울 때

이재는 추사의 제자 이한철에게 영정을 그리게 하고,

자신이 직접 秋史影室 이라고 현판을 썼습니다.

 





굴뚝 사이로 본 추사영실

 



얼마전까지 제가 쓰던 카메라 기종인 Pentax istDS2 를 들고 다닌다 하여 제가 이름붙인 펜탁스 자매.

우애가 좋습니다. ^^

 



 



화순옹주홍문 안으로 들여본 묘막터입니다.

묘막(墓幕)은 묘지기가 사는 집이죠.

원래는 제법 큰 건물이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네요.

화순옹주는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머니, 영조의 둘째딸입니다.

남편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입에 음식을 대지 않고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영조 입장에서는 속이 탔겠습니다.

화순옹주홍문은 정조가 내린 열려문입니다.

 




추사 선생이 자주 찾았다는 예산 화암사 뒤의 병풍바위

 


우화루와 극락전, 특히 하앙으로 유명한 전북 완주 화암사와는 다른 절입니다.

'하앙'이라는 것은 처마를 길게 뽑을 수 있게 부재를 덧대어 만든 공포 형식입니다.

완주 화암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하앙식 건물이라서 건축학적으로 아주 중요합니다.

퀴즈대한민국의 퀴즈영웅 2천만원 짜리 문제로 이 '하앙'을 묻는 문제가 나왔었죠.

완주 화암사는 세월을 간직한 고즈넉한 절입니다.

우화루의 돌담과 극락전 뒤로 흩날리던 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시 예산 화암사로 돌아와서,

화암사 대웅전 뒤 병풍바위에 추사 선생이 새긴 글씨가 있습니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라고 써 있군요.

천축은 인도를 뜻하니, 천축고선생이란 부처를 재치있게 표현한 말입니다.

예산 화암사는 추사 집안의 일을 봐주는 개인 사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그런지 사실 예산 화암사는 절답지 않은 절입니다.

대웅전 옆의 조그마한 탑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고 4층 석탑으로 두었더라구요.

하지만 추사 선생의 친필암각이 새겨진 병풍바위는 정말 운치있는 곳이었습니다.

 


2008.12.15.

이정원

 



Articles

3 4 5 6 7 8 9 10 11 12